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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연 Aug 21. 2022

꾸밈없이, 끊임없이


 그 계절의 나는 지쳐있었다. 어느 것 하나 내 마음 같지 않던 날의 연속이었다. 지난 선택을 후회했고 괴로운 마음에 자꾸만 나를 탓했다. 답답한 날들이 이어졌다.


 그날은 퇴근길 지하철을 견디고 싶지 않아 무작정 집까지 걸었다. 며칠간 억수같이 퍼붓던 비가 그치고 하늘이 개면서 무지개가 떴다. 오랜만에 마주하는 풍경에 마음이 저릿해졌다. 한바탕 비가 쏟아진 뒤에는 이렇게 예쁜 풍경이 펼쳐진다. 한참 동안 무지개를 바라보며 그래도 인생은 살아볼 만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조금 전까지 죽고 싶을 만큼 힘들었으면서 무지개를 보는 순간 '그래도 살아야지' 하며 내일을 다짐하는 내가 웃겼다. 내일이라고 해서 별반 다른 삶일까. 그럼에도 못 이기는 척 속아 넘어가는 내가 바보 같았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사소한 순간이 언제나 살아가게 만들어주었다.


 핸드폰 카메라로 무지개를 담아 생각나는 사람들에게 메시지와 함께 전송했다. 오늘도 수고 많았다고, 내일도 잘 살아보자고.


 무지개가 다녀간 자리에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그리고 그 순간, 노을을 머금은 구름이 흘러갔다. 노란빛과 보랏빛이 진득하게 섞인 저녁놀이 한강을 온통 물들였다. 바람의 손길 따라 나뭇잎이 살랑거렸고 풀잎 사이사이로 노을이 내려앉았다. 그간 눅눅했던 마음이 사르르 녹았다.


 산책에 한껏 신난 강아지들, 시작하는 연인들, 흐르는 강물 따라 웃음 짓는 사람들, 노을을 바라보며 하루 끝에 선 사람들까지. 모두 각자 방식대로 계절을 즐기고 있었다. 그들에게도, 나에게도 이 순간은 오직 한 번뿐이었다.


 그날 해가 완전히 저물 때까지 자리를 지키며 계속해서 이 삶을 잘 살아내게 해달라고, 내 선택안에서 힘껏 행복하게 해달라고 마음을 다해 빌었다. 살면 된다. 앞으로도 오늘처럼 살아가면 된다. 무지개와 노을이 내게 말해주는 듯했다.


 물론 앞으로도 뻔하고 똑같은 날들이 반복될 것이다. 그럼에도 조금은 나아질 수 있다는 기대를 간직한 채 내일을 맞이하기로 했다. 꾸밈없이, 끊임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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