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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한승 Feb 21. 2020

땡오리

공공기관에서 임원들이 낙하산을 타고 내려앉는 일은 내가 입사하기 이전부터 지금까지 변함이 없다. 공공기관 채용비리가 세상을  들썩이게 할 때도 있었지만, 진정한 채용비리는 사실 낙하산이다. 법에는 공모절차를 통해 공정하게 임원 될 사람을 선발하도록 되어 있지만, 그것은 요식 절차에 불과했다.


다음에 그 자리에 누가 온다더라 하는 소문이 퍼진 후 공모절차가 진행되고, 그 후에 여지없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던 그분이 임원이 되어 나타났다.  공정하다면 정권에 관계없이 경험과 능력이 검증된 분들이 임원으로 채용되겠지만, 이 정권 시절에는 이  사람들, 저 정권 시절에는 저  사람들이 오갔다.


임원이 낙하산을 타고 오던지, 내부 승진을 하던지 일반 직원에게는 별반 차이도 없었다.  내부 승진의 경우 연이은 승진 잔치가 있었지만, 좋은 일은 몇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일일 뿐이고, 정작 직원들의 관심사는 새 임원이 같이 일하기 좋은 사람인지 악당인지 하는 것이었다.


땡오리도 정치권에서 어슬렁거리다 낙하산을 타고 나타났다.  땡오리 땡은 성에서 따오고, 오리는 직원들이 붙인 별명이었다. 하는 짓이 탐관오리라 해서  땡오리가 되었는데, 좀스럽고 악랄했다.


그가 회사로 와서 처음 한 짓이 그를 보좌하는 비서실에 배정된 푼돈을 자기 주머니에 집어넣는 것이었다. 운영비는  손님에게 차나 과일도 대접하고, 예산처리가 어려운 소소한 비용에 충당하는 돈인데, 그런 돈을 자기 것으로 챙기는 일은 잡배의 짓이었다.

         

하루는 후배 한 명이 풀이 죽어 있어 이유를 물었다. 는 본사에서 근무하느라 가족과 오랫동안 떨어져 지냈는데, 오랜만에 부모님과 아내, 자녀들을 불러 주변에 볼만 한 곳 구경도 시켜주며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단다. 이미 부장에게 목요일과 금요일 휴가를 얻은 다음이었다.


그런데 땡오리가 그 후배에게 전화를 해서 자신에게 보고도 없이 휴가를 갔다며 엄청 화를 내 가족들만 좁은 숙소에 남겨두고 회사에 나와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가족들이 여기에 와 있다고 사정 이야기를 좀 드리지 그랬어?" 내가 말하니 후배가 "왜 말씀을 안 드렸겠어요, 여러 차례 부탁을 드렸는데도, 보고 없이 휴가를 갔다고 당장 들어오라는 거예요" 하며 금방 눈물이라도 흘릴 것 같은 얼굴이 되었다.

 

직급이 부장 이상이면 임원에게 휴가에 대한 결재를 받지만, 그 이하는 부장의 결재를 얻으면 되었고, 사실 임원이 말단 직원의 휴가에 간여하는 것 자체가  좀스럽고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몹시 추웠던 날, 땡오리와 함께 일하는 부장이 와이셔츠에 양복저고리만 걸친, 봄가을에나 볼만한 복장으로 회사 현관 앞에서 퍼렇게 얼어 떨고 있었다.

내가 농담으로 "집안 사정이 갑자기 어려워졌나? 웬 청승~?" 하고 말을 건네니, 그 부장이 "하이고~ 아침에 뜨신 털조끼를 안에다 입고 왔는데, 땡오리님이 외부 손님들 오시는데 안에다 조끼를 입으면 격식에 안 맞든다고 짜증을 내서 이 차림으로  손님들 영접하러 이러구 서 있어" 했다.  

  

땡오리는 회의를 사랑했는지, 모든 크고 작은 회의에 참석해야 직성이 풀렸다. 외부 위원들이 참석하는 공적인 회의는 물론, 부장이나 차장들끼리 해도 될 회의에도 기어이 끼어들었고, 회의 내용이나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외부 위원들이 참석하는 회의에서도 소리를 지르며 직원들을 심하게 몰아붙여 직원들의 마음에 상처를 줬다.

 

땡오리의 횡포는 결국 자기 발등을 찍는 결과로 이어졌다. 땡오리는 수천 억 원  단위의 돈을 운영할 금융기관을 선정하는 회의에서 특정 금융기관을 비하하고, 심지어 회의가 진행되는 중에 선정기준을 바꾸라고 직원들을 압박한 모양이었다. 회의에 참석했던 외부 위원들과 입찰에 참여했던 금융기관들이 반발했고, 직원들도 그런 지시에는 따를 수 없다며 일을 중단하고 기관장에게 보고를 했다.

그 사건으로 땡오리는 징계를 당해 씁쓸한 뒷맛을 남겼는데, 떠나는 날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다음 달에 하루만 더 일하게 해 주면 한 달 봉급을 더 받을 수 있는데 말이야... 월 말에 나가라 하니, 에잇! 야박한 사람들이 말이야....."

땡오리가 떠난 후 직원들에게 그 이야기를 하니, 어떤 직원이 벼락은 뭣에 쓰려고 있는지 모르겠다 해서 같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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