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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한승 Feb 01. 2020

사장님이 무서운 일식집, 그 후

강남 일식집에 다녀온 후 보름 정도 지나 정희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정희 아버지는  오랫동안 병마에 시달리시다 돌아가셨고, 남은 가족은 정희와 그녀의 어머니 둘 뿐이었다. 오랜 병치레 후 돌아가셔서인지  상가 분위기는 일반 상갓집에 비해 덤덤한 편이었다.


부장은 일정 직급 이하의 사람은 사람으로 취급을 안 했다. 대리까지는 부장에게 직접 보고나 설명을 할 수 있었지만 그 이하의 직원이 직접 보고를 하려면 하면 매우 불편해하거나 화를 냈다. 


정희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일주일 간의 특별휴가를 받아 집안 정리를 한 후 출근했다.

정희는 계약직이 된 직후여서 일을 잘해보고자 하는 의욕이 넘쳤다. 1주간의 휴가로 일이 밀려있었지만, 빠르게 일을 배워나갔다. 그동안 어깨너머로 봐 왔던 일이어서 특별히 어려운 것은 없는 모양이었다.

  

내가 오후에 출장을 갔다 사무실에 들어서니 부장이 악 쓰고 있었다.

"감히 계약직이 부장에게 직접 결재서류를 가지고 와! 부장을 우습게 보는 거야!? 뭘 몰라서 그러는 거야!" 정희가 열심히 일한 결과를 보고하려 한 것인데, 칭찬은 커녕 무시만 당하고 말았다. 희가 일용직으로 일할 때에는 근무장소가 분리된 곳이어서  부장의 직급 차별을 모른 것이 화근이었다,


얼마 전에도 남자 계약직 사원이 휴가를 내 달라고 부장에게 결재를 받으러 갔다가 "건방진 놈, 니가 뭔데 직접 나한테 와서 보고를 해, 내가 계약직 휴가 가는 것까지 보고를 받아야 해?" 하면서 열을 낸 적이 있었다.


사무실 분위기가 삽시간에 냉동창고처럼 한기가 돌았다.

정희는 억울하고 수치스러웠지만 죄송하단 말만 반복할 뿐 어찌할 바를 몰랐다.

계약직 직원이 상을 당했다 해서 정희네 상가에도 가 보지 않은 그였다.


그는 낙하산을 타고 온 사람이었는데,  중앙부처 중에서도 방귀께나 뀐다는 부처에서 일을 하다 문제를 일으켰으나 운 좋게 살아남아 산하기관에 자리를 마련해 내려앉 처지였다.

업무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전혀 없으니 직급을 가지고 사람을 잡고, 말 꼬투리를 잡아 직원을 볶았다.


그는 돈에 눈이 밝았다. 우리 부서에서 1년에 들고 나는 돈이 수백억 원이었다. 주거래 은행을 어디로 할 것인지에 따라 은행 간 희비가 달라졌다.  그는 은행 간에 경쟁을 이용해서 재미를 보는 모양이었다.


사무실은 살얼음 판처럼 늘 불안했다. 3월은 정신없이 바쁜 달이었다. 매일 야근이 이어졌지만 직원들은 그러려니 했다. 몇 년을 이 직장에서 일해오는 동안 바쁜 달과, 더 바쁜 달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어느 정도 몸에 배어 있었다.


 야근이 당연한 때여서, 퇴근시간이 가까워지면 막내 직원이 돌아다니며 주문할  음식을 조사해 식당에 연락을 했다. 하루는 저녁 6시 30분경에 음식이 배달되어 왔는데 소란이 났다. 부장은 야근을 하는 법이 없었다. 늘 칼퇴근을 하는 부장이었기에 저녁식사를 주문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 날은 무슨 일인지 사무실에 남아있다 음식이 배달되어 오자 부장이 음식 주문을 책임진 막내 직원을 잡았다.


자신을 빼고 음식을 주문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부장이 야근을 하겠다 했으면 당연히 부장 몫의 음식을 주문했겠지만, 음식 주문 때 아무 말이 없었던 부장이었다. 음식이 싸늘하게 식도록 부장의 질타가 계속되었고, 직원들은 숨을 죽였다.


결국 그 날은 아무도 밥을 먹지 못했다. 심한 질타를 당한 그 직원은 다음 날 내 책상 서랍에 사표를 넣어두고 사라졌다. 직원이 사표를 냈다 해서 날름 수리할 일이 아니었다.

그 직원의 가족에게 연락을 하니 일주일만 기다려 달라 사정을 해서 열 가까이 기다렸으나 그 직원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강남 일식집에 다녀온 이후 우리 부장의 부정비리 자료를 꽤 많이 수집하게 되었다. 감사실과 노동조합 양쪽에 도움을 청하기로 방향을 정했다.

부장이 낙하산을 타고 온 사람인데 힘 있는 기관에서 내려보낸 사람을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징계를 주기에는 경영진이나 감사실에서도 부담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 때에 대비해서  노동조합의 힘을 빌려 단속을 해 두는 것이 좋았다.

  

양측에 관련 자료를 건네고 우리의 힘든 상황을 알렸다. 그런데 그는 예상보다 빨리 우리를 떠났다.


그가 평소에는 계약직이나 일용직 직원들을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았지만, 술을 얻어먹을 때는 예외였다. 새로 들어온 남성 일용직 직원에게 밤늦도록 술을 얻어먹은 모양이었다.


술이 약한 그 직원이 술집에서 나와 택시를 타려다 사고를 당해 머리를 크게 다쳤다. 사건 조사 과정에서 부장이 너무 과하게 술을 얻어먹은 것이 문제가 되었고, 우리가 감사실에 제보했던  내용이 더해저  빠르게 일이 마무리되었다.  


그가 떠난 날 우리 부서 직원들은 모두 모여 소주를 나누었다. 그토록 우리를 힘들게 했던 부장이 떠났지만 즐거울 수는 없었다. 우리는 모두 늪지대를 겨우 빠져나와 오물 투성이로  탈진해 쓰러진 병사처럼 피곤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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