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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한승 Feb 27. 2020

모기 회식

야학에 입학할 때에 한 오십여 명 정도 되던 학생들이 한 달 정도 지나자 반 정도로 줄었다. 야학을 떠나는 이들은 공장에서 야근이 잦아 매일 저녁마다 시간을 내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고, 며칠 야학엘 빠지다 보면 진도를 따라갈 수 없어 공부에  흥미를 잃는 것 같았다.


다행히 나는 솜틀집 가족들의 배려로 날마다 야학 갈 수 있었다. 아무리 바쁜 일이 많을 때라도 시간이 되면 얼른 밥 먹고 공부하러 가라며 등을 밀어주었고, 일을 하면서 짬짬이 책을 봐도 싫은 소리를 하는 법이 없었다. 솜틀집 가족은 기독교 신앙이 깊은 분들이었고, 서로 화목하고 배려심이 깊었다.


사장님은 교회 장로였는데, 훤한 대머리에 인상이 좋았고, 손님이 찾아오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보다 한 가지 더 먹습니다. 솜 먼지 말입니다." 하면서 껄껄 웃곤 하셨다. 찬송 부르기를 좋아해서 기계소리가 시끄러워도 아랑곳 않고 "나의 갈길 다 가도록~" 하면서 찬송을 크게 불렀고, 조금 있으면 나도 흥이 올라와  같이 노래를 따라 부르면서 합창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야학 선생님들은 대부분 내 또래의 대학생들이 자원봉사를 하는 것이었다. 공부를 할 때는 선생님으로 존대하고, 공부 때문에 야단을 치면 아무 소리 못하고 들어야 했지만 같은 또래여서 금세 속 마음을 털어놓아도 좋을 정도로 정이 들었다.

저녁 여섯 시 반부터 시작되어 10시에 수업이 끝났다. 종일 공장에서 일하고 저녁에 공부를 하니 피곤했지만 공부를 끝내고 돌아올 때의 피곤하고 지친 나른함이 좋았다.       


야학은 일 년 과정이었다. 중학교에서 배워야 할 내용을 일 년에 마쳐야 하고, 오랜만에 하는 공부다 보니 늘 시간이 부족했다. 집에 돌아와 공부를 하고, 짝사랑 그 아이에게 붙이지도 못할 편지를 수 없이 쓰고, 마루방 간이침대에 누우면 깊은 잠이 들었다. 떤 날에는 모기들이 모여들어 잠든 내 피로 회식을 벌여도 전혀 모르고 깊이 잠들었고,  아침에 잠이 깨 보면 코피를 흘려 배게에 얼굴이 붙어있기도 했다.

 

선생님들은 부분 학생들에게 헌신적이었고, 어떤 남자 선생님들은 예쁜 여학생과 사랑에 빠지기도 했다. 그중에 국어 선생님은 정치적 성향이 강한 분이었다. 시를 잘 써서 학생들에게 인기가 좋았는데, 수업시간에 정치 이야기를 오랫동안 했다. 군사정권 시절이었다. 광주에서 수많은 사람이 죽임을 당한 이야기며, 미국이 뒤에서 조정한 것이라는 이야기를 자주 했다.

  

얼마 후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이 벌어지고 관련자가 원주로 숨어들었다가 결국 자수하는 사건으로 세상이 시끄러웠다. 그 사건에 연루되어 국어 선생님도 잡혀 들어가 한동안 나타나지 못했다. 한 달 정도 지나 국어 선생님이 다시 돌아왔지만 예전의 그 사람이 아니었다. 말 수가 줄어들어 있었고, 그동안 무슨 일을 겪었는지 한 마디 도 입에 올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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