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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ndy Carraway May 16. 2021

우리집 서열 0위는 막내 두리

웬만해선 두리를 막을 수 없다


 두리는 우리집의 소중한 막내둥이 아들이고 가족이지만, 때로는 집의 최고 권력자 같은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두리가 잠 못들까봐 거실 소등도 더 일찍 하고 발소리도 작게 내며 걷거나, 바깥 온도에 의해 감기에 걸리기라도 할까봐 온도 조절에 더 각별하게 신경쓰기도 한다. 청소는 말할 것도 없다. 가족들의 일정도 두리가 우선순위를 차지하는 게 많아졌을 정도로 우리집은 두리의 안전과 보호가 최우선이 되었다.


 재밌는 점은 두리도 자신이 집에서 어느 정도의 많은 파워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 같다. 두리는 우선 엄마, 아빠를 가장 잘 따른다. 집에 엄마, 아빠 두 분 다 계시는 날에는 나와 동생보다는 두 분께 더 잘 가고 의지하는 모습을 보인다. 집에서 실질적인 권력자가 누구인지 아는 모습이 재밌는데, 자기가 정말 이 구역의 실세라는 것을 안다는 듯 굴던 일도 몇 번 있었다.


집에 온 지 이틀째, 사료 그릇을 당장 내놓으라고 짖는 모습.


 두리가 집에 온 지 이틀째인 날에 재밌는 일이 있었다. 두리는 집에 오고 나서 한 번도 짖은 적이 없어서 우리 가족 모두 아직 적응을 하느라 어색해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낑낑 울지도 않고 천천히 적응하는 모습을 기다리고 있었다.


 두리가 아직 많이 어렸다 보니 사료를 물에 불려서 급여하던 시기였다. 두리가 낮잠을 자고 슬슬 일어날 저녁시간이 되어갔다. 두리가 자고 있는 틈을 타 사료를 준비해둘 생각이었다. 내가 두리 머리맡에 두었던 사료 그릇을 슬그머니 올려두자, 두리는 그 인기척에 눈을 살며시 떴지만 여전히 졸려서 살짝 가물가물한 상태였다. 마침 사료는 냄새가 강한 편이다 보니, 물을 붓자마자 냄새가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냄새가 풍겨 두리가 누워있던 쪽으로 완전히 도달하자, 두리는 잠이 달아난 듯이 벌떡 일어났다. 두리는 원초적인 본능에 매우 솔직한 강아지였다. 당연히 사료 냄새가 나니 그릇이 있던 쪽으로 엉금엉금 걸어갔는데, 가장 소중한 밥그릇이 안 보이는 상태였다. 그때 지은 표정이 얼마나 웃기던지, 얼굴에서 '나 빡쳤다!' 라고 대놓고 말하고 있었다. 두리는 그 상황이 납득할 수 없었던 것 같았다. 냄새가 나는데 그릇이 안 보이니 자기 나름대로 화가 난 것이다.


약 3개월된 아기 강아지가 지을 수 있는 잔뜩 화난 표정

 그때 우리 가족은 두리가 짖는 소리를 처음 들었다. 잔뜩 화나서 눈의 흰자까지 보이는 표정까지 일품이었다. 가족들은 두리에게 조금만 기다리면 주겠다고 열심히 설명했지만, 이 3개월 남짓한 아기 강아지에게는 냄새는 나는데 눈앞에 없다는 사실이 매우 화가 나는 부분이었던 것 같다.


 결국 화가 안 풀리는지 깨깽! 하고 짖더니 토토로 인형에게 열심히 화풀이를 시작했다. 방금 낮잠 자다 일어난 아기 맞다. 나름 열심히 항의하며 짖는 소리가 매우 귀여우니 동영상을 꼭 봐주셨으면 한다.


청소하다 나온 천마스크를 강탈해갔다. 결국 깨끗하게 세탁한 후 장난감으로 만들어줬다.


 집에서 가끔 대청소를 하는 시즌이 있다. 주로 계절이 바뀌면서 옷을 정리하는 경우가 많다. 그때마다 버리는 옷도 한 가득이라 이때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옷을 정리 중이었다. 코로나 19로 인해 현재는 일회용 마스크를 전면 사용하게 되었지만, 이전에는 천 마스크도 많이 사용했었다. 우리집에도 천마스크가 몇 장 있었는데, 세탁한 뒤 구석에 박혀 있어서 거의 몇 년은 쓰지 않은 것을 발견했다. 코로나 19가 종식된 이후에도 천보다는 일회용 마스크를 계속 쓸 것 같다는 생각에 그렇게 찾은 마스크는 버릴 생각이었다. 그렇게 구석에 버릴 것들을 쌓아두고 있었는데, 그때 두리가 쏜살같이 들어오더니 마스크 뭉치를 들고 튄 것이다! 어찌나 빠르던지... 괴도가 있다면 이런 느낌일까 싶었다.


 다른 옷들은 들고 가기 무겁기도 하지만, 마스크는 두리가 물고 가기에도 매우 가볍고 작고 오물오물 씹기에도 부드럽고 질기기 때문에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세탁한 이후 보관해둔 것이라 심하게 오염되거나 지저분하진 않았지만, 먼지가 쌓였을 것이라 세탁해서 다시 주겠다고 두리를 겨우 달랬다. 물론 엄청 으르렁거렸다. 사진에서 두리가 제일 마음에 들어한 마스크를 한 장만 우선 돌려준 뒤, 나머지 마스크는 깨끗하게 세탁해서 지금도 잘 사용하고 있다. 얼마나 마음에 들어했으면 저걸 깔고 낮잠을 자기 시작했을까... 당시 두리가 이갈이를 시작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한동안 천마스크들이 훌륭한 장난감, 터그놀이 대용 역할을 해주었다.


미니 테이블을 펼쳐뒀더니 나를 계단 삼아 밟고 올라가서 개껌을 물기 시작했다


 당장 오늘도 있었던 따끈따끈한 일이다. 나는 다이어리를 쓰는 습관을 갖고 있다. 개인 SNS에 너무 많은 사적인 내용을 쓰는 것을 지양하고 있어 생각과 일과를 나만 보는 다이어리에 쓰는 것을 좋아한다. 어제의 내용은 늦은 시간까지 하고 있던 일이 있어 바로 작성하지 못해 오늘 오전에 정리할 생각이었다. 그때 두리가 마침 내 방에서 개껌을 물고 있었다.


 두리를 가까이서 케어하면서 다이어리를 쓸 생각으로 바닥에 미니 테이블을 펼쳐두었는데, 그새 두리가 내 무릎에 올라오더니 나를 계단 삼아서 밟고 테이블에 올라간 것이다. 테이블이 작다 보니 그렇게까지 높거나 위험하진 않았지만, 넘어지기라도 할까봐 두리를 내려두려 했다. 그때 두리는 아예 사진처럼 내 다이어리를 깔고 엎드리더니 물고 있던 개껌을 열심히 씹기 시작했다. 결국 나는 테이블의 가장 구석 모서리만 이용해 다이어리를 썼다. 내 테이블을 내가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다.


 두리는 개껌을 10분 정도 물고 있다가 동생 방에서 나는 소리에 다시 나를 밟고 내려갔다. 이제 어느 정도 무게가 있어서 두리가 힘을 주어 밟거나 누르면 통증이 꽤 있다. 두리가 나를 밟고 뛰어 나가는 바람에 악! 소리가 났지만... 두리가 안 다치면 다행이다... 두리를 위해서라면 계단 역할도 열심히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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