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라클 크리크
제목 그대로다. 자기 삶에서 세 시간을 낼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제발 앤지 김의 <미라클 크리크>를 읽을 것.
나는 모르는 게 많지만 그 중에서도 내 스스로를 가장 모른다. <파친코>도 안 읽고 <H마트에서 울다>도 안 읽어서 나는 내가 이민 2, 3세대에 대한 이야기에 별 관심이 없는 줄 알았다. 그런데 우현히 도서관에서 <미라클 크리크>를 발견해서 읽고는, 내가 이창래를 엄청 좋아했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 소설에서 유일하게 마음에 덜 드는 점은 제목이다. '미라클 크릭'이라고 했으면 정말 흠 잡을 데가 없는 작품이 되었을 텐데... 출판사의 책 소개 내용 그대로, <미라클 크리크>라는 지역에서 한국인 이민자 가족이 운영하던 고압산소 치료 시설에 방화 사건이 일어난다. 두 사람이 죽고 두 사람이 다친다. 그리고 환자의 보호자 한 명이 피고인이 되어 재판이 진행된다.
화려한 장면은 단 하나도 없다. 마이클 코넬리 법정 소설에서와 같은 대단한 작전을 벌이는 변호사도 안 나오고, 대단한 영웅이 나오는 것도 아니며 대단한 악당이 대단히 잔혹한 일을 벌이는 것도 아니다. 이야기의 구조상 대단한 반전이 있을 수도 없다. (어차피 모두를 의심하기 때문에 대단한 반전이 있으려면 판사나 변호사나 검사가 범인이어야 한다) 그런데도 한 페이지 한 페이지가 재미있고, 모든 등장인물의 모든 순간에 공감이 된다. 작가가 실제로 변호사로 오래 일한 점이 나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데에 큰 역할을 했다. 사법절차에 대한 묘사가 억지스러우면 아무래도 몰입이 어렵기 때문이다.
책을 한참 읽다가 작가의 나이를 계산해 보았다. 그는 대략 40대 중반쯤에 이 책을 쓰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의 후속작을 그 누구보다 간절히 기다리겠다. 그런데 혹시나 이 단 한 권이 앤지 김의 처음이자 마지막 작품이더라도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