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집친구 봉하늘은 엄마의 말을 빌리자면 '치뛰고, 내리뛰고'가 전문인 올해 8살이나 먹은 철이 안 드는 강아지다. 원래 이름은 '봉봉'이었는데, 입양 후 첫 추석에 고향집에서 어찌나 '치뛰고, 내리뛰는'지 가족 모두 그 이유가 이름 때문이라며 개명을 위한 가족회의를 열었고, '하늘'이로 개명이 이루어졌다. 그 이후로 봉봉이는 '봉봉+하늘=봉하늘'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됐다.
7월 초 7박 8일 동안 캄보디아에 다녀와야 해서 미리 고향집에 하늘이를 부탁했다. 하늘이가 없는 서울집에서의 하루는 고요했다. 뜨거운 여름 산책의 부담감은 줄었지만 정적이 늘었고, 바깥출입을 해야 할 이유가 없는 날엔 집 바깥을 나갈 생각도 하지 않았다. 짧은 여행도 집에 갈 시간의 걱정 없이 자유로웠다. 몇 일간은 이런 고요함과 자유로움이 좋았지만 금세 외출에서 돌아오면 '치뛰고, 내리뛰며' 반겨주는, 밤 9시만 되면 자러 가자고 품을 파고드는 집친구가 그리웠다.
현관을 들어서자마자 '치뛰고, 내리뛰며' 나를 반기는 오랜만에 재회한 하늘이의 다소 충격적이었다. 사진과 영상통화로 이미 예상은 했었지만 말이다. 털이 눈을 덮는다느니, 입가가 더러워진다느니와 같은 미용 이슈로 시작된 아빠의 가위질에 눈에서부터 이마, 머즐 주변의 털이 모두 잘려나가 있었다. 어떻게 수습도 불가능한 얼굴이었지만 보면 볼수록 신기하고 재밌는 얼굴이다. 아빠는 요리보고 조리 보며 그저 귀엽지 않냐고 나에게 물었다. 나는 분명 입체적인 얼굴인데 평면을 보고 있는 것 같은 착시효과에 어쩌다 변발을 하게 되었냐며 한참을 웃었다. 한 달을 넘게 같이 지낸 엄마는 봉봉이도, 하늘이도 모두 너무 들떠있는 이름이라 '치뛰고, 내리뛰고'가 나아지지 않는다며 '순둥이'로의 개명을 제안했다. 변발과 '순둥'이라는 이름의 조화로 완벽히 촌강아지로 변신한 '봉하늘'이 따땃한 자기 온기를 나에게 나누며 내 무릎 위에 배를 보이며 누웠다. 워낙 사람을 좋아하는 녀석이라 가끔 이미 나를 잊은 건 아닌가 걱정될 때가 있었다. 그런데 내가 나타나자마자 아빠에게 간식을 얻어내기 위한 짖음으로 연신 시끄럽게 하지만 절대로 안기지 않는, 내가 잠시라도 나갈 준비를 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아빠의 무릎 위에 올라가는 하늘이를 '배신자'라고 불렀다.
변발을 하고 있는 나의 집친구를 보고 있자니 변발을 하던 복슬거리는 털을 하고 있던, 여전히 나의 반려견임에는 변함이 없고, 털이 길어 눈을 찌른다며 야금야금 자기 털이 잘려나가든 말든 작업이 끝나면 꼬리를 흔들며 간식의 길로 안내하는 강아지를 순둥이라고 부르지 않는다고 해서 순하지 않다고 하지 않을 수가 없지 않은가. 이름이 무엇이든, 예쁜 털을 가졌든 그렇지 않든 나는 가족들이 돌아올 때까지 스핑크스처럼 앉아 목이 빠져라 기다리다 누구라도 하나 돌아오면 '치뛰고 내리뛰며' 매 순간 가족들과의 재회를 기다리고 기뻐하는 봉하늘을 보면서 사랑의 방식을 깨닫는다. 사랑하는 사람의 안위를 걱정하는 마음, 어디에서 뭘 하고 왔는지 궁금하고 샅샅이 알고 싶어 하는 검은 코, 무사히 맞이하는 재회에 감추않는 기쁨의 꼬리. 오늘도 나를 기다리고 있을 강아지에게로, 혹은 고양이에게로, 혹은 누군가에게로 어서 돌아가 기쁨의 재회를 즐기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