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동희 북노마드 Jun 08. 2021

느껴라!

다시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이야기. 두 번 인용할 정도로 이 영화를 좋아한다. 예뻐서다.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워서다. 초록빛 여름 풍경, 절제된 애정, 섬세한 감정과 눈빛, 그리고 아들을 바라보는 부모의 열린 마음. 그렇게 영화는 첫사랑의 치명적인 아픔을 아름답게 건져 올린다. 


사람들은 엘리오와 올리버에 집중한다. 하지만 영화가 끝난 후 한참까지 나를 앉아 있게 한 대사는 뜻밖의 장면이었다. 올리버가 떠난 뒤 아파하는 엘리오에게 나직하게 건네는 아버지의 대사. 


- 지금은 아무 감정도 느끼고 싶지 않을 수도 있어. 

  평생 느끼지 않고 싶을지도 몰라. 

  어쩌면 이런 이야기를 내게 하고 싶지 않을 수도 있지만 

  네가 분명히 느꼈던 것을 느껴라.


느껴라! 

엘리오의 아버지는 세상의 시선이 아닌, 부모의 시선이 아닌, 오직 엘리오의 시선으로 아들을 바라본다. 아들의 마음으로 세상을 대한다. 자신의 고백에 아들의 우정과 사랑을 이입한다. 아들을 치유한다. 


- 우리는 빨리 치유되려고 자신을 너무 많이 망쳐.


치유는 노력하는 것이 아니다. 치유는 그리 되는 것이다. 그리 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그때까지 아파하는 것이다. 안 되면 할 수 없는 것이다. 아픔은 죄가 아니니까. 죄가 아니기에 아름다운 거니까. 사랑은 아름답다. 사랑하는 자는 영원히 청춘이다. 사랑은 아름답다. 사랑은 죄가 아니다. 사랑은 조건이 지배하지만 동시에 조건으로부터 자유롭다. 그래서 사랑이다. 이 사랑도 사랑이고 저 사랑도 사랑이다. 이 사랑만 사랑이라고 여기는 사람은 엘리오 아버지의 말처럼 “서른 살쯤 되면 파산”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살면 뭐하랴. 사랑이 없는데, 사랑하지 않는데. 


그런데 우리가 그렇게 산다. 아무것도 느끼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엘리오의 아버지는 말한다. 그건 ‘낭비’라고. 그리고 다시 말한다. 나직한 목소리에 단호함을 실어서. 


- 어떤 삶을 살든 그건 네 마음이다.

  다만 이것만 기억해.

  우리 몸과 마음은 단 한 번만 주어진 것이고

  너도 모르는 사이 마음이 닳고 닳게 된다는 걸

  지금은 슬픔과 아픔이 있어.

  그걸 없애지 마라. 

  네가 느꼈던 기쁨도 말이야


영화를 다시 꺼낸다. 

좋은 영화는 여러 번 보아야 한다. 

그래야 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