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진정 최선입니까?

보스턴 마라톤 굿즈의 세계

by 아오리


세상에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이를테면 건강, 행복, 화목한 가정… 그리고, 달리기 대회의 완주 메달과 셔츠 같은.

2024년 처음 보스턴 5K를 뛰기로 마음먹은 것도 바로 보스턴 마라톤의 상징인 유니콘이 멋지게 새겨진 완주 메달과 셔츠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보다 더 ‘찐’ 기념품이 어디 있으랴!!!


그저 이 메달과 셔츠들이 가지고 싶었습니다… (은전 한 닢 ver.)



매년 4월, 보스턴은 마라톤을 준비하며 하나둘 유니콘 깃발을 걸기 시작합니다.


대회 이삼 주 전부터 마라톤 배너가 도시 곳곳에 걸리기 시작하고 관련 용품들의 광고로 랩핑된 티(보스턴의 지하/지상철)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라톤 스포츠, 딕스 스포츠(Dick’s Sporting Goods) 같은 멀티브랜드샵들에도 각종 브랜드에서 기획한 마라톤 굿즈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한다.

보스턴 마라톤의 공식 후원사는 ‘아디다스’이다. 매년 그 해의 컬러가 반영된 러닝의류와 용품들을 보스턴 마라톤 시즌에 맞춰 출시한다. 작년에 고작 5K를 뛸 계획이었으면서도 ‘128th Boston Marathon’이 새겨진 러닝재킷을 솔드아웃이 될까 얼른 사 입었더랬다. 마라톤 공식 굿즈를 구매하는 것은 마치 내가 행사의 완전한 일부가 된 것 같은 느낌, 그 유구한 역사(!)의 한가운데서 발매된 리미티드 에디션을 소장한다는 짜릿한 기분을 느끼게 해 주었다.


소박하게 시작했던 2024년 5K, 자켓이나 사입고 5K만 뛰고 뭐 맥주나 마시고… 그러려고 했었죠. 원래는!


2024년 공식 굿즈의 컬러는 코랄과 푸른빛이 도는 비둘기색(?)이었다. 나름 신선한 색상조합이었다. 오리지널 컬러인 노랑과 파랑이 조합된 자켓이 ‘찐이다’ 싶기도 했지만 막상 그런 컬러로 출시된다면 범접할 수 없는 존재감에, 소심한 나는 어떻게 해서든 보스턴 마라톤 풀코스를 진짜 뛰고 나서야 팔 하나를 겨우 넣어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나에게는 올해가 사실상 마지막으로 보스턴 마라톤 굿즈를 구입할 수 있는 기회였기에, 2025년도 마라톤 굿즈들이 발매되기 전부터 올해 ‘디스턴스 메들리 참가자‘로서 당당하게 다른 색상의 2025년 공식 자켓을 득템 할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그런데…

아………………….. 정녕 이것이 최선이랍니까…..


이 충격적인 사실을 마라톤 스포츠에서 보내준 프로모션 이메일에서 처음 알게 되었다. 작년과는 완전히 달라진 디자인에, 남색과 힘 빠진 하늘색의 조합이라니! 게다가 올해는 남자와 여자 자켓도 컬러가 서로 달랐다. 보스턴은 아주 다양한 성별이 존재하는 곳임에도 불구하고(보통 성별의 표기하는 란에는 4개 정도의 옵션이 있다. Male, Female, Non-Binary, Prefer not to say) 그런데 남자 자켓과 여자 자켓이 이렇게 서로 다른 컬러라니?!? (남자도, 여자도 아닌 이 수많은 사람들은 어쩌라고?!?!)

아무리 두 눈을 씻고 봐도, ‘생의 마지막 보스턴 마라톤 굿즈’라고 하더라도, 내 취향과의 거리가 42.129km쯤 되어 보이는 이 자켓을 선뜻 구매하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차라리 짙은 색상이 몸판에 깔린 남자 자켓은 그나마 나아 보였다. 하지만 올해 남녀 자켓의 색상이 달리 출시된 바, 괜한 오해(!?)를 사고 싶지 않았기에 남자 자켓을 입는 것은 포기하고, 다른 대안을 찾기로 했다. 스웻셔츠, 후디, 러닝용 상하의, 모자, 러닝벨트, 응원용 카우벨까지 공식 굿즈들은 다양했지만 선뜻 ’ 이거다!‘ 싶은 것이 없었다. ‘하아… 그래도 뭐라도 사야지, 사야지… 마지막인데 아무렴!’ 저 유니콘 로고만 없었더라면 거들떠도 보지 않았겠지만, 원래 뭐 굿즈란 그런 것이니까요.



자신의 참가연도를 자켓에 새겨서 입은 러너들, 정말 이것이 진정한 굿즈! 멋지고 멋지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미국 물건들은 전반적으로 투박하고 촌스러운 느낌이 있다. 확실히 한국 물건들이 소재는 물론, 색감도 좋고 디자인도 세련됐다. 이것이 처음에는 단순히 ’ 미감’의 차이인가 싶었는데 이곳에서 생활해 보니 이것도 미국식 ‘실용주의’의 일부이자 ‘문화’의 차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기능에 부합한다면 디자인은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전달하는 수준에 머물러도 괜찮다는 느낌이다. 창백한 피부색 때문인지 원색에 가까운 쨍한 색들을 더 선호하며 실제로 그런 색들이 이곳 사람들에게 더 잘 어울린다.

아쉬운 마음에- 하지만, 그래도, 대회를 기념하기 위해 구입하는 대회 굿즈인데 좀 더 디자인에 신경 써줄 수는 없는 거냐고 묻고 싶었다. 이렇게 만들어서 로고만 박아줘도 굿즈에 눈먼 나 같은 사람은 덥석덥석 잘 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는 여러모로 아쉽고 수습 불가능했던 2025년 보스턴 마라톤 굿즈들… 이것이 정말 최선인가요? 엉엉엉-


* 내년 보스턴 마라톤 굿즈는 ‘노랑+파랑’ 오리지널 컬러일 거라고 추측해 본다. 왜냐면 내년이 130주년이니까! 이것 또한 보스턴 마라톤의 관전 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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