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rry up, Sign up!

5K를 뛰고 싶다면, 서두르시오.

by 아오리


미국에 와서 가장 좋았던 것 중 하나는, 어디에 가든 크게 붐비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한국사람 기준’으로 어딜 가도 심한 교통 정체도 없고, 성수기 단풍 명소, 해변가, 축제나 유명한 전시도 붐비기는 하지만 그럭저럭 다닐만했다. 그러나 그에 비해 ‘보스턴 마라톤 5K’ 등록은 생각보다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달리기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영어수업에서 만난 친구가 ’ 보스턴 마라톤 5K‘에 대해 알려주었다. 부담 없는 거리에, 메달과 티셔츠까지 Real Souvenir로 받을 수 있으니 이곳에서 지내는 사람들에게 ’한 번쯤 경험해 볼만한 이벤트’로 여겨지는 것이라며 등록해 보라고 했다. 5Km 정도라면 당시 내가 한창 달리기 시작한 수준의 거리였기에 귀가 솔깃해졌다. 미리 등록 날짜를 핸드폰에 저장해 두고 등록일을 기다렸다.


드디어 등록일! 등록이 10시부터인데 하필 이 날 이 시각에 약속이 있었다. ‘약속 마치고 바로 등록해야지. 뭐 설마 못하겠어?’라는 생각으로 오후에 등록창을 열었더니… 이런, Sold-out이다. 세상에나, 벌써? 이건 내가 예상하고 경험해 온 미국의 속도와는 다른 것이었다. 당일 오후 마감이라니! 이 대회의 영향력을 제대로 몰랐던, 나의 2023년 127회 보스턴 마라톤 5K 출전은 이렇게 헛되이 무산되었다. 마치 올림픽 출전권이라도 놓친 것처럼 허탈해진 마음은 ‘내년에는 기필코 등록하고야 말리라!!!’ 결의를 다지게 했다.


Full Marathon을 뛸만한 역량이 안되는 러너에게도, Boston Marathon Finish Line에서 Race를 마무리할 수 있는 이런 멋진 기회를 주시다니!


그로부터 1년 뒤 2024년 1월, 나는 수강신청을 준비하는 것처럼 컴퓨터 앞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10시가 되자마자 떨리는 마음으로 후다닥 등록을 완료했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9시 50분 즈음부터 신청창이 열려 있었다고… 역시, 미국!!!) 이 날 5K 등록은 작년보다도 더 빨리, 정오가 되기 전에 마감이 되었다. 어쨌든 나에게 정신을 바짝 차리게 해 준, 5K 대회는 온 도시가 나를 응원하는 듯한 열기를 느낄 수 있는 행사였고, 이어지는 10K, 하프 대회 욕심을 내게 만들었다. 덕분에 나는 처음 달리기를 시작할 때는 생각해보지도 않았던 거리들을 계속 달리게 된, ‘꾸준히 뛰는 러너’가 되었고!


6월 말 10K 대회 접수, 11월 초의 하프 대회 접수는 5K만큼 마감이 치열하지는 않았다. 신기했던 것은 10K 대회 보다도 하프 대회의 마감이 더 빨랐다는 것, 달리기를 꾸준히 하며 마라톤 대회의 세계를 알게 되니 그 이유를 짐작해 볼 수 있었다. 러너들에게 하프 대회는 개인의 기록이나 성취의 차원에서 나름 의미를 둘만한 거리이고, 10K는 웬만큼 뛰는 러너라면 더운 날씨에 굳이 대회까지 나가며 참여하지 않아도 되는 거리라는 것, 그리고 이 도시에는 달리기를 사랑하다가 그렇게 ‘고수’가 되어버린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것.


결국 작년 인생의 첫 하프 마라톤 대회를 보스턴에서 달린 후, 남편과 나는 ‘피 끓는 러너’가 되었다. 올해 보스턴 마라톤의 하프 이하 대회들은 당연하게 참가해야 했기에 올해는 ‘Distance Medley’를 신청하기로 했다. ‘Distance Medley’는 5K, 10K, Half 대회를 묶어 한번에 미리 신청하는 것이다. 미리 신청하는 만큼 3개 대회의 등록이 보장됨은 물론, 대회날 별도로 마련된 Medley Tent에 입장할 수 있다. 이곳에서 대회 전후로 준비된 음료와 간식을 먹을 수도 있고, 텐트 안의 전용 Gear Check와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다. 그리고 모든 코스를 완주하면 메달 3개를 엮어 하나로 만들 수 있는 ‘특별 완주 메달’를 받을 수 있으니, 그야말로 Why Not?!? Distance Medely도 등록일 오픈 시간에 맞춰 대기하여 어렵지 않게 성공했다. 삼천 명 접수를 받는다고 했던 이 프로그램도 접수 첫날 오후에 마감되었다. 한창 달리기 열풍이 불기 시작한 우리나라였다면 광클 사태로 몇 분만에 끝났을 텐데, 그래도 이곳은 그나마 여유가 있는 건가? 하지만 이렇게 당일 마감되는 ‘무언가’를 미국에서 보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기에, 이런 빠른 마감이 참 신기한 일이었다.


Boston Distance Medley 등록 완료!! (두근두근두근두근)


한국이나 미국이나, 이제 유명한 달리기 대회에 나가려면 달리기 기록만큼이나 빠른 등록이 필수가 되었다. 광클은 수강신청이나 콘서트, 명절 티켓 예매 때에나 해봤었는데, 혼자 뛰어도 충분한 것을 굳이 모두 이렇게 애써서 대회에 나가서 뛰려고 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음을 러너라면 모두 잘 알 것이다. 대회에서 참가자들과 함께 주고받는 에너지, 연습과는 달리 한 번쯤 깔아놓은 판 위에서 제대로 기록을 내고 싶은 욕심, 대회를 준비하며 차곡차곡 마일리지를 쌓는 즐거움과 뿌듯함, 어쨌든 잘 대회를 잘 뛰어냈다는 성취감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완주 메달과 추억이 담긴 사진들... 그런 의미에서 올해 ’Boston Distance Medley‘를 한 계절에 하나씩 차곡차곡 뛰면서 보스턴에서의 마지막 해를 천천히, 그리고 온전히 즐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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