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TV드라마 '나의 아저씨' 이야기입니다. 주인공 동훈의 동생 기훈은 한 때 잘 나가는 영화감독이었지만 지금은 빌라 계단 청소를 하며 살아갑니다. 기훈은 비록 청소일을 하지만 팬티만은 최고급으로 입는다고 얘기합니다. 동훈이 이유를 묻자 갑자기 사고가 나서 병원에 실려갔을 때 초라한 속옷을 보이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추운 겨울밤, 술에 잔뜩 취한 동훈은 눈 덮인 철길에서 미끄러져 넘어집니다. 그대로 눈을 감고 잠이 들어 고단한 삶의 무게를 내려놓고 싶은 유혹을 느끼지만 비틀거리며 일어납니다. 눈 밭에 쓰러진 동훈은 "오늘은 죽을 수 없어, 비싼 팬티가 아니야"하며 혼잣말을 합니다.
실제로 갑자기 병원에 실려가거나 불의의 사고를 당했을 때 그깟 속옷이 무슨 대수일까요? 그러나 드라마 속 장면은 오래 내 마음에 남았습니다. 아마 제가 낡고 오래된 속옷을 입고 살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동안 저는 최고급 팬티는커녕 색깔도 맞추지 않고 손에 잡히는 대로 입고 다녔습니다. 집에서는 노브라에 늘어진 속옷을 편하다고 생각하며 지냈습니다. 남들이 보지 않으니 신경 쓰지 않았고, 내가 편하니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정말 인생은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것이고 갑자기 병원에 실려가거나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일어났을 때에도 괜찮을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니었습니다. 의식 없는 내 몸이 체면을 차릴 수 있도록 속옷을 갖춰 입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비싼 팬티가 아니어서 죽을 수 없다는 동훈의 독백은 쓸쓸하지만 오늘 죽을 수 없는 이유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속옷은 내 몸에 주는 첫 번째 옷입니다.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은 때로는 팬티 하나로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속옷을 잘 갖춰 입고 전신거울 앞에 섭니다. 비록 젊은 날의 탄력은 사라지고 나잇살이 앉은 몸이지만 속옷을 세트로 입은 것만으로도 보기 좋습니다. 스스로를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거울 속에 있습니다.
이제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존중하기 위해 서랍장을 열고 낡고 오래된 속옷을 골라냅니다. 근사한 겉옷도 좋지만 단정한 속옷에 나를 챙기는 마음을 담아 입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