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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w nina Oct 04. 2023

나만의 슈필라움에서 혼자 사는 즐거움을 누립니다

가족을 사랑하지만 혼자만의 공간과 시간 역시 필요한 것입니다

  어릴 적 살던 집에 다락방이 있었습니다. 벽에 붙은 작은 나무문을 열면 좁고 높은 계단이 나타나고 계단너머  어둑하고 서늘한 공간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허리를 구부리고 올라가 누우면 작은 창으로 옆집 지붕이 보였습니다. 몸부림 두 번 치면 팔이 닿는 작은 공간이었지만 더할 나위 없이 아늑한 공간이었습니다. 엄마의 진소리를 벗어나 혼자 배 깔고 누워 만화책을 뒤적이면 세상 부러울 것이 없었지요. 다락 아래의 일상과 차단된 나만의 공간이 주는 행복감은 지금도 그리울 지경입니다.  




  생각해 보면 그곳이 어린 시절 저의 슈필라움이었던 것 같습니다. 슈필라움은  '놀이(슈필·spiel)'와 '공간(라움·raum)'을 합친 독일어입니다.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나만의 놀이 공간이지요. 그런데 놀이 공간은 어린 시절에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자기만의 공간에서 휴식과 심리적 안정을 취하고 온전한 자기다움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은 성인에게도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직장 다닐 때 한 동안 주말부부로 지냈습니다. 퇴근해 2칸짜리 빌라로 돌아오면 아침에 두고 온 정적이 그대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간단한 저녁을 먹고 소파에 누워 tv를 보다가 1인용 소파에 몸을 파묻고 책을 읽었습니다. 거실에 놓인 기다란 갈색 책상에 찻잔을 놓고 앉으면 행복감이 물밀듯이 몰려왔습니다. 일과를 끝낸 후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시간과 공간을 누리는 즐거움은 상상이상으로 행복합니다. 저는 본가가 따로 있기 때문에 혼자 사는 공간이 전부 슈필라움으로 변할 수 있었습니다. 현실적인 문제와 일상의 요구들은 본가에 두고 혼자 사는 빌라에서는 오직 나의 욕구에만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퇴직과 함께 주말부부 생활을 접었습니다. 필로티로 지어진 빌라촌을 떠나 넓고 쾌적한 아파트로 돌아왔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이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혼자 누렸던 시간과 공간을 떠나는 아쉬움이  고개를 듭니다. 이런 속내를 털어놓자 어린 자녀를 둔 젊은 친구는 주기적으로 지하 주차장에 있는 자신의 차에 내러 온다고 얘기합니다. 차에서 음악을 듣고 혼자 있는 시간을 가지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집은 가족과 아이들이 있어서 조용히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 어렵다고 합니다. 그는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고 가족을 사랑하지만 혼자만의 공간과 시간 역시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집은 멀티공간입니다. 식사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생활을 영위하는 공간입니다. 온갖 현실적인 문제와 걱정과 가족들 간의 요구로 가득한 공간입니다.  게다가 오십 대는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입니다. 직장에 다니던  부부가 퇴직으로 한 공간에 있게 됩니다. 가족이라 할지라도 주말이 아닌 매일을 함께한다는 것은 새로운 상황입니다.  


  다행히 저는 제 방과 책상이 있지만 그곳은 저의 슈필라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모든 방의 문을 열어두고 지냈기 때문입니다. 가족이 함께 집에 있을 때에는 거실에 모여 있거나 방문을 열고 지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가족을 두고 문을 닫으면 어쩐지 가족과 단절되는 기분이었고 가족들도 내가 무엇을 하는지 궁금해할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방문을 닫고 내 공간과 시간을 누리려고 합니다. 가족이라고 해서 모든 것을 공유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은 자기만의 공간과 시간이 필요합니다. 어린 시절의 다락방이 그토록 아늑했던 이유가 엄마의 잔소리 피할 수 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때도 혼자 있는 시간과 공간에서 진정한 나를 만나고 조용히 내면을 응시할 순간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혼자 사는 즐거움은 정말 혼자 사는 것은 아닙니다 가족과 친구와의 관계 속에서 나다움을 잃지 않고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을 누리며 사는 것입니다. 누구 눈치도 보지 않고 마음껏 자신을 드러내고 자신의 취향과 정서를 누릴 수 있는 공간, 어릴 적 다락방 같은 공간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곳이 꼭 집 안이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차 안일수도 있고, 좋아하는 카페나 공원 벤치 혹은 사무실 한 편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곳이 어디든지 자신만의 의미가 담긴 공간에서 자신만의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며 살아갑니다. 자신만의 슈필라움에서 뒹굴거리다 보면 문득 어린 시절 다락방의 그 소녀를 만나게 될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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