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보다 나에게 맞게 입고 싶습니다.
하마터면 영화배우 황신혜 씨에게 연락할 뻔했습니다. 컴퓨터 초기 화면에서 황신혜 씨의 사진을 보았습니다. 우리 세대의 이상형, 영원한 뮤즈 사진에 저절로 클릭을 하게 되었고요. 2023년 6월 그녀는 파리에 있었고 멋졌습니다. 분홍미니 스커트와 에스닉 검정 민소매 탑을 입은 사진아래 "서울에서 못 입는 옷들, 자유롭게 입을 수 있어서 좋다. 입을 수 있을 때 실컷 입자"라는 글을 보았습니다. '아니, 황신혜 씨가 마음대로 입지 못한다고? 다른 사람 눈치를 본다고? 아! 연예인도 외국에 나가야 마음대로 입을 수 있구나' 왈칵 동질감을 느꼈습니다.
출간을 목표로 쓴 둔 '마음대로 살 수 없는 세상, 옷이라도 마음대로 입고 살자'는 글에 추천사를 써달라고 하고 싶었습니다. 안 해주면 할 수 없고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에게 연락해 보자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일이 그렇듯 흥분된 순간이 지나자 그 아이디어는 실행에 옮겨지지 못한 채 시들해지고 말았습니다.
황신혜 씨에게 일방적인 동질감을 느낀 후 그분 사진이 보이면 클릭을 하게 되었습니다. 화이트오프 숄더 톱 아래 화이트숏팬츠 그리고 카우보이 부츠와 모자를 쓴 멋진 모습에 감탄하게 됩니다. 그런데 기사 제목이 " 60세 황신혜, 핫팬츠 입고 드러낸 각선미"였습니다. 또 다른 사진은 등뒤로 프릴이 달린 롱원피스 차림인데 역시 기사 제목은 " 황신혜, 60대에 등 파인 원피스라니.."입니다. 60이라는 나이가 꼬리표처럼 붙어 다닙니다. 사람들이 무엇에 반응하는지 알고 쓰는 기사 제목일 테지요. 우리는 나이에 반응합니다.
'나이에 맞게 입는다'는 말은 언뜻 멋져 보이지만 어쩐지 나이에 맞는 옷이 따로 있다는 듯한 말로 들립니다. 민소매나 숏팬츠는 젊은 사람에게 양보하고 헐렁하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으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는 나이보다 나에게 맞게 입고 싶습니다. 민소매나 숏팬츠를 싫어하는 청춘이 있고 그런 옷을 좋아한 채로 나이 든 사람도 있습니다. 자신이 입고 싶은 대로 입으면 되지 않을까요?
이러는 저도 젊었을 때는 눈치를 꽤 보았습니다. 민소매만 입어도 눈총을 받았고 무릎 위 스커트를 입으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던 새내기 교사 시절을 겪었습니다. 결국 멋 부리기 좋아하던 제가 청바지에 재킷을 교복처럼 입고 다니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한 세월을 지냈는데 이제는 나이에 맞게 입으라고 하는군요.
저는 남 눈치 보지 않고 자신이 입고 싶은 대로 입은 사람을 보면 기분이 좋습니다. 나름대로 멋을 부린 모습을 보면 흐뭇합니다. 자유로움을 옷으로 표현하는 사람을 보면 반가운 마음이 듭니다.
멋지다는 것은 코디를 잘하고 스타일이 뛰어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입고 싶은 옷을 다른 사람 눈치 보지 않고 당당하게 입는 것입니다. 런웨이 옷들을 거리에서 보면 멋지다고 생각할 옷이 몇 개나 될까요? 멋있는 것은 옷이 아니라 옷을 입은 모델의 태도입니다. 남 눈치 보지 않는 무심함과 당당함이 어우러져 멋으로 드러납니다.
이제 눈치 보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모피를 입고 땀을 벌뻘 흘리더라고 내가 입고 싶은 대로, 가슴이 파인 셔츠를 입고 추위에 떨더라도 내가 입고 싶은 대로 입으면 됩니다. 언제까지나 자유롭게 내 만족을 위한 옷을 입고 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