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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유조이 Oct 03. 2023

추억상자 옆에 소망 상자를 만듭니다.

소망 상자는 다가올 날들을 설레게 합니다.

  나이 들면 추억을 먹고 산다고 하지요. 남는 것은 사진밖에 없다고 어디를 가든 열심히 사진을 찍고 소소한 여행기념품을 사 모았습니다. 둘러보면 집안 곳곳에 추억이 담긴 물건들이 가득합니다. 피아노 위에는 아이가 어릴 때부터 찍은 크고 작은 가족사진이 있고 냉장고에는 여행지의 자석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습니다. 


  벽장 속에는 오래된 일기장과  만기일 지난 여권과 손 때 묻은 지갑과 구형 핸드폰이 든 상자가 있습니다. 누구나 그런 추억 상자 하나쯤은 가지고 살아갑니다.  지나온 삶을 보여주는 물건과 사진들은 현재의 내가 갑자기 나이 먹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 줍니다. 하나하나 소중하고 다정합니다. 


  그러나 오십 대는 추억못지않게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 대한 소망이 중요한 때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추억상자 옆에 소망상자가 있습니다. 소망 상자에는 우주에 대고 말하고 싶은 내 소원들이 들어있습니다. 내가 인생에서 원하는 것들을 사진이나 물건으로 넣어둡니다. 그렇게 사진으로 두면 내 소망이 막연한 신기루가 아니라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현실로 다가옵니다. 


  제 소망상자를 열어볼까요? 상자에 넣어둔 첫 번째 물건은 작가 명함입니다.(진짜 작가가 명함을 가지는 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아닐 거라고 생각하지만 저는 출간을 하게 되면 멋진 작가 명함을 가지고 싶습니다) 두 번째는 손잡고 걸어가는 사이좋은 노부부 사진입니다. (우리 부부가 따로 그리고 함께 나이 들기를 소망합니다.) 세 번째는 날씬한 요가복을 입은 사진입니다.(건강과 미를 한 번에 탐합니다.) 네 번째는 술병입니다.( 술맛을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 다음은 함께 웃는 가족사진(가족이 함께 웃는 순간의 행복을 사랑합니다), 손녀와 산책하는 할머니 사진(멋진 할머니에 대한 로망이 있습니다), 퍼스트클래스를 타고 가는 사진(이제 이코노미 말고 퍼스트클래스를 타고 싶습니다), 외제 SUV 사진(튼튼하고 멋진 최고급 차로 차박을 하고 싶습니다), 두바이 7성급 호텔 사진(세상을 두루 구경한 다음 마지막에 갈 장소로 두바이를 꼽습니다), 대강의장에서 강의하는 사진(중요인물이 되고 싶다는 말입니다), 명상사진(마음의 평화를 갈구합니다) 몽골 대초원사진(다시 한번 가고 싶습니다) 고급휴양지 사진(휴양지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수영장이 딸린 호화주택(집에서 수영하며 사는 삶을 소망합니다), 뉴욕 센트럴파크의 가을(뉴욕에서 가을을 맞이하고 싶습니다.)


  적다 보니 물질과 명예욕이 따라 나오네요, 그러면 어떻습니까?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솔직한 내 소망을 담아둡니다. 소망을 이룰 수 있을지, 가능성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습니다. 소망이 새로 생기면 넣고 소망이 사라지면 빼면 됩니다. 소망상자에는 내가 바라는 내가 들어있고 결국은 닮아가게 될 것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어떤 소망들은 이루지 못한 채 남아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도 좋습니다. 소망은 남아서 다른 누군가의 소망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내가 다 이루지 않아도 좋습니다.


  나는 아직도 꿈꾸며 삽니다. 아니 이제야 비로소 꿈꾸며 삽니다. 꿈꿀 시간을 얻었으니깐요.

추억 상자는 지금의 나를 소중히 여기게 하고 소망 상자는 다가올 날들을 설레게 합니다. 그렇게 두 상자와 함께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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