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드니까 복수도 귀찮다. 알아서 망해라." -하상욱-
웃음이 쿡 났습니다. 너무 공감이 되어서요. 귀찮다는 말, 제가 자주 쓰는 말입니다. 동네 산책 나가자는 남편의 말에 '귀찮아 혼자가'를 해버리고 새로운 모임이 생겨도 '뭐 하러 거길 가 귀찮게' 하면서 거부합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 모두 조금씩 귀차니스트의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세차가 귀찮고 딸은 욕실의 머리카락 치우는 일이 귀찮고 남편은 양말을 세탁기에 집어넣은 일이 귀찮습니다. 우리 가족은 소파에서 일어나는 일이 귀찮아 누워서 발로 리모턴을 주고받을 때도 있습니다. 소소한 집안일이나 직장 일은 물론 어떨 때는 밥 먹는 것도 귀찮아서 한 알의 약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귀찮다는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니 ' 마음에 들지 아니하고 괴롭거나 성가시다.'라고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뭔가 빠진 것 같았습니다. 제가 자주 사용하는 ‘귀찮다’는 말에는 ' 지치고 피곤해서 하기 싫다"의 의미가 들어있습니다. '만사가 귀찮다'는 말, 뭔가 하긴 해야 하는데 지치고 힘들어서 하기 싫을 때 자주 쓰는 말입니다.
활력이 떨어지고 에너지가 바닥났을 때 귀찮다는 말은 한마디로 상황을 정리해 줍니다. 몸이 피곤할 땐 데이트도 귀찮은 일이 됩니다. 이미 아무것도 안 하고 있지만 더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는 말에는 번아웃된 내 마음이 나타납니다. 그럴 땐 몸과 마음을 쉬어줘야 합니다.
그럼 컨디션이 좋고 건강하기만 하면 귀찮은 일이 없어야 하는데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내가 잘 모르는 일, 평소에 하지 않던 일을 새로 배워서 하는 것은 확실히 귀찮은 일입니다. 익숙하지 않은 일은 평소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요구합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은 불확실성과 불편함을 견뎌야 하는 일입니다. 귀찮다는 말은 이럴 때 방패가 되어 줍니다. 불확실한 상황에서 오는 불안감과 두려움을 극복하는 대신 귀찮다고 말해버립니다.
많은 경우 '귀찮다'의 반대말은 '편하다'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편하다는 것은 익숙한 것, 나를 긴장시키지 않는 것들입니다. 늘 보던 사람이 편하고 항상 하던 일이 편합니다. 단골 가게가 편하고 입던 옷이 편합니다. 편안함은 확실히 삶에 안정감과 행복감을 줍니다.
그러나 편안함만 추구하고 늘 하던 대로 살면 더 이상 새로운 세상은 없을 것 같습니다. 지금 새로운 만남이나 배움을 거부하면 나중에 많은 문들이 벽으로 변해 자기 세계에 갇히게 될지도 모릅니다. 지금 귀찮음을 피해 편하게만 지내면 나중에 불편해질 수 있습니다. 지금 운동하는 것이 귀찮아 소파에 널브러져 있으면 나중에 병원을 가야 하는 귀찮은 일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작은 귀찮음이 큰 귀찮음을 막는다고 생각합니다.
여전히 주말에 운동화를 신고 동네 산책을 나서는 일은 지구를 들어 올리는 일만큼 힘든 일입니다. 그래도 이제 '귀찮다'는 말대신 '재미있겠다'라고 말하려 합니다. 재미있겠다는 호기심으로 귀찮음의 방패를 뚫고 편안함의 유혹을 물리치려고 합니다. 삶을 설레게 하는 것들은 편안함 너머에 있다는 것을 기억하며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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