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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w nina Sep 20. 2023

아침에는 세수하고 원마일 옷으로 갈아입습니다.

마음에 품고 있던 크고 작은 로망을 실현하기 위해.

  직장인 시절, 어쩌다 평일에 영화를 보러 간 적이 있습니다. 집 근처에 있는 영화의 전당에서 조조 영화를 보고 나오다 넓은 라운지에 흩어져 앉아 노트북을 보거나 한가하게 책을 뒤적이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이제 막 기운을 펼치는 부드러운 햇살이 통유리창으로 쏟아져 들어오고 조용히 움직이는 사람들은 여유 있어 보였습니다. '저렇게 아침의 여유를 누리는 인생도 있구나.' 




부러웠습니다. 나도 저렇게 여기에 와서 아침의 여유를 누려보자 마음먹었습니다. 직장인에겐 주말이 있으니깐요. 그런데 막상 주말이 되니 그렇게 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꼭 밀린 집안일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일단 씻고 나서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씻어야지 씻어야지 하면서 헐렁하고 편안한 잠옷차림으로 하루를 보내고 말았습니다.


  저는 30여 년을 직장을 다녔습니다. 직장인이 가슴에 품고 사는 로망은 저도 다 가지고 있었지요. 출근대신 차를 몰아 그대로 아침 바다를 보러 가는 것, 오전 10시의 느긋한 햇살을 받으며 커피 향을 맡는 것, 좋아하는 음악 틀어놓고 멍하니 하늘을 보며 바람 샤워를 하는 것, 한적한 시간에 서점에서 책 읽는 것 등 셀 수 없이 많은 풍경들을 마음에 품고 살아왔습니다.  


그중 몇몇은 그저 조금 부지런하면 직장을 다니면서도 충분히 누릴 수 있는 것들입니다. 토요일 아침 일찍 일어나 아침 바다를 보고 오고, 일요일 옷을 갈아입고 창 넓은 카페로 향하면 됩니다. 그런데 사실 조금 부지런해지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저는 게으른 사람이라 주말이면 하루 종일 잠옷차림으로 지내곤 했습니다. 바쁘게 보낸 한 주에 대한 보상으로, 쉬어야 한다는 강박증으로 하루종일 잠옷을 벗지 못했습니다. 


  잠옷을 입고 보내는 하루도 필요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날이 반복되면 일상생활에서 요구되는 일도 무시하고 게으름에 빠지고 맙니다. 잠옷차림은 운동도 약속도 귀찮은 일로 만들어 버립니다. 몸을 씻지 않으니 마음이 먼저 알고 드러눕습니다. 이제 퇴직하면 매일 나갈 직장도 없는데 큰일이다 싶었습니다.




  저는 이제 매일일 아침에 일어나면 씻고 원마일 옷으로 갈아입습니다. 세수하고 옷 갈아입는다고 당장 약속이 생기거나 삶의 의미가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약속이 없어도 나갈 준비를 해 두면 몸과 정신이 깨어나는 것을 느낍니다. 가까운 산책이나 카페에서 책을 읽는 작은 로망이 내 곁으로 다가오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작은 변화를 통해 하루를 더 활기차게 누릴 수 있습니다. 

가족과 직장에 매여 마음에 품고만 있었던 크고 작은 소중한 로망을 실현하기 위해 세수하고 옷 갈아입기부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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