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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유조이 Oct 14. 2023

자연스러운 몸의 변화를 받아들입니다.

조금씩 낡아가고 탈이 나는 것을 담담히 받아들입니다.

  밤늦게 채널을 돌리다 23년 9월에 촬영된 고택음악회를 보았습니다. 고택 음악회는 '지역민 참여형 음악감상소'로 벌써 시즌 12를 맞이한 TBC 프로그램입니다. 제가 채널을 고정한 이유는 산울림의 김창완 아저씨가 노래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김창완 밴드로 활동하지만 저는 산울림을 기억합니다. 사춘기 시절 산울림의 노래를 들으며 겪어보지도 못한 사랑에 아파했고, 오지도 않은 청춘의 덧없음에 슬퍼했습니다. 


  김창완 아저씨는 쉬는 시간 없이 한곡이 끝나면 다음 노래를 연이어 불렀습니다.  '그대 떠나는 날 비가 오는가, 너의 의미, 초야, 둘이서, 회상, 찻잔, 청춘, 누나야, 안녕 총 9곡의 노래입니다. 한 곡 한 곡 다 아름답고 보석 같은 노래들입니다.  찻잔이 끝나고 드디어 청춘입니다.   "언젠가 가겠지 푸르른 이 청춘, 지고 또 피는 꽃잎처럼~" 20대 청년은 이제 70이 되어 노래합니다. 15살 뜻도 모르고 따라 부르던 노래를 50살이 훨씬 넘은 지금 듣습니다. 첫 소절을 듣는데 울컥해졌습니다. 단순히 센티했던 시절의 추억소환에서 오는 울컥함만은 아니었습니다.


  방송을 보는 내내 저는 조마조마한 마음이었습니다. 세상 필요 없는 것이 연예인 걱정이라는데 저는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김창완아저씨의 노래를 들었습니다. 목소리가 갈라지지 않기를, 잠겨 들지 않기를, 그가 미안해하거나 당황하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목소리도 늙습니다. '아니 벌써 해가 솟았나' 록을 부르던 김창완아저씨는 이제 나직이 나직이 노래합니다. 끊어질 듯,  숨이 찰 듯 노래는 이어졌고 감동은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나이가 들어도 젊은 시절 못지않은 가창력과 활력을 보여주는 가수들이 있습니다. 굳이 이름을 가져오지 않아도 금방 몇 분이 떠오릅니다. 그런 분들을 보면 감탄하며 손뼉 치게 됩니다. 그러나 자연스럽게  늙어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김창완아저씨를 바라보는 마음은 감동과 감사함으로 울컥하였습니다.


    제가 제 노화의 징조를 처음 발견한 날은 마흔을 맞은 어느 봄날이었습니다.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는 창가벽에 걸린 거울을 무심코 보다 깜짝 놀랐습니다. 희고 빳빳한 그리고 한 뼘 정도로 자란 새치 한가닥을 발견한 것입니다. 까만 머리를 헤치고 조심스럽게 뽑고 나니 어쩐지 그 자리가 간질간질했습니다. 다른 머리카락보다 굵고 힘 있어 보이는 새치를 손에 들고 이리저리 살펴봤습니다. '세상에! 내가 흰머리가 나는구나'  젊음만이 꽉 찼던 날들에 새치 한 올이 끼어들었고, 그것은 노화에 대한 신호탄처럼 여겨져 쉽게 버리지 못하고 손 끝으로 만지작거렸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최근에 오른쪽 눈에 실오라기 같은 먼지들이 뒤엉켜 날아다니는 것 같았습니다. 안과에 갔더니 비문증이라고 했습니다. 망막 내 경계막이 분리되어 돌아다니는 것을 제가 보고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분리된 경계막이 돌아다니다 수정체 앞에 위치하느냐 뒤에 위치하느냐에 따라 환자가 느끼는 불편함의 정도가 달라진다고 했습니다. 망막열공이라는 심각한 질환이 아니라 유리체 노화에 따른 증상이고 따로 치료약도 없다고 했습니다. 놀라서 안과를 찾았는데 병원문을 나설 때는 마음이 편안했습니다. 노화에 따른 증상이라는 말이 주는 안정감이었습니다. 이상하게 들릴 수 있지만 치료약이 없으니 제가 적응하는 수밖에 없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일종의 체념이 주는 안정감이라고 할까요?  나아지려고 애쓰는 대신 지금의 현상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것을 체념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 같습니다. 체념은 '희망을 버리고 아주 단념한다'는 뜻을 가진 명사인데,  '도리를 깨닫는 마음'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습니다. 노화에 따른 몸의 변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은 자연의 도리를 깨닫는 마음에 닿아있다고 생각합니다.


  김창완 아저씨는 40여 년 전 청춘이었던 나에게 노화는 부끄러운 것도 극복해야 할 대상도 아니라고 따뜻한 위로를 건네고 있었습니다. 나의 가수가 어떤 명약으로 회춘하기를 바라는 대신 늙어가는 그 목소리대로 노래해 주기를 바라게 됩니다.  9곡에서 8곡으로 5곡으로, 2곡에서 마지막 남은 한곡의 노래를 불러 주기를 바랍니다.


   누구나 서서히 늙어갑니다. 눈은 침침해지고 관절은 삐끗 대고 기억력도 깜빡깜빡해질 것입니다. 조금씩 낡아가고 탈이 나는 몸의 변화를 담담히 받아들이면 그 또한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나저나 김창완밴드 공연에 꼭 한번 가봐야겠습니다. 손뼉 치고 환호할 열정은 아직 가득하니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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