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마시기 위해 몸 눈치를 보면서 마십니다.
대학 시절 선배가 사주는 술을 마시며 배운 원칙입니다. 당시 제가 다니던 대학가 주변은 술집도 술집이었고 밥집도 술집이었습니다. 노오란 백열등이 딸깍 켜지는 어스름한 저녁이면 왁자지껄한 시장통 밥집으로 하나둘 모여들었습니다. 80년대 사회적 분위기와 젊음이 만나 술을 어지간히도 마셨지요. 독한 소주를 털어 넣고 안주를 향해 젓가락을 뻗으면 선배의 젓가락이 딱 하고 막아섭니다. ‘술 한 잔에 안주 한 젓가락’ 고갈비를 향하던 젓가락을 순순히 돌려 단무지로 향했습니다. 술 마실 일은 많고 돈은 없던 가난한 날들이었지만 함께여서 좋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리스 로마 신 중에 술의 신 디오니소스(바쿠스) 신이 최고라 생각했습니다. “인간이 만든 것 중에 술이 최고야, 비행기도 텔레비전도 술만큼 인간을 위로해 주지는 못해.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드는 건 술이야” 괴로운 일로 마셨거나 좋은 일로 마셨거나 술이 끝날 즈음에 언제나 주문처럼 저렇게 외치곤 했습니다. 어쩌면 술과 함께 젊음을 무사히 통과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술이 인간이 만든 가장 멋진 발명품이라는 생각은 지금도 크게 변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술과 디오니소스가 닮아있다는 생각은 하게 됩니다.
우리가 잘 아는 미다스왕의 소원을 들어준 신은 디오니소스입니다. 디오니소스는 미다스왕이 자신의 스승을 잘 보살펴준 대가로 그의 소원을 들어주기로 합니다. 미다스왕은 자신의 소원대로 손 닿는 것은 무엇이든 황금으로 변하자 매우 기뻐했지만 맛있는 음식도 사랑스러운 딸도 황금으로 변하자 깊은 낭패감에 빠집니다. 결국 소원을 풀어달라고 애원하게 되고 팍트로스 강에 몸을 씻고 원래대로 돌아옵니다. 그 후 미다스 왕은 부귀영화를 버리고 자연을 벗 삼아 살게 됩니다. 디오니소스는 미다스 왕이 원하는 대로 해줄 뿐 손에 닿는 것은 모두 황금으로 변하는 소원이 이루어졌을 때 일어날 참사에 대해 경고하지 않았습니다.
디오니소스의 술도 술잔에서 찰랑일 뿐 경고하지 않습니다. 기분을 달래주는 마법의 묘약 같던 술이 어느 순간 몸과 정신을 잡아먹는 독약으로 변해도 술술 넘어갈 뿐입니다. 결국 토막 난 기억과 쓰라린 숙취의 밤을 부여잡고 다시는 술을 입에 대지 않겠다고 다짐하게 됩니다. 그러나 미다스 왕과 달리 얼마 지나지 않아 굳건했던 다짐은 희미해져 버리고 다시 술이 그리워지곤 했습니다.
술이 무엇이길래 이렇게 다시 찾게 될까 생각해 봤습니다. (중독이라고 말하면 간단하겠지만) 술을 마시면 내 안에 내재해 있던 어떤 위대함 같은 것이 슬며시 빠져나오는 것 같았습니다. 마치 호리병 속의 지니처럼 웅크려 있던 내가 봉인이 풀려 부풀어 오르는 것 같았습니다. 지니로 변한 나는 주변을 향해 세웠던 경계를 무너뜨리고 숨 막히는 현실을 사소한 듯 내려다볼 수 있었습니다. 비록 찰나에 불과하더라도 술을 마셔서 자신에게 관대해지고 타인에게 느슨해지는 기분이 좋았습니다. 저는 그것을 회피나 도피라고 부르는 대신 인간이 인간에게 다정해지는 시간, 인간답게 변하는 순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술을 마신 저는 안 마신 저보다 매력적인 인간으로 느껴졌습니다. 모두 젊었던 날의 이야기입니다.
지금도 저는 술을 좋아합니다. 힘든 일이 지나가면 술로 마무리하고 즐거운 일이 있으면 술로 축하합니다. TV를 보다 삼겹살이 익어가는 불판과 초록 소주를 보면 슬그머니 화면 속에 끼어들어 같이 마시고 싶어 집니다. 이제 술이 왜 좋은지 이유를 묻지 않습니다. 시원한 바람을 좋아하듯, 푸른 하늘을 좋아하듯 그렇게 술을 좋아합니다. 좋아하는 술을 오래 곁에 두고 싶습니다.
그러나 디오니소스는 경고하지 않으니 스스로 경계해야 합니다. 만약 미다스왕이 손에 닿는 것은 무조건 황금으로 변하는 것이 아니라 왼손으로 10번 두드리면 황금으로 변하게 해달라고 했으면 어땠을까요? 황금을 얻는 방법을 까다롭게 가져갔더라면 말이에요. 약간의 제약을 스스로에게 두는 것은 원하는 것을 얻는데 도움이 됩니다.
제가 원하는 것은 '술 마실 수 있는 노년'입니다. 그래서 술은 잔을 세며 마십니다. 기분 좋은 취기와 주정뱅이의 객기는 딱 한 잔에서 나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몇 잔까지만 마신다는 한계를 정해 두지는 않습니다. 그러면 술맛이 떨어집니다. 다만, 내가 마시는 잔의 숫자를 세며 술이 나를 마시지 않도록 경계합니다. '다시는 술을 마시지 않겠다'는 젊은 날의 헛된 다짐을 반복하지 않도록 이제 몸 눈치를 보면서 마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