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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유조이 Oct 13. 2023

사전연명치료의향서를 써 둡니다.

나의 삶을 존엄하게 마무리할 권리를 미리 확보해 두고자 합니다.

  고모가 치매로 P시의 요양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뵈러 갔습니다. 어린 시절 고모와 같은 동네에 살아서 학교가 파한 후 고모가 차려주는 밥이나 간식을 먹곤 했습니다. 요양병원은 숲으로 둘러싸여 조용하고 깨끗했습니다. 그러나 고모의 모습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몇 번이나 이름을 확인하고도 침대에 누운 사람이 고모라고 믿기 어려웠습니다. 흰머리는 가위로 듬성듬성 아무렇게나 짧게 잘려 있었고 침대 한편에 모로 누운 앙상한 몸은 한 줌에 들어올 것 같았습니다. 고모를 부르고 얼굴을 쓰다듬어도 끄응하는 작은 신음외에는 아무 반응이 없었습니다. 자신이 누군지 모른 채 기저귀를 차고 의식 없이 누워있는 저 상태를 살아있다고 해야 할지 의문스러웠습니다. 고모가 자신의 모습을 본다면, 의식이 돌아와 자신의 처지를 깨닫는다면 얼마나 비참해할까 생각했습니다.   


  고모를 보고 온 후 며칠 동안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저렇게라도 살아있는 엄마를 볼 수 있어서 좋다고 말하는 사촌오빠의 말이 가슴 아프면서도 고모가 편히 가시도록 두지 않고 붙들고 있는 사촌오빠가 원망스러웠습니다.  이미 죽음의 문턱에 발을 들인 사람을 잡고 있는 것은 욕심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저렇게 죽고 싶지는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연명치료 포기 각서를 쓰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정확한 명칭은 '사전연명치료의향서'입니다.


    '사전연명치료의향서'는 의학적으로 무의미한 생명만 연장하는 시술을 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미리 밝혀두는 문서입니다. 연명치료란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에게 임종과정을 연장하기 위해  시행하는 시술로 심폐소생술, 혈액투석, 항암체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등을 말합니다.  2008년 회생가능성이 없는 할머니의 인공호흡기를 제거해 달라는 가족의 요청을  대법원이 받아들인 '김할머니 사건'으로 연명의료에 대한 본인의 의사를 밝힐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김할머니는 평소 " 내가 소생하기 힘들 때 호흡기는 끼우지 마라, 기계에 의해 연명하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는 말을 자주 하셨고 자녀들은 할머니의 유지를 따랐던 것입니다.


  만약 고모도 자식이나 의사에게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다면 더 이상 잡지 말고 놓아달라고 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존엄성이 제거된 채 숨 쉬는 것마저 기계에 의존해야 하는 상태를 지켜보는 것은 자식에게도 고통스러운 일 일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숨이 붙어 있는 부모의 인공호흡기를 자식이 떼는 것은  더 고통스럽고 두려운 일이 될 것입니다. 연명의료 결정에 대한 책임을 자녀나 가족이 떠맡지 않도록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해 두려고 합니다.


  죽음을 내 마음에 맞게 선택할 수 없다는 것은 잘 압니다. 그러나 이미 영혼이 떠난 빈 육체에 기계 작동으로 숨을 잡고 있는 삶은 거부하겠다고 말할 기회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의 삶을 존엄하게 마무리할 권리를 미리 확보해 두고자 합니다. 준비된 죽음은 삶의 끝자락을 아름답게 마무리해 준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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