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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은의 점 Dec 01. 2023

또 다시 지독하게 얽혀버린 감기와 나

[퇴고 프로젝트] 23년 11월 29일 수요일 아침의 글

다시 훌쩍거린다. 다시 콜록거린다. 어떻게 기죽여놓은 감기인데, 얄밉게도 삐져나와있다.

새벽 3시에 귀가한 탓이다. 영하 7도인 것을 알았다면 그리 패기롭게 나서진 않았을 것이다. 버스를 기다리면서는 발을 동동 구르거나 정류장 벤치를 중심으로 타원을 그리며 뛰었다. 겨우 기다려 탄 버스는 심야 도로를 신나게 달려, 채 녹지도 않은 몸을 목적지에 내려다 놓았다. 바람에 맞서 씩씩하게 걸어볼랬으나, 맨 두피로 견뎌내기엔 다소 잔인한 새벽 한기에 아쉬운 대로 두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절실함이 낳은 나름의 최선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내 두골은 가르마를 따라서 [뽀각] 소리를 내며 갈라질 것만 같았다. 뜀박질로 체온을 올리면 나을까 싶었다. 하지만 앞을 향해 나아가는 속도가 빠를수록 바람은 더 사납게 두 볼을 때렸고, 안타깝게도 내 집 앞 골목은 4륜차를 제외한 모두가 버거워하는 경사를 지니고 있었기에, 어차피 마시게 될 차가운 공기를 더 빠르게, 많이 몸속에 집어넣게 됐을 뿐이었다. 창백한 얼굴로 집으로 들어와, 따뜻한 바닥에 누워 말랑함을 유지하던 강아지의 구수한 냄새를 맡으며, 한참을 멍-하니 앉아 체온을 끌어올렸다.

현재의 감기는 지난 새벽의 미련함 탓에 겪는 고통이다.

날씨도 확인 않은 채 따뜻하지도 않은 외투를 걸치고서, 자고 가라는 친구를 뒤로하고 나와, 과연 오기는 올까 싶은 심야버스를 억척스레 기다리고, 움직이는 것이라곤 하나도 보이지 않는 광장을 가로질러, 누가 튀어나와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어두운 골목을 뛰어 집에 들어온 것. 극지방의 공기로 채워진 까만 밤 '굳이' 펼쳐진 나의 귀가 여정, 그 과정 구석구석 스며들어있는 어리석음. 이는 모두 나의 미련함이다.

나 같은 유형의 숙주를 감기는 너무도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죽은 체하던 일을 멈추고 기다렸다는 듯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철이 철인만큼, 스스로의 뜻을 아쉬움 없게 펼치고 떠나가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기침과 콧물 사이에서 감기는 내게 질리도록 묻는다.

"스스로를 아끼는 게 그렇게도 어려웠니?"

그럴듯한 대답을 나는 떠올리지 못한다.


(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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