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8월 20일 오후의 글
여름 우리 집 창밖은 초록이 넘실거려, 침대에 누워 밖을 바라보는 일이 참 즐겁다. 청량한 매실 에이드를 닮은 매미 소리에 눈을 감으며 나는 계절을 꿀떡꿀떡 삼킨다. 이토록 더운 나날, 나는 조급한 마음이 시키는 일은 저 멀리 미뤄두고서 부지런히 쉰다. 불안함이 빚어낸 시시한 마음가짐으로 일을 시작하면 10보를 나아가지만 끝에는 12보 후퇴한다. 그러니 지속은커녕 최악의 모습으로 흐지부지되며, 그를 바라보는 내 마음엔 자괴감이 눌러앉아 잘 떠나지 않는다.
관측 이래로 가장 덥다는 2024년의 여름, 나는 틀림없이 좋은 것들만을 내게 떠먹여 준다. 좋다고들 하는 영화를 보고, 좋아하는 동네를 돌아다닌다. 불안은 무뎌진 지 오래다. 그러려니. 없다가도 있는 게 돈이라면 난 돈보다 청춘이 아깝다. 딱 두 번 남은 20대의 여름이 죽게 아쉽다. 지금의 계절을 진하게 느끼려는 억지도 부린다. 열사병을 조심하라는 재난 문자가 울리는 핸드폰을 뒷주머니에 넣고 열심히 걷는다. 에어컨 바람이 새어나가도 창문을 열어, 화끈한 온도의 바람에 나뭇잎들이 부딪히는 소리를 듣는다. 낡은 티셔츠에 번진 땀얼룩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후덥고 축축한 열대야의 공기를 들이키며 늙은 강아지와 동네 강가를 걷는다.
마냥 미련해 보이는 사람도 다 본인만의 뜻이 있다. 어리석음은 낭만이다. 낭만은 계절의 흐름에 파묻혀 느끼고 사색하고 즐기고 시도하는 일이다. 낭만을 추구할 때, 내가 뭘 하고 싶은지 어떤 영향을 미치고 또 받으며 살아가고 싶은지에 대한 작은 힌트라도 얻을 수 있다.
시도라면 자신 있다. 발을 여러 군데 걸쳐두면 그만큼 적은 흔들림으로 서서 버틸 수 있다. 무너지지 않는다. 가장 가깝고 쉬운 자리에 퍼져있는 삶은 거부한다. 대신 내 인생은 이리저리 부딪혀야 하는 운명임에 수긍한다.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될 사람은 아니라는 사실 쯤이야 잘 안다. 벽에 자주 부딪히다 보면 가지 말아야 할 방향도 몸으로 익힐 테니. 그렇게 더듬더듬 나만의 길을 찾아나간다면 언젠간 종착지를 찾겠다. 얼마나 재밌냐고. 당장은 방금 전에 꽤 단단한 벽에 머리를 박았다 치고, 앉아서 쉬어보는 거다. 집에 새로운 식물도 들이고, 그림을 배우고 그리고, 나를 달래는 글을 하나 둘 쓰면서. 현재를 살면서 내게 최선을 다한다. 지금은 10,000보 전진을 위한 5보 후퇴쯤이라고 믿는다. 맘 편히 시간을 축내보려는 노력이다. 나부터 채우고 돌본다. 규칙은 간단하다.
1. 최대한 단순한 것들에게만 마음을 준다.
2. 간단한 목표만을 수행한다.
3. 건강한 하루를 되찾는다.
4. 새로움으로 나를 가꾼다.
거듭하다 보면 빛은 새어 나온다.
쉬는 것에 젬병인 사람도 살아내다 보면 자기만의 쉼을 알게 된다. 신체적인 노화가 시작되는 나이 20살 후반, 내 마음은 부지런히 커져 팽팽하게 팽창하고 있다. 주름살이 질 틈이 없다. 내가 10분 뒤 죽는다면 아쉬울만한 시간은 살지 않는다. 그렇게 미래의 나에게 가슴을 내밀며 떳떳해진다.
'거봐, 된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