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8일 화요일 아침
햇살이 눈부시다. 날씨를 선명하게 느낀다. 가을을 잘 보내주고 있단 증거가 아닐까.
어제에 비하면 유독 휑해진 창 밖 풍경에 아주 조금 슬펐다. 이제 나무들은 제 잎을 다 떨구고 겨울잠에 들어갈 준비를 한다. 운 좋은 놈들은 (예를 들면 가로수) 누군가가 옷도 입혀주고 영양도 꽂아주는데. 산에 뿌리를 내린 애들은 지들끼리 곁을 지키며 추위를 버텨야 한다. 눈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꺾여 쓰러진 나무도 겨울이 지나면 하나 둘 눈에 띈다. 추위에 짓눌려 서서히 바닥을 향해 눕는 나무. 그들은 꼭 기둥도 앙상하고 가지조차 몇 안된다.
그러나 내가 창밖 나무의 겨우살이까지 걱정할 처지는 안된다. 어쩌면 내 기둥과 가지와 뿌리가 더 보잘것없기 때문이다. 대체 언제쯤 올곧고 흔들림 없을 수 있을까. 겨울이란 고됨에 주저앉는 나무가 어쩌면 내가 될 수도 있겠다, 생각하자면 한참을 두렵다.
Eagles:
Desperado,
Why don't you come to your senses? You've been out riding fences for so long now. You are a hard one. I know that you got your reasons. (But) These things that are pleasing you can hurt you somehow.
무법자여,
상식 선으로 돌아와. 울타리 밖을 뛰어다닌 지가 너무 오래야. 넌 참 까다로운 사람이야. 너만의 이유는 있겠지. 그치만 지금 널 기쁘게 하는 것들이 언젠간 널 슬프게 할 수도 있어.
지금 난 마이너스 통장을 파먹고 있다. 인생의 자유에도 한도가 있다면 그렇다. 언젠가의 책임감으로 상환해야만 한다. 청춘이란 명목 아래 이율이 꽤 저렴할 거라 믿었다. 하지만 내가 증식시킨 걱정벌레가 어머니 아버지의 뇌를 파먹고 있었다. 소리도 없이.
대단한 자유라고 말할 수도 없는데. 난 울타리를 넘었을지라도 그 주위에서 크게 멀어진 적도 없는데. 성실해서 떳떳한 내 하루하루는 숫자 앞에서, 상식 앞에서 쪼그라들었다. 미래를 위한 투자의 시간, 충전•인풋의 시간, 도움닫기의 시간 이런 말들은 은행 창구 앞에서 할 수가 없다 (실제로도).
언젠가는 내가 일을 하면 돈이 절로 따라와서 돈이 있었다. 지금은 돈이 없어서 돈을 향해 일로 간다. 마인드 자체가 부정적인 게 문제일까? 뭐 모르겠고.
고모가 엄마한테 그러셨단다. 당신은 일이 구해지지 않았던 청년 시절에 그 시간을 재밌게 보내지 못한 게 후회가 된다고. 그러니 상은이는 너무 처연하지 않았으면, 조급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이왕이면 잘 놀기도 했으면 한다고. 오늘은 내가 나의 고모가 되어주어야겠다.
울면서 보내든 웃으며 보내든 어차피 흘러갈 시간이다. 그러니까..
아무튼, 좋은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