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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미영 Mar 18. 2020

회사에서도 정치를 하자

나를 위한 이사회

몇 해 전 내가 활동하는 여성단체로부터 사내정치를 주제로 강의 요청이 들어왔다. 다른 여성 임원들도 있지만 내가 사내정치를 잘 할 것 같다는 것이었다.


임원으로 성장하고 싶은 차부장급을 대상으로 한 리더십 과정의 커리큐럼을 12가지 항목으로 구성하였는데 그  중 하나로 사내정치가 선정된 것은 특히 여성리더들이 힘들어하는 부분이 ‘정치적인 감각’으로 조사되었기 때문이라 하였다.


나는 강의 준비를 위해 위키피디아를 검색하면서 재미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사내정치’에 대한 자료가 엄청나게 많은 걸로 보아 사내정치는 많은 사람들이 고민하는 주제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내가 발견한 특이한 점은 영문판 위키피디아와 한글판에 나타난 사내정치에 대한 설명이 다르다는 점이었다.


한글 위키에는 ‘사내정치는 고용된 조직 내에서 이익을 얻기 위한 목적으로 기존의 보장된 권한을 넘어 개인적인 또는 주어진 권한을 행사하는 것을 뜻하는 말로 ‘줄을 선다’ 혹은 ‘줄을 세운다’라는 말로도 사용된다…. 직장인 사이에서는 성공하기 위한 조건 중의 하나로 사내정치가 꼽히나 이는 조직의 상호간 신뢰를 떨어뜨리는 등의 문제점도 있다.’ 라고 부정적인 것으로 설명되어 있었다.


반면 영문 위키에 나와있는 ‘Workplace Politics’라는 단어에 대한 해석은 ‘개인적인 이익이나 조직의 이익에 도움이 되는 어떤 변화를 만들어내기 위해 조직 안에서 권한과 네트워킹을 활용하는 것이다. 잘못 활용되어 매우 파괴적인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지만 조직의 내부 기어에 기름칠을 해 주는 윤활유가 되기도 한다.’라고 한글 위키보다는 훨씬 중립적인 것으로 설명되어 있었다. 활용하기에 따라 부정적인 결과를 낼 수도 긍정적으로 활용될 수도 있다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강의를 준비하면서 여성 리더들이 스스로 ‘사내정치’에 대해 남성 리더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사내정치의 부정적인 부분 즉, 개인적인 목적을 위해 권한을 잘못 행사하는 부분이 아닐까 짐작하였다. 30년 직장생활을 하면서 나는 ‘사내정치’에 대해 긍정적인 측면을 위주로 생각해 왔고 그래서 남들에게도 내가 ‘사내정치’에 대해 강점을 가진 것으로 비춰졌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긍정적인 의미에서의 ‘사내 정치’, 즉 조직의 이익에 도움이 되는 어떤 변화를 만들어내기 위해 권한이나 네트워킹을 활용하는 면에서는 여성리더들이 오히려 강점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나의 커리어를 돌아보더라도 내가 어떤 일을 새롭게 제안하거나 변화를 추구할 때 동료들의 시기를 받기 보다는 도움을 받아 왔고 상사도 늘 지지자가 되어 왔던 것 같다.


언젠가 상사로부터 ‘우미영 당신은 내가 지금까지 보아 온 사람들 중에 가장 외교적인 사람이다’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들에게도 내가 다른 사람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사내정치’를 잘 하는 것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당시 맡고 있던 조직이 한국내에서의 사업을 책임지고 있었는데  다국적 기업의 특성상 본사나 아시아태평양지역본부(APAC HQ) 팀의 도움이 없이는 성공하기 힘든 상황이었기에 나는 본부 사람들과 친해지고 그들에게 우리의 상황을 이해시키기 위해 노력을 했고 그 모습이 외교적으로 보였으리라 짐작한다.


사내 정치는 조직내에서 업무수행과 활동을 위해 일상적으로 발휘되어야 하지만 보다 효율적으로 사내정치역량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나만의 정치시스템인 사내 네트워크를 보다 조직적으로 구축할 필요가 있다.


사내 네트워크는 ‘나를 위한 이사회’ 같은 것이다.

회사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조언해 주고 도움을 주는 이사회처럼 ‘나를 위한 이사회’는 나의 성공을 바라기 때문에 나에게 도움을 주고, 회사 안의 소식을 알려주고, 솔직한 조언을 해 줄 사람들로 구성해야 한다. 혼자서 고군분투하고 있고 사내에서 경쟁하는 동료에 비해 정치적으로 밀린다는 생각이 든다면 ‘나를 위한 이사회’가 제대로 구성되어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즉, 의사결정이나 지원이 필요할 때 나를 지지해 줄 나만의 이사회가 제 역할을 하기 위해 어떤 사람들이 있어야 하고, 또한 그들이 과연 내 성공을 진심으로 바래주고 이사회 멤버로서 제대로 활동을 하고 있는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물론 사내에서의 주요한 의사결정이 이루어 질 때 이들 이사회를 접촉하여 나를 위한 지원을 사전에 어렌지 하는 활동도 적극적이고 치밀하게 해 두어야 할 것이다.


나를 지지하는 이사회에서 상사는 가장 중요한 멤버 중 하나이다. 평소 상사와의 신뢰 구축은 기본이고 나의 존재가 상사의 성공을 돕는 사람으로 포지셔닝 되어야 한다. 평소에 상사와 신뢰를 쌓아두면, 좋은 기회를 누군가에게 주어야 할 때 또는 사람을 천거하거나 인선할 때 그는 나를 떠올려 줄 것이다. 상사와 나는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보완 관계라는 점을 기억하면 상사의 단점이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것에 집중함으로써 나의 존재를 더욱 효과적으로 부각할 수 있게 된다. 능력이 부족한 상사를 만나 힘들어하는 경우도 있는데, 만일 내가 상사에게 꼭 필요한 존재가 된다면 상사는 나를 놓치지 않기 위해 승진 기회나 포상의 기회가 있을 때 나를 떠올려줄 것이다.  회사에서 힘든 상사로부터 벗어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그를 승진시키는 방법이라는 것은 언제나 가슴에 새겨 두고 실천해야 할 사내정치 매뉴얼의 핵심 내용이다.


동료도 상사 못지않게 중요한 ‘나만의 이사회’ 멤버이다. 매트릭스 조직으로 서로 협업하는 관계라면 동료는 나의 성공에 절대적인 영향을 주는 요소이지만 과업을 함께 수행하는 과정에서 업무적으로나 관계적으로 갈등이 생기기 쉽다. 이런 관계에서는 내가 먼저 협조함으로써 정치적 우위를 확보하고 책임이 모호한 영역이 있다면 내가 기대하는 것과 줄 수 있는 것을 막연히 짐작할 것이 아니라 분명히 해 두는 것이 중요하다.


한편 과업에 있어서 직접적인 연관관계가 없는 수평적인 동료 관계도 있다. 그런데 이러한 동료들의 평판이 나의 사내 활동에 적지않은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영업을 하다보면 같은 팀의 동료가 큰 딜을 성사시켜 회사나 팀의 주목을 받을 때가 있다. 부러운 마음이 드는게 인지상정이지만 이때도 진심으로 축하하고 기뻐해 주는 것은 나의 관계 계좌에 잔고를 늘리는 일이 될 것이다. 흔히들 ‘배 고픈 것은 참을 수 있어도 배 아픈 것은 못 참는다’고 한다. 그러나 관점을 바꿔보면 동료의 성공이나 실적달성은 나에게도 좋은 일이다. 내 상사의 목표는 나와 내 동료들의 목표로 구성되어 있고 내 동료의 실적이 좋으면 내 상사의 실적이 좋다는 뜻이되니 말이다. 상사의 실적이 괜찮으면 내 실적이 다소 부족해도 부담이 적을 수 밖에 없다. 이렇게 관점을 바꾼 이후 나는 동료의 성공에 대해서도 진심으로 기뻐할 수 있게 되었다.


일을 하다 보면 잘 될 때도 있고 어려움이 닥칠 때도 있다. 내가 잘 될 때 뿐만 아니라 어려울 때 특히 ‘나만의 이사회’의 역할은 중요해 진다. 어떤 일이 잘 돌아가지 않을 때, 나쁜 결과가 예상될 때는 나의 상황을 미리 알리고 이사회 멤버들과의 공감대를 구축하는 것도 중요하다.


나는 사내 정치를 ‘좋은 영향력을 구축하고 발휘하는 행위’로 표현하고 싶다.

영향력이란 후배와 동료, 상사에게 미치는 나의 힘이다. 그것을 통해 업무 목적을 달성하기도 하고 좋은 평가를 받기도 하니 궁극적으로 ‘사내정치’는 성공적으로 사회 생활을 하게 되는 능력, 즉  ‘건전한 정치력’이라고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 정치력이 선한 방향으로 영향력을 발휘하려면 진정성이 기반이 되어야 할 것이다. 상대를 진심으로 위하는 것, 개인적인 이해관계가 아니라 진짜 조직의 이익을 위해 쓰일 때 정치력은 더욱 긍정적인 힘을 발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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