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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이훈 Mar 05. 2022

겨울, 나의 계절

사람들한테 좋아하는 계절이 겨울이라고 하면 많이들 이유를 묻는다. 그 이유를 진실되게 설명하지 못했던 적이 많았다. 왜 그런가 생각하며 걸었다.



기숙사 방 밖 풍경



겨울은 조용하다.



좁디좁은 옷속 틈새를 찾아 비집고 들어오는 냉기 탓에 내복, 스웨터, 코트, 머플러에 장갑까지 겹겹이 옷을 쌓아 입었다. 통통한 아기처럼 목과 팔다리를 가누기가 불편해져 행동거지가 조심스러워진다.



겨울은 봄이 오기 전 쉬어가는 기간이기에 생명들은 가을에 입었던 무거운 빛깔의 겉옷을 잠시 벗는다. 그들의 앙상하고 추레해진 속살 위로 날카롭게 반짝거리는 눈이불을 소복소복 걷는다. 그렇게 눈구경을 하다가 고개를 올려 초점 없이 아주 먼 어딘가를 향해 눈으로 말을 걸었는데 담청과 회갈빛으로 물든 유화의 질감이 살아있는 듯한 풍경에 어떤 대답도 할 수 없어 가만히 서 있었다.



내 옆에서 걷던 친구 하나와 사사로운 대화를 나누다 그에게 전해지는 내 목소리의 발성이 보통 때보다 부드러워졌음을 느낀다. 말하는 ‘나'가 문득 낯설게 느껴져 팔에 살짝 소름이 돋아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머리 뒤쪽 어딘가에서 참새 두 마리가 피리처럼 짹짹 재잘대다가 어디인가 해서 그쪽을 홱하고 바라보니 어느새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멀리 떨어져 가 거센 바람에 휩쓸려가는 두 종잇조각처럼 보였다.





청명해진 겨울공기를 훅 들이마셔 머리 뒤쪽까지 청소했다. 먹색의 두툼한 붓으로 규칙 없이 덧칠되어 무엇을 그리고자 하는 의지조차 찾을 수 없게 된 무한의 캔버스를 순수했던 시절로 되돌리기 위해 여태 나는 같은 먹색의 두툼한 붓으로 캔버스에 남겨진 여백을 메꾸려고 했다. 너무나 허무해서 지금 보면 쓴웃음만 짓게 되는 노력이었다. 겨울공기를 두어 번 깊게 담배 피우듯 들이마셨다. 아무도 찾지 않는 산속 작은 계곡의 물처럼 흐르는 흰 페인트를 끼얹기 시작한 것이다. 이전에 그려진 스트로크들이 침묵하기를 바랐다. 한숨을 푹 쉬었다. 소리가 사라진 그곳을 시골의 자유가 다시 찾았다.



몸 안부터 세상 바깥까지 A키로 조용하게 공명했다. 하늘엔 어두운 남색의 천이 걸쳐지고 땅의 것들은 온통 텅 비어있는 검은 실루엣이 된 풍경을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오다 오는 해엔 어떤 빛깔의 옷을 입을까 즐거운 고민을 하며 다시 태어날 준비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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