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아이를 키우게 된 재혼가정이야기
그냥 나는 내 아이의 아빠를 만들어주고 싶었다. 친아빠에게 받지 못할 사랑을 주는 아빠.
그런데 2년이 지난 지금, 내가 깨달은 것은 과하게 얘기하자면 내가 만들어준 것은 가짜아빠라는 사실이다. 반대로 말하면 나 또한 가짜엄마에 불과하고 스스로 그 사실에 괴로운 중이다.
2년 전 큰 아들이 될 아이가 자폐스팩트럼일 수도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렇지만 경계정도로 심하지 않고, 아직 유아기 6살이 시작되던 아이는 또래랑 조금은 느리고 달라 보였지만 심각해 보이지 않았다. 나는 또 자만했고 성급하게 재혼을 했다.
나는 좋은 엄마가 되어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처음에는 좋은 엄마가 되어주고 싶었고 내가 사랑하는 남편에게도 든든한 동반자가 되어주고 싶었다. 2년 동안 열심히 치료센터에도 데리고 다니고 내 시간을 상당 부분 새로 생긴 첫째 아이에게 할애하면서 나는 좋은 엄마라고 자부하기도 했다. 그런데 사실은 나는 좋은 엄마가 아닌 것 같다.
나는 자꾸 보상을 받고 싶다. 내가 주는 것만큼 첫째 아이에게서 나는 받는 게 없다. 아이가 7살까지만 해도 유치원이 끝나면 항상 오늘은 어땠는지 어떤 게 재미있었는지 친구들이랑은 놀았는지 등등 아이의 일상을 궁금해하고, 아이와 대화를 시도했다. 그렇지만 아이의 대답은 늘 "재밌었어요. 안 놀았어요. 놀았어요" 등 한정적이었다. 한정적이라기보다 아이는 나와 그런 소통을 원하지는 않았고, 나는 점점 목이 말라갔다.
8살이 되고서도 3월, 4월까지는 늘 물었던 것 같다. 오늘 학교는 어땠는지, 어떤 게 제일 재밌었는지. 다만 친구와 놀았는지 등의 질문은 하지 않았다. 서로에게 의미가 없었고, 아이에겐 늘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이 어려워 보였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아이가 으레 하는 항상 같은 대답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이제는 궁금하지가 않다. 그러니 아이에게 학교가 어땠는지, 오늘 뭐 했는지도 잘 묻지 않는다. 그러면서 또 죄책감이 동반된다. 둘째에게는 항상 궁금한 일상이, 더 이상 첫째에겐 궁금하지 않은 자신을 보면서 '친자식이라면... 친아들이라도 내가 궁금해하지 않을까? 친아들이라면 계속 의미 없는 대답이 돌아오더라도 내가 질문을 하고 있진 않을까?' 나는 알 수가 없다. 비단 이 질문만이 다가 아니다. 모든 면에서 나는 지쳐가고 있다.
엄마라면 아이에게 사랑을 주어야 마땅한데, 나는 아이에게 사랑을 주지 못한다. 심지어 다들 이쁘다고 하는 첫째 아이가 나는 이뻐 보이지가 않는다. 둘째를 향한 내 마음이 크고 강해질수록 첫째에 대한 죄책감도 커진다. 나는 왜 이 아이가 이토록 이뻐 보이지 않는 걸까...
오늘은 미루고 미뤘던 상담을 받고 왔다. 첫째 아이를 바꿀 수도, 남편을 바꿀 수도 없는 상황에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을 하고 싶다. 의사는 나에게 내가 너무 높은 목표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의사는 아이케어도 하고, 치료센터도 데리고 다니고, 가고 싶지 않았던 학부모 모임에도 참석하고 아이를 위해 해야 할 건 다 하고 있다고 말해줬다.
나는 사실대로 얘기했다. 하지만 나는 사랑을 주진 못하고 있다고, 아이가 이뻐 보이지가 않는다고. 그게 가장 중요한 게 아니냐고 친자식이 아니라서 그런 것 같다고.
의사는 친자식이어도 아이가 가진 장애는 힘들다고 말한다. 남동생이 반대로 나 같은 상황에서 케어는 다 하고 있지만 사랑을 주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한다면 무엇이라고 할 건지 되물었다.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을 것 같아.."라고 말할 것 같았다. 머리로는 알지만...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하루종일 생각해 본 결과는 좋은 엄마가 어렵다면.. 나쁜 엄마라도 되지 말자는 것. 내가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