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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 종로구 율곡로 83

예술공간 이야기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ARARIOMUSEUM IN SPACE)》, 종로구 율곡로 83


서울엔 좋은 곳이 많죠. 그중엔 한 번 가본 걸로 족한 곳도, 가끔씩 가보고 싶단 생각이 드는 곳도 있습니다. 저는 보통 어디든 혼자 먼저 가보고 그곳에서의 경험이 좋아야 가까운 사람들과 다시 가요. 누군가와의 만남엔 서로의 시간과 돈이 들어가는 만큼, 이왕이면 그 시간과 소비에 대한 보상이 될 수 있는 공간에서 에너지를 쓰고 싶은 의지가 아주 강하거든요. 그러다 보니 친한 사람과의 만남은 대개 제가 일정을 짜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음... 적고 나니 인생 피곤하게 사는 스타일이었네요 제가 ㅎㅎㅎ.


오늘 소개할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서울 구 공간 사옥)는(은), 국내 친구뿐만 아니라 서울을 찾는 해외 친구들에게 보여 주고 싶은 공간입니다. 창덕궁 옆이라 다른 명승지랑 연계하기도 좋고, 북촌, 인사동, 대학로 등과도 도보거리라 이동이 편하고요. 무엇보다 이곳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고 김수근(1931~1986) 건축가가 설계한 건물에 세계적인 컬렉터로 꼽히는 김창일 아리리오 회장의 방대한 컬렉션이 어우러진 공간이라, 예술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꼭 가봐야 하죠. 예술을 잘 모르고 좋아하지 않더라도 생생한 초록빛을 머금은 담쟁이가 감싼 건물의 조화로움은 누구라도 혹하기엔 충분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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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네버레스홀리다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는, 앞서 언급했듯 충남 천안에서 천안종합버스터미널과 신세계백화점 천안아산점, CGV 천안터미널점, 식음료점 등을 운영하는 기업인이자 제주 탑동 아트로드인 아라리오 타운을 개발한 사업가로 잘 알려진 김창일 아라리오 회장의 컬렉션을 바탕으로 구성된 뮤지엄입니다. 그는 갤러리와 미술관을 운영하는 갤러리스트이기도 하고, 국내외 유명 작가 작품을 4,000여 점(2024년 기사 기준)을 보유한 세계적인 컬렉터이기도 하며, 씨킴(C.KIM)이란 활동명을 지닌 예술가이기도 해요.

news-p.v1.20240311.bf72b8d85cd34abab235f66923d84743_R.png?type=w773 C.KIM(1951~,부산). 출처: https://www.mk.co.kr/news/culture/10963289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의 전신은 건축가 김수근의 설계로 1971년 6월 착공되어 1977년 4월 완공된 공간(空間) 사옥입니다. 공간 사옥은 모기업인 공간그룹 부도로 2013년 11월, 매물로 나옵니다. 이 일로 국내 문화 예술계가 크게 술렁였죠. 공간 사옥은 건축계에서의 상징성과 가치가 큰 김수근 건축사의 설계 건물인데다, 공간건축사무소, 월간지《공간》(1996년 창간) 편집실, 화랑, 소극장 등이 입주해 다양한 활동을 펼치며 건축물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닌 그 시대의 대표적 문화 예술공간이었으니까요. 단적인 예로, 1978년 4월 소극장 '공간사랑'의 개관 공연이었던 '심청가'는 공옥진이라는 걸출한 예인(藝人)을 세상에 알려준 무대이자 그를 대표하는 '병신춤'이 선보인 자리였고, 1979년엔 '공간사랑'에서 김덕수 사물놀이패가 '사물놀이'란 이름으로 첫 무대를 가졌죠. 김덕수 사물놀이패는 그 첫 무대를 기념하는 의미로 1995년에 9월 29일을 '사물놀이의 날'로 선포했다고 합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기업, 정부 산하기관, 민간 등 이 매물에 관심을 갖는 곳이 많았고, 정부 산하 기관에 인수되어 시민공간으로 개방되나 싶었는데, 결과적으로 (주)아라리오 소유가 되어 현재의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가 탄생했죠. 당시 뉴스를 보면 시작가 및 낙찰가가 150억 원 정도였는데, 첫 경매 때는 매물 가격을 낮추려는 공작으로 유찰되었고, 그로부터 1시간 30분 후 김창일 회장이 전화를 넣어 구매의사를 밝혀 거래가 성사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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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2014년 9.1 개관 당시 모습. 왼) 건축물이 들어서기 전 모습 출처:https://www.arariomuseum.org/architecture/#/timelin

이후 공간 사옥은 9개월의 개조 공사를 거쳐 2014년 9월 1일부터 대중들에게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가 됩니다. 다행히 우리가 공간 사옥이라 부르는 구관(1971)과 신관(1977)은 2014년 2월 27일에 "서울 구 공간 사옥 (서울 舊 空間社屋, Former Building of Space Group, Seoul)으로 국가등록문화유산(등록문화재 제586호)에 등재되어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긴 합니다. 그래도 이런 상징성 있는 건축물이 민간 소유가 된 건 좀 아쉬워요. 아무래도 건축물보다는 그 안을 채운 컬렉션에 시선이 더 머무는 것도 있고, 공간이 보고 싶을 때마다 매번 만 오천 원이라는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것도 접근성을 떨어뜨리는 이유가 되고요.


참고로,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 콤플렉스(complex)엔 세 개의 건축물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현재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로 사용 중인 서울 구 공간 사옥(담쟁이덩굴이 감싼 건물)이고, 이와 마주하고 있는 장세양 건축가(1947~1996)가 지은 유리 신사옥(1996-1997)은 파인 다이닝 외식공간으로, 이들 사이에 있는 이상림 건축사의 한옥(2002.4-11)과 유리 신사옥 1층은 프릳츠 커피 컴퍼니 원서점으로 사용 중입니다. 그리고 2021년 사들인 아라리오뮤지엄 옆 건물엔 삼청동에서 이전한 아라리오갤러리가 운영 중입니다. 아라리오갤러리 관람은 무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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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 입구 촬영:네버레스홀리다

동선이 복잡하지 않을까 생각할 순 있지만, 입장 후 인포센터에서 표를 구매한 후부터는 자유롭게 돌아보시면 됩니다. 어디로 갈까 고민하지 마시고, 인포데스크에서 구매 후 오른쪽 방향으로 난 계단을 따라 오르면, 그다음부터는 건축 내부 동선대로 구관과 신관을 다 보고 나오게 되고요.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의 전시는 상설전인 '아라리오컬렉션', 장기 기획전인 '뮤지엄 인 뮤지엄 프로젝트', 그리고 2025 상반기 기획전으로 구성됩니다. 공간 사옥의 건축적 특징은 살리면서 다양한 현대미술 컬렉션을 보여주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죠. 먼저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아라리오컬렉션에선 참여 작가 38명의 작품 145점을 선보입니다. 권오상, 더글러스 고든, 백남준, 이동욱, 씨 킴, 김순기, 바바라 크루거, 요셉 보이스, 강형구, 데미안 허스트, 앤디 워홀, 코헤이 나와, 트레이시 에민, 소피 칼, 수보드 굽, 키스 해링, 키키 스미스, 제럴딘 하비에르, 마크 퀸, 데미안 허스트 등 라인업이 화려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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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리오컬렉션 중 일부 촬영:네버레스홀리다

매 층의 모든 공간마다 최소 한두 점의 작품이 놓여있고, 회화, 사진, 영상, 설치 등 장르 구분 없이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을 볼 수 있어 매 공간에 들어설 때마다 기대가 높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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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리오컬렉션 중 일부 촬영:네버레스홀리다

작품 외에도 내부 구조나 이전 공간 용도를 추측하며 보게 되어 관람 시간도 꽤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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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리오컬렉션 중 일부 촬영:네버레스홀리다

그러다 공간과 절묘하게 분위기가 맞아떨어지는 작품을 만나게 되면 시간이 또 무한정 늘어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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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리오컬렉션 중 일부 촬영:네버레스홀리다

전시 작품만큼 공간이 주는 아우라가 굉장히 큰데, 이전 건축물을 훼손하지 않고 그 흔적을 최대한으로 보존하려고 한 흔적들을 벽면이나 작품이 놓이지 않은 여백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 흔적을 통해 상상하는 이전 모습도 재미요소이고요. 건축구조가 복합적이라 같은 작품도 여러 각도에서 볼 수 있습니다.


가본 분은 알겠지만,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의 건축물은 검은 전벽돌로 마감된 외부 디자인에, 개방감이 보이지 않는 외관과 반전인 개방감이 큰 막힘없는 내부, 공간 간 유기적 연결 등이 특징입니다. 건축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어도 이 공간에 들어서 한 걸음씩 내딛다 보면 건축사의 비범함을 여실하게 느끼죠. 매 층마다 공간 변주가 이뤄지다 보니, 지하 1층부터 지하 5층까지 매 층마다 굉장히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달까. 오묘한 구조에 건축가의 치밀한 계산이 추측되는 공간입니다. 폐쇄적인 것 같은데, 개방감이 생각보다 좋아 답답하지도 않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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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촬영:네버레스홀리다

특히 층을 연결하는 내부 계단은, 성인 한 명이 조심스럽게 발을 내디뎌야 하는 정도의 스케일로, Human Scale을 기본으로 계획된 설계 중 가장 인상적인 건축 요소였어요. 그 외에도 벽체, 바닥재 등 재료 변화와 낮은 천장을 가진 크기가 다른 방들의 중첩, 형태 등 눈여겨볼 것들이 풍부하고요. 설계 기획 의도를 설명한 글에 "(건축가의) 공생의 건축관이 잘 드러나는"이란 대목이 자주 보였는데, 일례로, 1971년 건립 당시 창덕궁과 주변 한옥과의 조화를 위해 기왓장 느낌의 전돌을 주재료로 선택했고, 인공적인 것과 자연과의 상생을 고려해 담쟁이덩굴로 외부 벽을 장식했다고 해요. 건축가가 의도한 공생의 의미를 담은 모든 요소를 일반인의 눈으로 다 인지하긴 어렵지만 자연스럽게 깨우쳐지는 게 있긴 해요, 천천히 돌아보다 보면.


아라리오컬렉션은 자연스럽게 ‘뮤지엄 인 뮤지엄’ 프로젝트로 연결됩니다. 2015년부터 2025년 10월 9일까지 "리칭: 8개의 방"이 전시 중입니다. 뮤지엄 인 뮤지엄'은 작가가 서울 또는 제주 아라리오뮤지엄에 머물며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내는 전시 프로젝트로, 다매체로 작업하는 1980년 생 중국 작가들 중 대표성을 가진 리칭은 이 프로젝트를 통해 아라리오스페이스 전시장 내에 아티스트의 다양한 일상을 보여주는 집을 만들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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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네버레스홀리다

미니 살롱, 서재, 작업실, 침실, 다이닝 룸, 가라오케 룸, 샤워실, 화장실로 구성된 공간과 직접 제작한 회화와 사진들이 곳곳에 장식되어 있는데, 작가 취향 가득한 이 공간 디스플레이 중에는 제 맘에도 쏙 든 아이템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지하에 설치된 전시물까지 다 본 후엔 언더그라운드 인 스페이스(underground in space)를 보면 됩니다. 현재 이곳에선 8월 10일까지 2025년 상반기 기획전으로 백정기 개인전 ‘is of’가 진행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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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네버레스홀리다

백정기 작가는 사진, 조각 등 전통 매체에 과학 기술을 접목하는 방식으로 2007년부터 관심을 가져온 치유, 보존, 재생, 자연, 욕망 등에 관한 메시지를 담은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2011년부터 시작된 연작 ‘is of’는 특정 장소의 자연 풍경을 촬영하고, 그 풍경 속 자연물에서 추출한 색소를 활용해 사진을 인화하는 작업으로, 자연 색소가 바래지는 것이 최소화될 수 있도록 사진을 에폭시로 코팅하고, 산소 유입을 차단하는 체임버에 넣어 전시하죠. 그래서 전시장에선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매체적 특징을 지닌 사진이 아닌, "자연에 대한 인간의 소유와 보존 욕망을 드러내며, 존재의 유한함과 무한함의 모순을 탐구" 하는 사진만 있습니다. 생명을 유지하는 건지 소멸을 가속화하는 건지 판단을 헷갈리게 하는 설치를 보면 기괴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는데, 그럼에도 그 안에 담긴 것이 우리 주변 풍경이라는 것이라는 걸 생각해 보면, '그래, 이게 인생이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건물 출구는 언더그라운드 전시장에 있습니다. 이 문을 열고 나오면, 앞서 말한 한옥 건물이 있는 마당으로 연결됩니다. 시간 여유에 따라 신관에서 파인 다이닝을 즐겨보는 일도, 카페에 앉아 휴식을 가져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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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네버레스홀리다

참고로, 레스토랑 뷰는 정말 좋습니다. 창덕궁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이고, 음식도 맛있고요. 개인적으로 한식파라 자주 가보진 않았지만, 특별한 날 좋은 사람과 함께 가기 좋은 선택지가 되는 곳이죠.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는 유료 관람입니다. 성인 기준 만 오천원의 입장료를 받고 있어요. 참고로, 공간이 좁고 위험요소가 있어 10세 이하는 입장이 제한됩니다. 카드 할인이나 어르신 할인 등이 있으니 혜택도 꼼꼼하게 확인한 후 방문하면 더 좋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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