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가벼움과 무거움 vs 현실과 예술 사이 어딘가(ep.3)


<만화> 시리즈 마지막 작가는 '캐리커처의 미켈란젤로 Michelangelo of caricature'라 칭송받는 오노레 도미에 Honoré Victorin Daumier(1808-1879)입니다.


2007년 12월-2008년 1월까지 <오노레 도미에 - 파리의 풍자꾼 Honore Daumier-The Parisian Caricaturist> 이란 타이틀로 서울대학교미술관에서 159점의 작품이 소개된 적이 있어요. 그 시절 서울 시내 전시란 전시는 다 뽀개고 다닐 때라 왕복 4시간의 거리가 문제 되진 않았었는데, 귀찮아지는 건지~ 늙어가는 건지~ 이젠 거리가 먼 전시는 한 세 번 정도 생각하고 가게 되더라고요. 그래도 그 전시가 인상 깊긴 했는지 도록을 사 가지고 왔는데 10여 년이 훌쩍 지난 지금 이 글을, 쓰면서 다시 꺼내 봤어요.

누군가의 말처럼 역시 책은 사두면 언젠가 보게 되긴 하네요 ^^*

K0000011_cul63512[W680-].jpg <철도 열차 안에서>4. '르 샤리바리'지' (1864) 이미지 출처: 씨네 21


오노레 도미에 Honoré Victorin Daumier(1808-1879)는 시민항쟁이 빈번하게 일어난 19세기 프랑스에서 사실주의 화가 · 풍자화가 · 판화가로 활동한 인물입니다. 부르주아 계층에 대한 신랄한 비판, 정치 탄압과 권력, 사회적 불평등과 위선을 풍자적 필치로 그려내면서 더 유명해지긴 했지만 일상생활에 대한 묘사 역시 탁월했던 작가입니다. 시인 샤를 보들레르 Charles Baudelaire(1821-1867)는 그를 당대 최고의 소묘 화가로 꼽으며 “풍자만화에서뿐만 아니라, 근대미술의 모든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화가 중 한 사람”으로 극찬했고 대중들은 물론 들라크루아(1798-1863), 반 고흐(1853-1890), 피카소(1881-1973) 등 선후배 화가들에게도 사랑받은 아티스트입니다. 물론 지금도 세계 유수의 박물관 미술관에 소장된 그의 작품을 통해 대중들에게 꾸준히 사랑받고 있고요.

800px-Honoré_Daumier_c1850_-_crop.jpg
benjamin.jpg
(좌)오노레 도미에 (1853) (우) BENJAMIN ROUBAUD 가 그린 담배 파이프를 물고 있는 도미에(1837) 출처:https://www.daumier.com


도미에의 아버지는 마르세유의 유리 시공사(glazier) 겸 시인으로, 도미에가 7살 때 시집 출판의 꿈을 이루기 위해 파리로 떠났고 이를 계기로 이듬해 온 가족이 파리로 옮겨옵니다. 하층민이 다니는 일반 학교에 진학한 도미에는 그보다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 했고 아버지는 그에게 자신의 친구인 알렉상드르 르누아르 Alexandre Lenoir (1761–1839)를 소개해 주죠. 고고학자 · 예술가인 르누아르는 프랑스혁명으로 사라져 가는 역사적 가치를 지닌 기념물·조각·무덤 등을 보호하는 데 평생을 바친 인물로, 도미에는 그를 통해 루벤스(1577-1640)와 티치아노(1488/90-1576), 고전 조각상 감정 등과 같은 예술에 관한 기초 지식을 배우게 됩니다. 학업 역시 예술 학교인 Académie Suisse로 옮겨서 본격적으로 미술을 공부하는데, Académie Suisse는 도미에를 시작으로 피사로(1830–1903) , 마네 (1832–1883), 세잔 (1839–1906) , 모네 (1840–1926) 등 프랑스를 대표하는 예술가들이 거쳐간 학교입니다. 이 시절 루브르를 자주 다니며 작품들을 따라 그리기 시작하고 조각가, 석판화가 등과도 교류를 시작하죠.


800px-Death_of_Marat_by_David.jpg
Jacques-Louis_David_006.jpg
자끄 루이 다비드 작품 - (좌) 마라의 죽음(1793), 벨기에 왕립미술관소장 , (우) 나폴레옹 1세의 대관식(1806), 루브르 박물관 소장


르누아르는 미학가· 신고전주의 화가인 자크 루이 다비드 Jacques-Louis David(1748-1825)의 학생이었는데요, 프랑스혁명의 전폭적인 지지자이자 루벤스 Peter Paul Rubens(1577-1640) 작품의 수장가 이기도 했던 다비드 역시 중세와 동시대 조각과 같은 문화재 보호에 앞장선 인물이죠. 결국 국외로 추방되긴 하지만 나폴레옹이 황제가 된 후 궁정화가로 활동했었죠. 유명한 작품이 많아서 살짝 언급드렸어요~


도미에는 생계를 돕기 위해 어려서부터 돈을 벌기 시작하는데, 첫 직장인 법원에서는 심부름을, 이후 서점 점원 등으로 재직합니다. 1825년부터는 예술가로서의 경력을 본격적으로 쌓기 시작하며 작품 분석과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을 키우게 됩니다. 하지만 그가 원했던 순수예술의 방향과는 다르게 석판화 방식의 초기 캐리커처 스타일로 초상화를 제작하게 되죠.


DR4003.jpg
DR4004.jpg
저작권 보호를 위해 제출한 첫 작품들 (좌) 1822년 LD A.(우) 1822년 LD B 출처:daumier.com


도미에는 『라 실루엣 La Silhouette 』(1829-1831), 『라 카리카튀르 La Caricature 』(1830-1843), 『르 샤리바리 Le Charivari 』(1832-1937) 등의 신문·잡지에 정치 풍자 작품을 게재하면서 이름을 알리게 되는데요, 첫 석판화 작품은 『라 실루엣 La Silhouette 』에, 그가 제작한 3,958점의 석판화 중 3,382점은 『르 샤리바리 Le Charivari 』에 발표되면서 대중과 당국의 관심을 받게 됩니다. 당시 정치인·법관 등 권력자나 부르주아 계층의 부패와 서민에 대한 착취는 그의 캐리커처를 통해 낱낱이 고발되었고,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 전체 인구의 1/3밖에 되지 않았던 거대한 대중을 정치적으로 계몽하는데 그의 캐리커처들이 큰 축을 담당했다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1835년 검열법 때문에 직접적인 정치적 언급은 피해 갔지만 동시대의 일상과 풍속을 그리는 등 작품 활동을 멈추지는 않았어요.


그렇게 1879년(71세) 뇌졸증으로 죽기 전까지 4000점 이상의 석판화를 제작하는데, 이는 대중들에게 더 많은 보급을 위한 선택이었고, 시각을 거의 잃어가던 1873년까지도 석판화뿐만 아니라 4000점의 삽화 드로잉, 1000개의 목판화, 회화, 조각 등 다양한 매체로 작업을 지속합니다.(전해지는 작품 수에 대한 언급이 일정치 않습니다.)

1024px-Honoré_Daumier_-_Gargantua.jpg 가르강튀아 Gargantua 이미지 출처: https://www.daumier.org/biography/daumiers-life/


도미에의 정치 풍자 작품 중 가장 유명한 작품은 시사주간지 『라 카리카튀르 La Caricature 』에 실린 <가르강튀아 Gargantua(대식가)>(1831)입니다. 이 잡지는 특히 부르주아 중심으로 정치를 이끌다 1848년 2월 혁명으로 폐위당한 루이 필리프 1세 Louis-Philippe Ier(1773-1850)를 반복적으로 공격했는데, 당시 왕의 얼굴을 직접적으로 그릴 수 없었던 탓에 왕의 얼굴을 닮은 서양 배( 바보·멍청이·얼간이를 의미)로 그려 왕을 표현했다고 합니다. 도미에의 그림에서도 배(pear)를 닮은 필리프 1세를 찾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La-Caricature-1.jpg
Caricature_Charles_Philipon_pear.jpg
Les poires" ("The Pears"), published 1831 in La Caricature 출처: 위키피디아


또 루이 필리프 휘하에서 국민군 사령관에 임명되어 입헌 왕정 성립에 진력한 라파예트(Marie Joseph Paul Yves Roch Gilbert Motier, Marquis de Lafayette(1757-1834)를 저격한 작품 <악몽 Le cauchemar>(1832)에도 서양 배가 등장합니다.


DR0041.jpg
DR0042-1.jpg
(좌) DR41: "Le cauchemar" (the nightmare)(1832) (우) DR42:"Les masques (1831) 출처: daumier.com


도미에는 엄청난 세금 인상에 대한 항의 표시로 <가르강튀아>를 발표하는데, 국왕 루이 필리프를 가난한 백성들이 바친 재물을 삼켜버리는 대식가 가르강튀아(Gargantua)로, 그의 혀는 물자가 운반되는 컨베이어 벨트로 그려내죠. 또 국왕 아래에서 그가 배설한 쓰레기를 놓고 실랑이하는 인물들을 정치인으로 묘사합니다. 하층민과 부르주아 엘리트 사이에서 민중을 대변하지 못하는 지배계급의 부패와 착취를 그린 이와 같은 정치적 캐리커처들은 루이 필리프를 분개하게 했고, 정부에 의해 석판 인쇄용 석판 lithographic stone이 훼손되고 거의 모든 인쇄본들이 압수당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죠. 도미에는 이 작품으로 혹독한 유명세를 치르게 되는데요, 친구들과 함께 1832년 체포되어 500프랑의 벌금을 내는 한편 악명 높은 파리의 생트 펠라지 감옥에서 6개월간 실형을 살게 됩니다. 검열로 인해 주간지 역시 폐간에 이르는 등 후폭풍이 거셌죠.


가르강튀아는 원래 16세기 프랑스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소설가 프랑수아 라블레(François Rabelais)(1483-1553)가 1534년에 출판한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 La Vie Inestimable du Grand Gargantua, Père de Pantagrue 』 1권(전체 5권)에 등장하는 캐릭터입니다. 중세 말기 봉건주의와 가톨릭 교회를 풍자하기 위해 만든 거인이자 대식가로 식욕뿐만 아니라 체력·지식욕이 뛰어난 괴물과 같은 사람이죠.

프랑스와 라블레는 셰익스피어, 세르반테스와 비견되는 작가입니다. 우리나라에도 번역본이 있으니 참고해보세요.


DR0135.jpg Rue Transnonain, le 15 Avril 1834, lithograph by Honoré Daumier, 1834; in the Rosenwald Collection,


석판공·풍자화가·기자이자 『라 카리카튀르 La Caricature 』, 『르 샤리바리 Le Charivari 』의 편집자인 샤를 필립론Charles Philipon (1800-1861)은 캐리커처 검열 과태료를 납부하는 것을 돕기 위해 월간 인쇄 클럽의 일종인 석판화협회 L'Association mensuelle lithographie를 설립합니다. 이 협회에 가입하는 사람들은 매달 큰 석판 인쇄물을 받을 자격이 주어졌는데, 이 클럽을 위해 제작된 판화 24장 중 5장은 도미에의 작품이었고, <Rue Transnonain, le 15 Avril 1834>이 시리즈의 마지막 판본이었죠.


<1834년 4월 15일 트랭스노냉 거리 Rue Transnonain, le 15 Avril 1834>는 국가적 살인 행위에 의해 희생된 익명의 가족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전달하는 작품으로, 여기저기 늘어져 있는 주검과 그 아래 깔린 아이의 모습을 보면 당시 이들이 살해당했다는 것을 알 수 있죠. 1834년 4월 파리에서 벌어진 광범위한 소요 기간 동안 벌어진 일로, 노동자들의 시위가 격화되며 병사 1명이 죽자 이에 격노한 병사들이 한 가정을 몰살시킨 사건을 내용으로 하고 있습니다. 결국 국가적 살인 행위에 대한 예술적 고발은 검열 재도입과 정치적 캐리커처 금지로 이어지게 됩니다.

1280px-Honoré_Daumier,_The_Third-Class_Carriage_-_The_Metropolitan_Museum_of_Art.jpg
Honoré_Daumier_034.jpg
삼등열차 (좌)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1862)(우) National Gallery of Canada(1863-1895)


<삼등열차The Third-Class Carriage>(1862)는 도미에의 유화 대표작으로 그의 회화적 기술과 사회에 대한 시선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정치계·법조계 등의 부르주아지 풍자 외에도 일반 대중의 일상을 비판적으로 그려낸 도미에는 교통수단 안에서 보이는 사회적 서열 형태 묘사에도 집중하죠. 1843년부터 1858년까지 『르 샤리바리 Le Charivari 』는 <철도 Les Chemins de Fer>라는 대중교통을 주제의 석판화 시리즈를 싣게 되는데, 그중 "겨울철에 3등석을 타고 여행하는 여행자들은 점점 더 고마움을 표현하지 않는다."라는 표제를 달고 있던 1856년 12월 25일 신문에 실린 그 작업이 <삼등열차>의 사전 작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the_first_class_carriage.jpg
the_second_class_carriage.jpg
오노레 도미에 (좌)일등열차(1864) (우) 이등열차 (1864) 출처:위키미디아


도미에는 1878년 이후에야 판화· 유화· 소묘· 조각 작품을 모아 첫 개인전을 열었지만 그리 주목받진 못했다고 합니다. 이후 거의 실명 상태가 되면서 경제적인 어려움도 겪었고요. 결국 친구인 카미유 코로 Jean-Baptiste-Camille Corot(1796-1875)가 파리 외곽의 발몽두아Valmondois에 마련해 준 집에서 살다가 1879년 생을 마감합니다.


100년도 더 지난 작품들이 현재에도 울림이 있는 건 사회가 반복되기 때문이라서... 이겠죠? 사회가 더 나아졌다고 해도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것들은 여전히 존재하니까요. 그래서 투표는 중요한 거고요.


하루의 시작과 끝을 COVID-19로 보낸지도 2달.

잡힐 듯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국내 상황이지만 그래도 곧 있으면 나아질 거라는 희망적인 마음을 놓지 않으며 사회적 거리두기에 적극 동참하고 있습니다. 한편으론 엄청난 속도로 늘어가는 해외 확진자 소식에 그곳에 있는 친구들 걱정이 다시 앞서는 요즘이기도 하고요.


세상 어디도 안전지대는 없겠지만, 그래도 개인위생 잘 준수하고 기본적인 사회 매너를 잘 지키면 '잃어버린 봄' 대신 '두 배로 행복한 여름·가을·겨울'이 오지 않을까요?

당장의 나의 불편함이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보다 순간적으로 앞설 수는 있지만, 그래도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니까 우리 조금만 더 타인을 배려하는 성숙한 시민의식으로 하루빨리 이 상황에서 벗어났으면 좋겠습니다.

KakaoTalk_20200318_205434213.jpg
KakaoTalk_20200318_205434043.jpg
파란 하늘, 푸른 서울© 네버레스 홀리다


오늘도 행복하세요 ~ 다들~


sticker sticker


https://www.daumier.org/

https://fr.wikipedia.org/wiki/Honor%C3%A9_Daumier

https://www.artic.edu/collection?artist_ids=Honor%C3%A9-Victorin%20Daumier

https://www.britannica.com/biography/Honore-Daumier/Impressionist-techniques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3570553&cid=58862&categoryId=58878



#오노레도미에 #풍자 #캐리커처 #삼등열차 #가르강튀아 #대식가 #르실루엣 #샤리바리 #카리카튀르




keyword
이전 06화만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