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이야기
《스테판 사그마이스터 STEFAN SAGMEISTER: NOW IS BETTER 》, DDP, (~2024.3.3)
인스타 하시나요? 저는 경험 기록용으로 씁니다. 전시나 공연·답사·체험에 대한 이미지만 올리는 거죠. 그러다 보니 친구들과 주소 공유를 하진 않는데, 이런저런 조합 끝에 저를 찾아낸 친구들은 그 노력이 가상해서 그냥 두긴 해요. 대부분이 전시 사진인 데다 몇 주간의 기록을 한 번에 몰아 올리다 보니 "너는 매일 전시만 보냐"라는 말을 듣는데, 매일은 아니지만 한 번 마음먹고 나가면 적게는 5,6곳에서 많게는 10곳 이상 들렀다 오니 그런 말을 들을 만하죠. 외출엔 기본적으로 드는 시간이 있는데 하나만 보고 들어오는 건 너무 비효율적이거든요, 제 기준엔. 물론 국립중앙박물관이나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리움 전관 전시라면 얘기가 다르지만요. 그러다 보니, 가급적 갤러리나 전시장이 몰려있는 곳 위주로 다니고, 중간에 밥과 차를 마실 공간도 잘 갖춰진 곳을 선호합니다. 소개하고 싶은 전시는 많지만, 아무래도 연말 마지막 전시 소개가 될 듯하여, 그중에서 전시 내용, 비용, 접근성, 주변 볼거리 등을 고려해서 선별해 봤습니다.
부연 설명이 필요 없는 동대문디자인센터(DDP)엔 늘 전시가 진행 중입니다. 대개 규모가 있는 대형 전시 위주로 홍보가 되다 보니 전시는 다 유료겠구나 싶을 텐데, 꼭 그렇진 않아요. 상설전, 기획전, 협력전, 대관전 등으로 전시 종류도 많고 무료 전시도 많은 데다, 전시 기간이 어지간해서는 다 깁니다. 그리고 누리집에 게재된 것 외에도 돌아다니다 보면 상품과 결합된 무료 체험 전시들도 있어서, 체력만 허락된다면 5,6개의 무료 전시를 볼 수 있어요. 동대문역사관과 동대문운동장 기념관 상설전 포함해서요. 저는 기획 전시 외에도 상설전과 매거진 라이브러리도 종종 들리는데, 재밌고 알찬 자료들이 많아 방문이 늘 즐겁습니다. 여유롭고요.
그중에서 오늘 소개할 전시는 디자이너 스테판 사그마이스터의 《 NOW IS BETTER(지금이 더 낫다)》로, 전달하는 메시지와 구성도 좋은데, 실내 전시와 실외 전시, 상영시간 95분의 다큐멘터리 영화도 무료로 볼 수 있어 더 좋습니다. 전시와 영화는 디자인 랩 4층에서 진행되는데, 특별한 관람 순서가 있는 건 아니지만 먼저 전시장으로 이동해 전시를 보고, 야외 설치작인 <We’d rather be alive than dead( 삶은 그 어떤 경우에도 죽음보다 아름답다)>를 본 후 다큐멘터리 영화인 <Happy film>을 보길 권합니다. 저는 딱 반대로 봤는데, 그렇게 보면 잘 이해가 안 됩니다 ㅎㅎㅎ
전시엔 롭마이어 글라스, 일리 에스프레소 컵, 손목시계, 사그마이스터 123 의류, 위치에 따라 도상이 달리 보이는 렌티큘러와 앤티크 그림에 혼합 매체를 적용한 작품 등 100여 점의 작품이 출품되었는데, 전시 규모가 크진 않아도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어 보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섹션은 구분되어 있지만 지정 동선대로 보면 되고요. 그냥 보기에도 예쁘고 감각적인 이 작품들은, 과거와 현재의 데이터를 비교해 ‘지금이 더 나은 세상이다’라는 긍정적인 메시지를 시각화하고 있는데, 작가는 기대 수명, 빈곤, 범죄율, 대기 오염이나 온실가스 배출 등에 대한 지난 50년에서 200년 사이의 객관적이고 다양한 데이터를 살펴보면서 인류의 삶이 더 나아지고 있다는 걸 확인했다고 하죠. 뭐 뭐든지 빛과 어둠이 있으니 통계를 너무 단순하게는 받아들이지 말아야겠단 생각도 들지만, 표현 방식은 확실히 예술가적이라 좋았어요. 저는 특히 렌티큘러 작품이 좋았습니다.
어쨌든 그가 확인한 객관적인 데이터는 작품 속에서 색과 면 등의 디자인 요소로 표현되어 있는데, 전시 캡션이 따로 붙어있지 않으니 전시장 입구에서 나눠주는 관람 자료를 꼭 받으셔야 합니다. 안 주면 인포데스크에서 가져다가 보셔야 해요. 안내 자료 번호에 기재된 번호와 작품 번호를 대조해 보지 않으면 어떤 통계를 기반으로 만든 건지를 전혀 이해할 수가 없거든요. 또 이번 전시만을 위해 특별히 한국의 데이터를 적용한 ‘서울 DDP 연간 방문객 수’, ‘한국의 박물관 수’와 같은 서울 에디션 작품 5점도 있는데, 절대로 알아낼 수가 없어요, 안내 자료가 없다면. 아! 전시실에 있는 영상도 봐두셔야 합니다, 그렇게 길진 않아요.
실내 전시를 본 후엔 잔디마당에 설치된 공공디자인 설치 작품 <We’d rather be alive than dead( 삶은 그 어떤 경우에도 죽음보다 아름답다)>로 이동하면 됩니다. 실내 전시장에서도 일부가 보이긴 하지만 잔디마당 전체에 설치된 작품이라 12시부터 1시간 30분 간격으로 진행되는 외부 작동 시간에 맞춰서 보셔야 해요. 추우니까, 실내 전시를 보다가 작동되는 거 보고 나가면 딱 좋죠.
이 작품은 DDP 전시를 위해 특별 기획되어 이미 9월부터 선보였는데, 실내 전시와 다르게 올 12월까지만 볼 수 있으니, 보고 싶다면 서두르셔야 합니다. 긴 막대형 조형물의 외형은 주유소나 개업 상점 앞에서 호객용으로 설치된 에어 댄서에서 디자인 요소를 가지고 와서 처음 보는 작품이지만 눈에 아무 친숙합니다. 작품 초입에 있는 모니터에도 설명이 있지만, 이 작품은 “UN에서 발표한 데이터 중 발견한 지난 120년간 한국의 기대수명 데이터의 추이를 보며, 한국의 기대수명이 지난 120년 동안 거의 4배 가까이 증가하여 전 세계 국가 중에서도 가장 큰 폭으로 증가했고, 기대수명이 그 시대의 의료와 복지, 경제 수준을 반영하는 중요한 지표로 인식되며, 이 급격한 상승은 대한민국이 얼마나 빠르게 성장했는지를 보여준다"라는 내용을, 열린 공간에 막대그래프처럼 시각화하여 보여주고 있죠. 제작 과정은 실내 전시장에서 확인할 수 있어요.
작가의 긍정 메시지는 그가 찍은 95분의 다큐멘터리 영화 “Happy film”에서 다시 한번 정리됩니다. “행복한 삶”은 누구나 꿈꾸지만, 자신이 만족할 정도로 그 행복을 느끼기는 어렵죠. 작가 역시 오래 사귄 연인과 헤어지면서 행복 지수를 높일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게 되는데, 영화 속에선 그 지수를 높이는 방법으로 ‘명상’, ‘심리 치료’, '약물' 세 가지 실험을 진행합니다. 영화는 그 과정을 기록해 보여주고 있어요. 어떤 것이 가장 효과적이었는지는, 영화를 통해 확인해 보세요. 힌트를 드리자면,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것. 자극적이지 않은 다큐멘터리 영화로, 작품 제작 과정이 등장하긴 하지만 해설 내용은 거의 담고 있지 않는 데다 소재나 내용상 성인이 보기에 적합합니다. 사전 예약 후 관람할 수 있으니 네이버 예약을 통해 예약 후 참석하세요. 신청한 분이 없으면 상영을 하지 않으니까요. 현장에서도 예약을 받는지는 전시장 인포데스크에 문의해 보시고요.
영화까지 보고 난 후엔 엘리베이터를 타지 마시고 나선형의 통로로 내려가세요. 그럼 3층에서《 NEW HERITAGE 》라는 제목의 브랜드 AGO의 조명 전시를 만나게 됩니다. 아고 조명은 세운 상가에 있는 스튜디오에서 본 적이 있는데, 여기에서 좀 더 자세하게 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오는 21일부터는 DDP 겨울축제로, 서울라이트 DDP 프로그램이 은색 외관을 캔버스 삼아 저녁 6시부터 9시 30분까지 상영됩니다. 서울라이트 광화문은 15일에 시작해, 지금 광화문, 청계천, 송현동 녹지 광장에 가면 알록달록한 조명들과 미디어 파사드, 조명 등을 볼 수 있어요. 광화문에 너무 많이 설치되어 좀 정신이 없긴 하지만, 그래도 재밌는 구성들이 많으니 기회가 되면 가보시고요, 광화문 일대와 달리 DDP에선 올해까지만 진행되니 유념하시고요.
올해도 전시는 참 많이 봤는데, 포스팅을 할 수 있는 여유를 갖지 못하다 보니 제 눈만 즐거웠네요. 자주 기록을 해두자 마음먹어도, 글 한 편을 쓰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니 늘 바람으로만 남았고요. 대체 블로거 몇 년 차가 되어야 빨리 쓰는 요령이 느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연말까진 좀 분발해 보겠습니다. 이젠 생활 패턴이 좀 단순해졌거든요.
앞으론 추운 날들의 연속일 텐데, 모두 옷 따뜻하게 잘 챙겨 입고 추위에 지지 마세요~연말이라고 다들 들썩거리는데, 아파서 못 즐기면 나만 서럽잖아요. : )
그럼, 미리 메리 크리스마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