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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로 Nov 01. 2022

딸이 예술 고등학교에 떨어졌다

이제 즐기기만 하면 된다



“나 이거 정말 하고 싶었어.”

딸이 기다랗게 붙인 손톱을 보이며 환하게 웃었다. 두 시간을 방에서 꼼짝 않고 있더니, 연예인처럼 예쁘게 칠한 긴 손톱을 붙이고 방에서 나왔다. 드디어 웃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하루 종일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는데, 웃는 모습을 보니 이제야 한시름 던 듯 안심이 되었다.




 딸이 예술 고등학교 시험에 떨어졌다. 지난주 화요일에 시험을 보고, 금요일에 결과를 알게 되었다. 여섯 살 때 처음 시작한 피아노를 열여섯 살까지 쳤으니 10년을 쳤다. ‘네 꿈이 뭐야?’라고 물었을 때 언제나 자신 있게 ‘피아니스트’라고 대답하던 아이였다. 이제는 어떤 꿈을 말하게 될 지 모르겠다. 불합격 통지서는 10년간 달콤하게 꾸었던 꿈을 얼음처럼 차갑 깨워주었다. 딸은 이제 피아노를 그만두고 일반고에 진학하겠다고 했다.


 '더 노력하면 되지 않을까? 포기하니까 안 되는 거지.'

 이런 생각을 안 해본건 아니다. 세계 일류 피아니스트가 되지 못해도 소소하게 자신이 원하는 곡을 연주하는 연주자로 살아도 괜찮을 테니 말이다. 예술고에 떨어져도 일반고 가서 피아노를 해도 되고, 유학을 보내주면 음악을 계속할 수 있다.     

 

내가 부자였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 때문에 아이가 현실에 묶이는 것 같아 미안하다. 아이는 이제 피아노를 그만하고 싶다고 말했지만, 부모의 형편이 뻔히 보여서 더 욕심내지 않는 것도 있을것이다. 평범한 집에서 약간의 음악적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아이가 어디까지 얼마나 노력을 해야 연주인으로 밥 먹고 살아갈 수 있을까? 악기를 전공하고 우리나라에서 연주만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은 내가 알기로는 한 명도 없다. 클래식 연주회 표를 사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유학도 보내주고, 연주회도 열어주고... 너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아라고 말해 주고 싶지만, 밥벌이를 염두해야만 하는 부모의 형편이라 아이가 마음껏 날갯짓을 못 하는 것 같다.      

 

넘사벽의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 잠을 줄여가며 자신이 가진 모든 걸 쏟아부으면 임윤찬이나 조성진이 된다. 그들처럼 세계적 콩쿠르에서 우승해서 이름을 얻으면 공연은 매표 시작 몇 분 만에 매진된다. 예술에 순위를 매기고 거기서 우승한 사람만이 연주로 밥벌이를 할 수 있는 것이다. 딸에게 조금 더 뛰어난 재능이 있었으면 내 형편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었을지 모른다. 내가 좀 더 능력이 있었으면 딸의 재능 부족은 문제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경제적 능력이 부족했고, 딸에게는 재능이 부족했다.  

 

그래도 딸이 피아노 치는 게 좋았다. 예쁜 드레스를 입고 콩쿠르에 나가 연주를 하는 모습은 나에게 보석보다 더한 기쁨이었다. 공부할 때도 클래식을 언제나 틀어놓고, 마트에서 흘러나오는 클래식 음악에도 흥얼거리며 ‘너무 좋다’를 연발하던 딸이었는데, 이제 아이가 갈 길이 끊겨버린 것 같아 허전하다. 불합격 통지를 받은 아이는 생각보다 의연한데, 오히려 내가 수시로 눈물바람이다. 그동안 해 왔던 노력이 어땠는지 알기에 자꾸 미련스럽게 뒤를 돌아보게 된다.  

    

피아노를 치는 딸은, 손톱을 언제나 뭉툭하게 잘라야 했다. 손톱이 연주에 방해를 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단련된 손끝에 운동선수처럼 단단한 굳은살이 박혀 있었다. 듣기에는 아름답고 편안한 연주를 위해 연주자들이 얼마나 뼈를 깎는 노력을 하는지, 얼마나 하고 싶은 것들을 포기하고 음악 속에 갇혀 사는지, 그 가족들의 희생과 마음 졸임은 어떨지, 나도 딸이 피아노를 본격적으로 치기 전까지는 몰랐다. 딸 덕분에 나는 이제 연주자들이 뒤에서 하는 노력을 아는 사람이 되었다.     

  

딸아이, 피아노 선생님, 그리고 우리 부부 모두가 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했다. 다만 더 재능 있고 더 노력한 아이들이 많아서 우리 딸이 떨어졌을 뿐이다. 할 수 있는 만큼 후회 없이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억울함도 원망도 없다. 떨어지고 나서 함께 울어준 선생님들의 마음이 고맙다. 합격의 영광을 안은 무시무시한 아이들의 앞날도 응원하고 싶다. 딸과 나는 클래식 애호가로 남아 공연장을 부지런히 찾을 생각이다. 공연을 보며 연주자들에게 감탄하고, 박수를 보내고, 그리고 질투도 좀 할 것이다. 우리 모녀는 오래오래 다정하게 좋은 음악을 즐기며 행복하게 살겠다. 손톱을 붙인 딸이 웃어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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