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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로 Dec 26. 2022

'간단한' 돌잔치는 없다.

아기는 언제나 옳지만요


남편의 여동생, 그러니까 나의 시누이가 작년에 낳은 셋째 아이의 돌잔치를 알려왔다.

“직계 가족만 모여서 간단하게 하려구요.”

‘직계가족’, 맞다. 나는 시누이의 직계가족의 범주에 들어가는 사람으로 귀여운 조카의 돌잔치에 마땅히 참석해야 하는 위치에 있었다. 시누이는 ‘직계가족’과 ‘간단하게’를 강조하며 6개월 전에 호텔 뷔페식당을 예약했다. 워낙 인기 있는 곳이라 미리 예약하지 않으면 자리가 없을 거라며, 간단하게 할 거라 소규모 홀을 빌렸다며 간단하게 식사만 하자고 했다.

'간단하게', 첫째와 둘째 돌잔치를 일가친척과 친구들을 초대해 성대하게 치른 것에 비하면 셋째는 직계만 초대하니 간단한 것은 맞다. 시누이 기준에서는 말이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결코 간단한 돌잔치가 아닌 것이, 돌잔치 장소와 우리 집과의 거리는 차로 여섯 시간 반이 걸린다는 것이다. 그것도 차가 하나도 막히지 않을 경우에 그렇다. 명절 같은 경우에는 아홉 시간, 열 시간씩 걸리는 거리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직계가족인 나에게 편도 여섯 시간 반의 거리는 결코 간단하지 않은 거리다. 아이 둘을 포함한 네 식구가 모두 움직이는 것이 무리라고 판단한 나는 남편만 기차 타고 다녀오라고 했다. 나는 두 아이의 돌잔치를 그냥 집에서 내가 만든 음식으로 가까이 있는 가족과 했던 사람이라 이런 무리한 돌잔치에 동참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다. 아이의 돌은 온 세상이 축하해야 마땅하나 여섯 시간 반 거리에 사는 사람은 마음과 돌반지로만 축하해 줘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나, 내 생각은 시댁 식구들에게 통하지 않았다. 직계가족만 참석하는 모임이라 우리 네 식구가 모두 참석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시누이와 시모의 압력에 결국 나는 굴복하고 말았다. 나와 시댁 식구 사이에서  난처해진 남편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돌잔치 날 KTX를 타고 네 식구가 당일치기로 다녀오기로 결정을 내렸다. 기차를 타고 가는 시간 세 시간, 역까지 가는 시간과 약속 장소로 이동하는 시간까지 합하면 다섯 시간 정도가 걸렸다. 왕복 열 시간, 차비는 50만 원.


돌반지는 당연히 해 줘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차비가 너무 비쌌다. 그것도 하루 교통비로 50만 원이라니. 간단한 돌잔치에 어울리지 않는 거리와 교통비였다. 요즘 같은 시대에 이렇게 멀리서 돌잔치 가는 사람은 우리밖에 없을 거라며, 가는 내내 가족들에게 불편한 내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겨우 도착한 돌잔치 홀로 들어가니, 돌잔치의 주인공은 유모차에서 잠들어 있었다. 아침부터 너무 무리한 탓에 먹은 걸 한복에 다 토하고 울다 지쳐 잠들었노라고, 메이크업을 예쁘게 받은 시누이가 설명했다.

인사를 마친 나는 접시를 들고 간단한 돌잔치에 화려하게 펼쳐진 뷔페 상차림을 돌며 음식을 담았다. 음식 종류는 수십 가지가 넘었지만 촌스런 내 입맛은 초밥 몇 개와 고기 몇 점이었다. 한 접시 먹자 배가 불러 더 먹을 생각이 안 들었지만, 비싼 호텔 뷔페 음식값을 생각하니 더 먹어야 할 것 같아서 다시 일어섰다.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결국 쌀국수 한 그릇을 말아 와서 먹고는 배가 불러 더 이상을 먹지 못했다.


너무 간단하게 식사를 마쳐버린 허탈함을 커피로 달래고 있는 사이 돌잔치의 주인공은 잠에서 깨어났다. 컨디션을 회복한 주인공은 자신의 임무를 아는 듯, 여러 사람에게 안기며 방긋 웃어 주었다. 나도 아기에게 손을 내밀었더니 넙죽 나에게 안겨 주었다. 폭신한 아기의 품에 내가 안긴 것 같았다. 아기의 통실한 손을 잡았다. 아기의 손길이 부드러웠다. 축 늘어진 볼살을 잡아보았다. 몰랑한 살을 잡히고도 싱긋 웃는 너그러운 아기였다. 내 무릎에서 한참을 방실거리는 아기를 보며 힘들었던 여정을 잊으려는 찰나,

"15분 뒤에 정리하겠습니다."

간단한 돌잔치답게 돌잔치 시간도 짧았다. 아기와 잠깐의 교감을 마치고 집으로 가기 위해 일어섰다. 아기는 동그랗게 눈을 뜨며 갑자기 일어서는 나에게 어리둥절한 눈빛을 보냈다.

  "힘들게 와서 왜 벌써 가려고?" 하는 것 같았다.

아기의 순둥 한 눈빛에 웃음이 났다. 아무에게도 통하지 않았던 내 마음이 아기에게 닿은 것 같았다. 나를 완벽하게 위로하는 눈빛이었다.

 "생일 축하해. 다음에 또 보자." 아기에게 인사를 전하고 시누이에게 아기를 보내주었다.  다시 돌아갈 다섯 시간은 그렇게 힘들 것 같지 않았다. 간단한 돌잔치의 주인공이 내 마음을 알아주는 것 같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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