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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로 Dec 11. 2023

암진단을 받은 누군가를 위로해야 한다면

아이처럼 질문할 것


오랜만에 한가한 월요일이다. 2주 전까지만 해도 월요일은 가장 바쁜 날이었다. 1시 반부터 수업이 연달아 쭉 있어서 7시가 넘을 때까지 어떤 날은 내 집에서 화장실 갈 시간도 내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오전에는 수업 준비, 집안 정리, 학부모 상담이 이어졌다. 잠깐이라도 짬을 내서 산책이라도 다녀와야지 하는 생각도 잠시, 아이들이 오기 전 컵라면으로 대충 점심을 때우고 하루 종일 집 밖에는 나가지도 못하는 날이 많았다. 내가 하는 공부방 일은 아이들을 보면 기쁘고 재미난 일이 분명하지만, 그 외 많은 것은 힘든 일이다. 특히나 진상 학부모를 만나면 그동안 쌓아놓은 모든 마음이 꺾이는, 쓰나미 같은 후유증에 시달려야 한다. 그래도 아이들이 예뻐서 결혼 전부터 지금까지, 아이들과 만나는 일을 가늘게 이어올 수 있었다. 


암진단 2주 전, C의 엄마가 나한테 상당한 불만을 쏟아내며 모진 말을 퍼부었다. 내가 C만 쏙 빼고 발표를 시켰다며 아이가 집에서 울었다고 했다. 아이 자존감을 무너뜨리는 나 같은 사람에게 더 이상 C를 맡길 수 없다고 했다. 결과적으로 C를 쏙 빼고 다른 아이만 발표시킨 건 맞다. 앞 상황은 전달이 됐는지 안 됐는지 모르겠다. 나는 C에게  발표를 가장 먼저 시켰는데 아이가 먼저 하기 싫다고 했다. 늘 발표 순서 문제로 나와 실랑이를 벌이는 아이였다. 다른 아이 먼저 발표하고 마지막에 시키려고 했으나 그날은 시간이 부족했다. 시간이 부족한 이유도 C가 15분이나 지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결국은 시간 관계상 C만 발표에서 쏙 빠진 꼴이 되었다. 4학년 여자 아이인 C는 집에 가면서 새초롬한 표정으로 나와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그 상황에서 C에게 사탕이라도 하나 쥐어주며, 발표를 기분 좋게 시키고 마무리했어야 아이 자존감이 무너지지 않았을까. 


모든 아이는 예쁜 구석이 있다. 아무리 무시무시한 금쪽이라도, 아이는 아이이고 귀여운 구석 하나쯤은 모두 갖고 있다. C도 예쁜 아이였다. 감정 표현을 솔직하게 잘해서 좋았다. 간식과 선물을 주면 좋아서 날뛰었기 때문에 주는 맛이 있었다. 학교에서 기분 나쁜 일이 있으면 자기 입장에서 적절한 편집을 해 억울함을 이야기하는 것도 귀여웠다.


C는 그날의 서운한 감정을 엄마에게 울면서 쏟아냈다고 한다. C의 엄마는 화가 많이 났는지, 밤 10시가 넘어 전화가 왔다. 전후 사정과 나의 진심은 아무리 설명해도 C의 엄마에게 닿지 않았다. 아이 엄마는 20여분 간 수화기 너머로 흥분한 목소리로 고성을 내질렀다. 솔직히 그 정도로 막무가내로 화를 내는 엄마를 만난 건 처음이었다. 사교육은 마음에 안 들면 그만둘 수 있기 때문에 사교육 선생과 학부모가 고성을 주고받을 일은 없을 줄 알았다. 


C 엄마의 항의를 듣고 진심으로 일을 그만두고 싶었다. 99프로가 좋은 학부모이고, 100%가 예쁜 아이였지만, 단 1프로 때문에 나는 모든 의욕을 상실해 버렸다. 수업하고 있는 학부모 모두가 C 엄마처럼 철저하게 아이의 입장에서만 듣고 생각하고 분노해 나에게 항의할 것만 같은 불안감이 엄습했다. 학부모는 내가 집에서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을 정도로 일에 매달린다는 것을 알 리 없기 때문이다.


암진단을 받고 학부모들에게 암진단 사실을 알릴 때, 나는 일을 그만둘 수 있어서 설렜다. 암수술은 일을 그만하겠다고 말해도 되는 당당한 명분이다. 휴직하겠다는 말을 하는데, 암보다 적절한 이유가 있을까 싶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었다. 문자를 보냈을 때, 대부분 학부모는 놀랐고 걱정하고 응원해 주었다. 하지만, 언제나 일부 학부모가 문제다. 갑상선암은 간단한 수술이라, 곧 복귀해도 될 거라며 의사에 빙의해 훈수를 두었다. 암 수술을 받게 되었는데, 태연하게 '간단하다'라고 말하는 그들은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수술을 겪어 본 것인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참았다. 누군가를 위로한다는 것은 원래 어려운 것이니까. 


많은 것이 그렇지만, 위로도 아이들이 어른보다 한 수 위였다. 아이들의 위로는 힘이 됐다. 언제 다시 보게 되는지, 또 볼 수 있기나 한 건지, 언제 볼 수 있을지 묻고 또 물었다. 어설픈 지식으로 쉽게 판단하는 위로보다 궁금해서 못 견디겠다는 듯 끊임없이 질문했다.

'선생님, 많이 아파요?' , '목에 혹이 있어요?', '어떻게 수술해요?' '칼로 째요?' '윽, 아프겠다.'

질문하는 아이들은 자신들이 수술대위에 눕기라도 한 냥 한껏 인상을 쓰고 물었다. 


아이들은 질문 세례를 퍼붓고, 집에서 준비해 온 편지와 선물을 주고 갔다. 삐뚤 삐뚤한 글씨 사이로 번지는 진심 어린 걱정과 궁금함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아이들의 편지는 힘든 학부모 때문에 그만두고 싶었던 마음까지도 일으켜 세우는 힘이 있었다. 

'좋은 위로는 질문이구나.' 

누군가에게 위로해야 할 일이 있다면 아이처럼 깜짝 놀라며 질문해야지. 여기서 포인트는 '깜짝 놀라며'이다. 별거 아니란 듯 담담하게 말하는 게 더 좋은 위로일 줄 알았는데, 당해보니 그런 위로는 참 밥맛없는 위로다. 아이들에게 또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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