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그랬듯 팬데믹을 겪으면서 삶의 마지막이 어느 날 도적같이 찾아올 수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리고 나이 먹은 나에게 갑자기 큰 병이 찾아올 수 있다는 것도 더 이상 놀랄 일도 아니다.
수십 년을 붙어 다녔던 나의 베프는 이미 10년 전 먼 곳으로 떠났고, 작년에 갑작스러운 암으로 작별한 사람들이 있고, 나와 같은 아파트에 살던 칠십 중반의 언니도 아들 곁에서 마지막을 맞이해야 한다며 시애틀로 돌아갔다.
그래서 내 삶의 마지막 준비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내가 할 수 있는 내 삶의 마지막 법적 절차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우리 부부는 부동산, 사업체, 은퇴계좌, 주식, 생명보험, 기타 금융 투자 등 아무것도 없고 단지 은행계좌뿐이다. 우리 두 사람이 먼 곳으로 갔을 때 얼마의 돈이 은행 계좌에 남아 있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그 남은 돈을 자식에게 무사히 넘겨주려면 미국에서는 리빙트러스트 (Living Trust, 생전 신탁)를 해놓아야 한다.
리빙트러스트는 피상속인이 '살아있을 때' 자신이 사망한 후에 남은 자산을 지정된 수혜자가 신속히 상속받을 수 있도록 하는 사전조치다.
이런 리빙트러스트를 만들어 놓지 않고 사망하면 자식이 있어도 모든 재산은 법원으로 넘어가서 법원 검증 절차를 받은 후에 합당한 사람에게 전달된다. 이 과정을 '프로베잇 (Probate)'이라고 하는데, 이 절차를 밟게 되면 부모의 재산을 상속받기 위해 자녀는 평균 일 년 반 이상을 법원 문턱이 닳도록 왕래해야 하며 적지 않은 법원 수수료와 변호사 비용까지 부담해야 한다.
그래서 리빙트러스트를 작성했고, 이런 질문에 답해야 했다.
1. 혼수상태 시 본인 대신 의료 결정권을 행사할 사람 1, 2순위
2. 연명치료를 할 것인가?
3. 구체적인 장례절차 (장례식, 묘지, 화장, 화장한 유골 처리 방법, 수목정, 납골당 등)
4. 남은 재산은 누구에게 물려줄 것인지. 1, 2, 3 순위
5. 한 명인 자식이 급작스럽게 사망 시 재산 상속의 2,3 순위 (자식의 갑작스럼 사망이라는 말에는 숨이 찼다)
리빙 트러스트 절차를 끝내고 나는 마치 어둡고 큰 동굴로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는 내 모습이 보였다.
잠이 오지 않은 어느 날 새벽, 세상을 떠난 나의 베프에게 “겁이 많은 내가 그곳으로 갈 때 나를 따뜻하게 맞이해 줘”라고 혼잣말을 했다.
#사망 #생전 신탁 #리빙 트러스트 #재산 상속 #이번 생의 마지막 정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