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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희 May 10. 2023

속 터지는  운명 이야기

-위안받는다는 것과 위안을 준다는 것-

어떤 사람이 운명인지 아닌지 알아보는 눈이 있다면, 그건 좋은 일일까? 아닐까?

그럼 20년 살다가 헤어진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운명이었던 걸까? 아닌 걸까?


우리가 흔히 3개월 만난 사람을 운명이라고는 하지 않듯이.

운명이라면 그 기간이 있는 것일까?


사람들은 운명을 모르기 때문에 알고 싶어서, 신점을 치거나, 명리학으로 자신의 운명을 알아본다거나, 혹은 요즘 같으면 타로점을 치기도 한다. 과학적 접근이라고 하면 MBTI가 있긴 하겠다. 어떻게든 운명이 궁금하고 알고 싶으니까.


한때 tv 방송을 타서 유명한 점쟁이도 1년간 줄을 서야 하는 사람인데 최근 보니, 시들해졌다.

신점의 신빨이 떨어졌거나, 아니면 홍보가 덜 되었거나.


명리학도 한때 관심이 많아서 책을 사서 보기도 했고, 유튜브를 통해 여러 사람들의 설명을 듣기도 했다. 그런데 같은 사주라도 설명이 다 제 각각이다. 공통된 의견은 있으나 그것도 사람에 따라 다르다. 항상 그렇지만, 옥석을 가리기가 쉽지 않다.


명리학이 통계다 아니다, 하면서  경우의 수를 4 8 ~~   하면서 말씀하시는 분도 있다.  많은 경우의 수가 있을 것이다. 그래도 굉장히 유명한 몇몇 사람들은 왜 유명한지 알것 같다.


또한 타로점도 어찌 보면 심리상담 같은 거라, 좋게 이야기하고 긍정적인 사람들만 가끔씩 재미로 보고 있다.

그것으로 책을 쓴 사람도 본인의 운명이 그리 될 것이라고 생각은 못했을 것 같다. 나는 적어도 그리 보인다.


그리고 마지막 MBTI는 정말 한때 유행처럼 왔다가 요즘은 그 몇 가지의 경우의 수로는 맞지 않다는 둥.

말들이 참 많은데, 나 같은 경우는 확고하게 하나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조사기관의 질문지마다, 각각 다 다르게 나온다. 그것도 I였다가, E였다가, 큰 기준이 다르게 나온다. 이러다간 그 유형 16가지 모두가 나올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내 결론은 그 모두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는 이야기다.

운명을 어찌 알겠는가.


그런데 어떤 사람은 만나면서부터 운명인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게 모지? 하는.

분명 지나가는 사람은 맞는 것 같은데,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 이상한 감정. 그리고 운명일 것 같다는 생각.

그런데  감정도 따지고 보면, 끼워 맞추는  아닐까?

좋으니까, 심리적으로 운명의 틀에 맞추는 것이 아닐까 하는 합리적인 의심이 들기도 한다.


반면 별로인 사람은 결코 운명이라고 한 번도 생각을 안 한다. 그건 확고하다.


우리가 인간으로 태어날 확률은 3억 분의 1 일라고 한다. 로또 맞을 확률은 800만 분의 1이고, 벼락 맞을 확률은 600만 분의 1이고.

그런데 사람들 정말 많지 않나? 그 3억 분의 1이라는 확률이 80억 명이고, 로또는 일주일마다 몇 명씩 나오고, 물론 벼락도 맞아서 죽는 사람도 많다.


통계는 통계일 뿐 개인의 특수성에 맞지 않는다.

개인의 운명도 운명일 , 어디에 넣어도 맞지 않는다.

 사람들 개개인마다 다 사정이 다르기 때문이다.


신점을 보러 가도 과거는  맞추는지 몰라도 미래는 모르며, 사주를 보아도, 모든 운명은 정해진 것이 아니며, 자신의 노력에 따라서 미래가 달라진다. 타로점이라 하더라도,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 달라진다. 점치는 사람에 따라 다른.


누가 과연 내 운명을 알 것인가?

그건 상대도 모르고 아무도 모르는 신비한 것이다.

알고 싶지만 운명은 정말  터지는 이야기인 것이다.

결코  수가 없기 때문에.

하물며, 그 사람이 나의 운명이고 싶은데, 그것이 과연 쉬운 일이겠는가.

그러면서 다들  결혼들을 하고 이혼도 하고 재혼들을 한다. 여자 친구, 남자 친구가 되기도 하고,  헤어지기도 한다.


운명을 알 수는 없지만, 그런 운명의 이야기에 공통점은 희망과 위안을 준다는 건 알 수가 있다.

부정적 위안으로 크게 된 사람을 못 보았다. 사람에게 희망을 주고 위안을 주는 사람들이 그래도 잘 되더라.

점쟁이도 겁부터 주면서 굿판을 벌이는 사람보다는 심리적인 안정감을 주는 사람이 더 잘 되긴 하더라.

지금에야 정신과가 따로 있지만 예전 민간에서는 그런 것들이 있었겠는가?

일종의 힘든 사람 말을 들어주고, 위안을 주고 힘든 고비가 지나가면 새로운 희망이 온다고 다독여 주는 것이,

그런 운명에 대비하는 사람들의 태도 같다.


그래서인가?

나도 하루하루 똑같은 삶을 살면서, 긍정적이고 위안을 주는 사람의 말을 더 좋아한다.

뭐 어차피 내가 내일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삶인데 말이다. 기왕이면, 잘되고 희망적이고 긍정적인 말들을

들으면 좋은 거 아닌가?


그래서 맨날 꿈을 꾼다. 운명적인 사랑 같은 것을.

50대 중반이라고 사랑하지 말란 법 있나? 난 안 그렇던데. 여전히 철이 없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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