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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나는 대로 쓰는 하와이 여행기

1. BigIsland BookBuyers

by 밍님


글을 쓸 마음도 책을 읽을 생각도 나지 않았던 지난 12월. 예정된 가족여행 계획도 세우지 못한 채 2025년이 왔다.


80대 친정엄마, 중년의 세 자매와 나의 남편, 초등생 하나, 유치원생 하나. 노약자를 포함한 7명의 가족 여행.


유난히 독한 독감이 기승을 부렸던 시기라 여행 전부터 누구 하나 아픈 사람이 생길까 봐 걱정이 많았다. 모두 꼼꼼하게 계획하는 성격이 아니고 떠나기 전까지 각자 업무가 많았기에 집에 올 때까지 아픈 사람 없다면 이번 여행 성공이다!라는 마음으로 슬렁슬렁 떠났다.


결과적으로 11박 13일 긴 일정에 병원 갈 일 없었고 잠 못 이룰 정도로 아픈 사람도 없었으니 성공한 여행이었다. 준비 없이 갔던걸 생각하면 대성공이었지.


그날그날 컨디션 봐서 변경되기도 하고 잘 몰라서 동선이 꼬이기도 했지만 소박하게 꼭 해보고 싶었던 것 위주로 둘러보고 왔기에 후회는 없다. 꼼꼼하게 계획된 일정이 아니라 여행기도 생각나는 대로 남겨보려고 한다.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 준 하와이의 멋진 곳들을 제외하고 가장 기억에 남았던 장소!


빅 아일랜드 힐로의 중고서점 BigIsland BookBuyers

https://g.co/kgs/bP7Xv87



원래 이 날 우리는 힐로의 요제프 성당에 엄마를 내려주고 근처 힐로 공립도서관에 먼저 가려고 했었다. 도서관을 좋아하는 나와 첫째는 매우 기대했고 일요일이 아닌데 새로운 성당에서 미사를 참례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엄마도 설레었지만 정기 휴일이 아니었는데도 성당, 도서관 모두 문을 닫았다. 어쩔 수 없지... 여행지에서 마음대로 안 되는 일은 빨리 잊어야 한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검색해 둔 중고 서점을 갔던 것이다.


문을 열고 들어간 순간 작은 종소리가 들리고 아주 근사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알록달록 책이 가득한 풍경, 문을 열고 보이는 정면에는 하와이에 관한 책들이 모여있었다.


아! 너무 멋지다.

이 멋진 곳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영화 노팅힐에서 휴 그랜트가 운영하던 여행도서 전문 서점에 들어간 것 같기도 하고 나니아와 연결된 옷장문을 연 듯 안 쪽으로 더 안 쪽으로 들어가 푹 파묻히고 싶은 마음이었다.


원하는 책을 하나 골라보기로 했다.

해리포터 시리즈, 아주 재미있게 읽었던 책 여러 권을 들었다 놨다 했다.

첫 장에 누군가의 메모가 담겨있어서 살까 고민했던 책 역시 아주 재미있게 읽었던 책이다.
아이는 열심히 찾고 찾아 마음에 드는 책 두 권을 골랐다.

나는 타이핑하기 좋은 명언집 한 권을 골랐다.


서점 한쪽에는 DVD와 음반도 있었다.

한참 책을 고르는 중에 서점 내 영화 Love Letter의 OST 'A Winter Story'가 흘러서 너무 좋았다. 좋아하는 음악이기도 했지만 이 서점과 너무나 어울려서 더 좋았다.



나의 하와이 여행에는 항상 함께 하던 아름다운 짐 두 가지가 있었는데 장난감 타자기와 양장본 책 한 권이다.


타자기와 함께하는 여행을 꿈꿨지만 막상 짐 싸보니 타자기를 넣을 자리를 도저히 마련할 수가 없어서 포기하고 장난감 타자기라도 가지고 온 타자기 덕후인 나


몇 년 전 너무 재미있어서 언니들에게도 강력 추천 했던 이 책을 읽을 때는 내가 정말 포와에 오게 될 줄 몰랐었는데... 여행을 기념하며 다시 (다시 읽었어도 정말 재미있었다) 읽었다.


여행하는 중에도 가볍게 다니지 못하고 무겁게 이고 지고 다녔지만 이 두 가지 아름다운 짐들이 하와이를 더욱 깊이 있게 즐기게 해 주었기 때문에 서점에서도 인증사진을 찍어두었다.



20여 년 전 유럽에 자유배낭여행을 한 달간 간 적이 있었는데 답답하게도 여행책자에 나온 곳에 발자취 남기는 것이 중요한 것인 줄 알고 책에 있는 곳 찾아다니느라 급급하여 여유 있게 즐기지 못했다. 다음에 여행을 가게 된다면 여유를 가지고 기억에 남는 장소를 찾아 즐기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짧은 시간 머물렀던 BigIsland BookBuyers는 여행을 나답게 즐길 수 있게 해 준 행복했던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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