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5월의 어느 날
저녁을 먹던 중 아이가 갑자기 화장실로 뛰어간다. 잠시 후 '엄마 똥 다 쌌어!라는 외침이 들린다. 생리현상이니 이해해줘야 하는 건 알지만 식사 중에 자리 이동 없이 온전히 앉아 먹어 본 적이 없는 탓에 옅은 한숨이 절로 나온다.
큰 변기 가운데 쏙 빠질 듯 말 듯, 앙증맞게 흔들리는 두 다리가 바닥에 닿지 않아 위태로워 보이지만 아이가 나름 터득한 균형 감각을 믿어본다. 어찌나 여유로운지 내가 엉덩이 닦아주기 편하도록 한껏 몸을 구부리기까지 했다.
엉덩이를 닦아주는데 등에 엄지손톱만 한 붉은기가 보여 자세히 봤더니 얇게 까져있었다. "여기 아프지 않았어? 언제 다친 거지?" 물어보니 아이는 피부의 작은 변화를 인지하지 못했는지 다치지 않았고 아프지도 않다고 했다.
밴드를 붙이자마자 그제야 따가움을 느꼈는지 몸을 부르르 떨며 과장되게 아픈 표정을 짓는다. 그 정도로 아픈 상처가 아니었는데... 속으로 생각한 나는 살짝 웃으며 "아픈 상처는 아닌데" 중얼거렸다. "엄마가 아픈 게 아니고 내가 아프잖아. 내 느낌은 모르잖아!"라고 한다.
나는 재빨리 사과했다. "그러네. 니가 다쳤는데 엄마가 그건 안 아프다고 하는 건 말이 안 되지. 미안해. 아픈 걸 몰라줘서." 작은 상처라고 무시한 것도 모자라 아이의 아픔까지 내 맘대로 정의 내린 그 순간이 잠시 부끄러웠다.
욕조에 세워두고 샤워기로 온도를 맞춰본다. "손 씻자" 한 번 말하면 듣지 않는 건 예상했던 바이다. 어린아이들에게는 어른은 보이지 않는 작은 문이 귀에 숨겨져 있어서 정신 팔려있을 땐 닫아두나 보다. "손 씻자!" 세 번쯤은 말해야 작은 손을 맞대어 내민다. 저 작은 손바닥에 물이 얼마나 고일까? 작은 손에 모여진 물이 노력에 비해 하찮을 만큼 적은 양이라 더 사랑스럽다.
"얼른 비벼. 여기저기. 자! 거품!" 앙증맞은 손을 비비고 또 비비다가 왼손을 세워 오른손바닥에 비빈다. "그렇지! 손가락 끝은 그렇게 씻는 거 잘 기억하고 있었네." 칭찬 아닌 칭찬에 아이는 기분이 좋아져 얼른 손을 바꿔 열심히 문지르고 깨끗하게 헹궈낸다.
"이번에는 얼굴." 역시 한 번에 하지 않는다. 샤워기의 물줄기가 손바닥을 간지럽히는 기분을 놀이처럼 즐기느라 귓속의 작은 문을 또 닫아두었나 보다. 다시 한번 "얼굴 닦자. 이마 끝까지, 귀 뒤에도 꼼꼼하게, 목도 뒤까지 쭉쭉 손을 뻗어서 닦아야지. 옳지! 이제 몸 씻을게!"
"엄마! 나 등에 물이 들어가면 따가울 텐데?"
"엄마가 안 아프게 쏙쏙 잘 피해서 씻겨볼게. 그리고 방수밴드라 괜찮아."
내 손가락 길이보다 짧고 가는 쇄골, 손바닥을 크게 펼치면 다 만져질 것 같은 등짝... 그래도 팔, 다리가 많이 길어졌어. 정말 많이 컸다... 속으로 생각하며 엉덩이부터 발목까지 쭉쭉 만져준다. 초코송이에 초코를 빨아먹고 남은 과자처럼 작고 동글동글한 발가락들 사이로 구석구석 아이용 바디워시 거품을 문지른다.
이 작은 발가락이 금방 쑥쑥 자라겠지. 투명 모눈종이 같이 얇았던 손톱이 더는 부드럽게 느껴지지 않는 것처럼...
지나고 보면 잠시동안에도 아이들은 놀랄 만큼 자라는 것 같다. 모든 순간을 내 곁에서 함께 했던 아기였는데 날마다 조금씩 자라 어린이가 되었네. 매 시간마다 자라는 너를 너도, 나도 알아채지 못하며 사는데 변화된 모습을 문득 알게 되는 것이 성장인가 보다.
아주 상큼하고 단단한 과육의 맛있는 사과처럼 탱글탱글한 작은 엉덩이를 씻기며 나는 언젠가 이 순간을 너무나 그리워하게 될 것임을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