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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이앤선생님 Dec 21. 2023

외로운 아이로 자라게 하는 최악의 실수는?

저는 친구가 없어요.

  말라비틀어진 낙엽이 후드득 떨어지는 가을이었다. 하교 시간이 되었음을 알리는 종소리가 교실에 울리자 와글와글 했던 아이들은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텅 빈 교실엔 담임교사인 나와 호영이, 단 둘만 남았다.  

  "선생님, 저는 친구가 없어요."

  아이의 고백에 나는 신경을 곤두세우고 귀를 기울였다. 

  "친구가 없다고? 같이 노는 친구가 많았잖아."

  "걔네들은... 이제 더 이상 친구가 아니에요. 저를 이용하기만 해요."

  "그게 무슨 말이야? 혹시 너희들끼리 싸웠니?"

  "아니요..."

  "그럼 왜? 괜찮아. 선생님한테 솔직히 말해봐. 그래야 호영이를 도와줄 수 있어."

  손을 만지작 거리며 우물쭈물 대답하지 못하던 호영이는 

  "맛있는 걸 사주고, PC방 비용을 대 줄 때는 친한 척하더니 지금은 아는 척도 안 해요. 걔들은 나빴어요. 친구도 아니에요."

  나는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직감했다. 복잡하게 얽힌 실타래가 손에 쥐어졌다.  

  "음, 그런 일이 있었구나. 많이 속상했겠다."

  호영이는 아무렇지 않은 듯 고개를 돌려 창밖을 내다보며 말했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어차피 학교는 졸업장을 따려고 다니는 거니까요. 친구는 나중에 사귀어도 돼요."

  "응? 뭐라고? 그게 무슨 말이야?"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초등학교 6학년 밖에 안된 아이 입에서 어떻게 저런 말이 나오게 된 걸까. 극명한 위험 신호였다.

  "엄마도 어릴 때 친구는 필요 없다고 했어요. 어차피 나중엔 연락 안 하게 된대요."

  "하지만 호영이의 속마음은 친구들이랑 잘 지내고 싶은 거잖아. 선생님 말 맞지?"

  "아니요. 그런 애들이랑 친구 하느니 그냥 혼자가 될래요. 저 그럼 학원 가봐도 되나요? 갈 시간이 다 됐거든요."

  호영이는 대화를 이어나가는 게 힘들었던지 자리에서 일어나 책가방을 챙겼다. 나는 목구멍까지 차오른 말들을 꾹꾹 눌러 담으며 자리를 비켜주었다. 

  "그래, 내일 선생님이 다른 애들하고 얘기해 볼게."

  호영이가 떠나간 자리로 찬바람이 쌩하고 불었다.


  이튿날, 나는 몇 명을 복도로 불러내어 일대일 상담을 진행했다. 하지만 아이들의 주장은 제각각이었다.

  "먹을 걸 사주고 PC방 비용을 내준 건 맞아요. 하지만 저희는 돈을 내달라고 한 적이 없어요. 자기 스스로 낸다고 한 거예요."

  "돈을 안 대줘서 절교한 게 아니에요. 친구들한테 자꾸 욕하고 화내니까 그런 거예요." 

  누구의 말이 맞는 걸까. 머릿속이 복잡했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느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외로워하는 호영이를 돕는 것이 최종 목표였다. 나는 아이들을 화해시키기 위해 다시 호영이를 불러냈다. 

  "호영아, 선생님이 애들하고 얘기를 해봤는데 약간의 오해가 있었던 것 같아. 서로 사과하면 어떨까?"

  "제가 왜 사과해요? 사과받을 사람은 저예요."

  "하지만 호영이도 친구들에게 화를 냈던 건 사과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다시 친하게 지내지."

  "싫어요. 엄마가 친구가 아닌 애들이랑 놀지 말라고 했어요."

  얽힌 실타래는 좀처럼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호영이는 한치도 물러서지 않고 팽팽하게 대치했다. 아이들은 서로 화해하지 못한 채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 후 호영이의 표정은 나날이 어두워져 갔다.  

  "선생님, 저는 친구가 없어요......"

  호영이는 친구를 그리워했다. 그러는 동시에 다가오는 친구들을 밀어냈다. 

  "어차피 인생은 혼자래요. 아무와도 친해지고 싶지 않아요."

  나는 호영이를 돕기 위해 긴 상담을 이어나갔다. 학부모 상담도 잊지 않았다. 그 결과 호영이의 심리를 외롭고 불안정하게 만드는 원인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부모의 사소한 말실수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1. 어린 시절 친구 관계는 중요하지 않아!

  어른이 되면 친구 관계를 비롯한 모든 인간관계가 좁고 느슨해지기 마련이다. 학창 시절을 떠올려보면 초등학교 때 친구가 누구였는지, 우리 반에 누가 있었는지 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마저 베프라고 했던 친구들도 뿔뿔이 흩어져 연락조차 닿지 않는다. 

  한 살 한 살 나이를 더 먹어갈수록 인간관계에 대한 회의감은 깊어진다. 심지어 친구가 없는 게 편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궁지에 몰렸을 때 나를 지켜주는 건 친구가 아니라 커리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어른들의 인간관계는 이처럼 냉정하다.   

  이런 어른들의 시선에서 아이들의 친구 문제는 조금 답답하게 느껴진다. 몇 년만 지나면 끊길 인연에 메여 힘들어하는 건 현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보다도 더 중요한 건 공부를 더 잘해서 더 좋은 학교에 진학하고 더 좋은 직장에 들어가는 거라고 말해 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어린 시절 친구 관계는 중요하지 않아."

  "엄마 아빠도 친구가 없는데 잘 살잖아. 친구가 없어도 괜찮아."

  "친구 문제로 고민하지 마. 그 시간에 공부를 하면 더 큰 보상이 올 거야."

  모두 맞는 말이다. 그러나 한 가지 간과한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아이들이 어른만큼 성숙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어른들은 친구 관계에 초연해질 만큼 단단한 내면을 갖고 있다. 어쩌면 친구가 세상의 전부였던 어린 시절을 이미 지나쳐왔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친구가 하나도 없는 어른도 한 때는 친구가 공부만큼, 아니 공부보다 더 중요한 때가 있었다. 그러니까 부모는 친구 문제로 고민하는 자녀의 심리를 이해하고, 자녀가 어른으로 성장해 나가는 자연스러운 과정을 밟고 있음을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네가 많이 힘들겠구나."

  "너를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까?"

  별다른 개입없이 아이의 호소를 듣고 고개를 끄덕여주는 것만으로도 아이는 큰 위안을 얻는다. 그렇지 않고 '친구는 필요 없다'는 식의 말을 반복한다면 아이는 정서적 혼란을 겪게 된다. 친구를 그리워하면서도 친구를 밀어내는 이중적인 행동을 보이게 되는 것이다.  

 



2. 사과하지 마. 사과를 받아내야 해! 

  부모는 자녀가 무례하게 대하는 친구에게 똑똑하게 대처하는 사람으로 자라길 바란다. 논리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펴고, 불의에 참지 않았으면 한다. 교사인 나도 우리 아이들이 어디 가서 굴하지 않고 자신의 정당한 권익을 주장하는 인재가 되었으면 한다. 하지만 친구 관계에서 만큼은 먼저 손을 내미는 센스와 위트를 지녔으면 한다. 사람은 감정에 잘 휩쓸리기 때문에 잘못의 경중부터 따지다 보면 화해할 타이밍을 놓치고 감정의 골만 깊어지는 안타까운 상황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그때 내가 감정적으로 대해서 미안해. 나도 사과를 받고 다시 친하게 지내고 싶어."

  이 마법 같은 한마디는 거의 모든 친구 문제를 해결해 주는 열쇠가 된다.    


  설령 아이의 친구가 잘못을 저질렀어도 한 번쯤은 용서해 주길 바란다. 원래 어린이들은 어리숙하고 어리석지 않은가. 실수하면서 자라지 않는가. 친구로서 하면 안 될 몹쓸 짓을 저질렀다고 할지라도 서로 사과하고 뉘우친다면 언제고 둘도 없는 친구 사이가 될 수 있다. 진짜 친구와 가짜 친구를 나눠가며 친구들을 손절하기엔 너무 이른 시기이다.    





  호영이와의 긴긴 상담은 여러 날 이어졌다. 호영이는 '친구들과 다시 친해지고 싶다'는 말을 고백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호영이의 속마음을 전달했다. 홀로 얼마나 외로워했는지 얘기했다. 몇몇 아이들은 눈물을 훔쳤다. 

  호영이와 아이들은 서로 사과할 틈도 없이 같이 피구를 하러 운동장으로 나갔다. 가을의 낙엽이 아름답게 흩날렸다. 나는 턱을 괴고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아이들은 역시 아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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