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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이앤선생님 May 18. 2024

맵찔이 교사의 마라탕 도전기

"아니 이건 뭐지?"

급식에 나온 국을 보는 순간 머리 위에 수십 개의 물음표가 떠올랐다. 

"이게 바로 마라... 탕?"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이라고 손가락질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급식에서 마라탕을 처음 먹어봤다. 

"오호라! 이게 그 유명한 마라탕이군!"

한 숟가락 떠서 먹어보니 알싸한 맛이 그럭저럭 괜찮았다. 하지만 계속 먹다 보니 자꾸만 콧물이 나서 숟가락질을 멈춰야 했다.

"아, 이거 은근히 맵네. 애들은 괜찮나?"

아이들은 마라탕을 어찌나 좋아하던지 배식이 끝나고도 몇 번이나 더 퍼먹었다. 맵다고 불만을 토하는 아이는 한 명도 없는 것 같았다.

"휴, 나는 초등학생보다도 못한 맵찔인가 보네."

맵찔이로 살면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남들이 다 맛있다고 하는 신라면도 못 먹고, 짬뽕도 못 먹고, 떡볶이도 못 먹는다. 실비김치 같은 건 꿈도 못 꾼다. 하지만 자극적인 음식을 저절로 피하게 되니 남들보다 건강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스스로 위안하곤 한다. 

"에이, 매운 거 좀 못 먹으면 어때? 속 편한 게 최고야."

나는 아쉬움을 뒤로한 채 급식판을 정리하고 학년 연구실로 향했다. 


 

학년 연구실에 각 반 선생님들이 모였다. 몇 명은 양치를 하고, 몇 명은 달달한 커피를 마시며 아이들 때문에 부글거렸던 마음을 가라앉혔다. 

"아니, 글쎄. 애가 두 눈 똑바로 뜨고 '싫은 데요?'라고 하잖아요! 속이 뒤집히는 줄 알았어요, 정말."

3반 선생님이 열변을 토했다. 부장님이 한숨을 쉬며 나긋나긋하게 타일러주었다. 

"어휴, 선생님이 참아. 이제 곧 방학이야."

"그래요? 며칠 남았지?"

나는 날짜 계산기를 꺼내 디데이를 확인했다.

"72일 남았습니다~"

"어후, 머리야. 한참 남았잖아."

3반 선생님은 머리에 손을 짚었다. 부장님은 머쓱했던지 간식 상자를 꺼내 3반 선생님의 손에 쥐어주었다. 3반 선생님은 입에 과자를 넣으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퇴근해서 운동하면 뭐 해. 스트레스 풀려고 먹으니까 살이 빠지려야 빠질 수가 없어."

우리는 너무 공감이 가서 피식 웃었다. 스트레스 지수는 연구실에 쌓이는 과자 봉지 양과 비례하는 법이다. 

"맞아. 그래도 뭐 어쩌겠어. 이렇게라도 풀어야지."

부장님은 커피봉지를 흔들며 나에게 눈짓했다. 커피를 마실 거냐는 물음이었다. 

"아...... 저 커피 못 마셔요."

나는 맵찔이일 뿐만 아니라 커피도 못 마신다. 카페인에 예민한 탓이다. 부장님이 안타까운 표정을 짓자 나는 불룩 나온 배를 두드리며 웃어 보였다. 

"아까 점심 든든히 먹어서 괜찮아요. 그리고 저 오늘 마라탕 처음 먹어봤어요! 생각보다 먹을 만하더라고요. 마라탕이 원래 그런 맛이에요?"

선생님들은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 맛있는 걸 지금에서야 먹어보았느냐는 얼굴이었다. 

"글쎄, 급식에 나오는 마라탕은 백탕에 가까워. 밖에서 사 먹어보면 달라. 훨씬 매워."

"헉! 훨씬 맵다고요? 아.. 전 역시 시도해보지 않는 게 좋겠네요."

"그렇지, 선생님은 안 먹는 게 낫겠네."

나는 마라탕에 대한 궁금증을 완전히 접기로 마음 먹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 사이 어느새 예비종이 울렸고 우리는 교실로 헤어졌다.




"선생님, 안녕히 계세요. 친구들 안녕!"

어느새 수업을 마치고 아이들이 하교했다. 한 무리의 여학생들은 교실에 남아 재잘대는 참새처럼 놀 계획을 세웠다. 

"지우야, 선예야, 우리 주말에 만날래?"

"좋아! 뭐 할래?"

"세븐틴 오빠들 굿즈 사러 가자!"

"오오, 좋아! 점심엔 뭐 먹지?"

"마라탕이랑 탕후루 먹으러 가자!"

"오예, 완벽해!"

나는 아이들의 수다에 귀를 쫑긋 세웠다. 자고로 고학년 담임이라면 아이들이 좋아하는 관심 주제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평생 관심도 없던 폰게임도 몇 개 배웠고, 만화도 좀 읽었다. 아이돌에 관해서는 빠삭하게 정보를 수집하는 편이다. 그래야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대화하기 수월해지기 때문이다. 고학년 담임을 오래 맡다 보면 저절로 그렇게 된다. 

초등학교 선생님은 또래에 비해 신세대적 마인드를 갖게 된다고 하던데. 아마 이런 걸 보고 말하는 게 아닌가 싶다. 

"얘들아, 마라탕이랑 탕후루가 그렇게 맛있어?"

나는 호기심에 가득 찬 얼굴로 물었다. 아이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네. 엄청 맛있어요!"

"너무 맵고, 너무 달지 않아?"

"아니요! 맛있어요. 저희들 최애 메뉴예요!"

아이들은 군침을 흘리며 기뻐했다. 아이들이 이렇게 좋아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마라탕은 시도하지 않겠다고 다짐했건만 아이들이 좋아하는 걸 따라 해보고 싶었다. 그것이 바로 선생님의 마음이다. 

"그래? 그럼 선생님도 먹어봐야겠네!"

"꺅! 정말요? 엄청 좋아하게 되실 거예요!"



그 주 주말, 나는 남편을 데리고 마라탕집에 갔다. 남편은 김치찌개가 먹고 싶다고 했지만 내가 박박 우겨서 마라탕을 먹기로 했다.

"요즘 초등학생들이 엄청 좋아한대! 나도 먹어보고 싶어."

역시나 가게 손님 중 절반은 학생들이었다. 이토록 학생들이 좋아하는 이유가 뭔지 더 궁금해졌다.

"여기 주문이요!"

남편이 손을 들었다. 매장 직원은 스테인리스 그릇을 주며 먹고 싶은 토핑을 직접 담아와야 한다고 했다. 남편과 나는 멀뚱멀뚱 서서 그릇을 받아 들었다. 

"먹고 싶은 토핑만, 먹고 싶은 만큼 담는 거구나!"

"오, 좀 신선한 방법이네."

나는 토핑 진열대를 기웃기웃 거리며 재료를 하나씩 담았다. 재료가 많아서 뭐가 뭔지 헷갈렸다. 직원에게 그릇을 넘기니 매운맛 단계를 골라야 한단다. 

"어... 저는... 매운맛 1단계요!"

남편이 쯧쯧거리며 검지손가락을 흔들었다. 맵찔이 주제에 괜한 도전을 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나는 하는 수없이 남편의 의견에 따랐다. 

"끄응... 저 그냥 백탕으로 할게요."

남편은 매운맛 1단계, 나는 백탕을 주문했다. 각각 1만 원, 8천 원밖에 되지 않았다. 요즘 물가에 볼 수 없는 저렴한 가격이었다. 

자리에 앉고 보니 동전을 하나둘씩 세어가며 값을 지불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조금씩 모은 용돈을 꺼내는 모양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아하! 값이 저렴하고 먹고 싶은 걸 골라 먹을 수 있어서 애들한테 인기가 많은 거구나!'


주문한 마라탕은 몇 분이 채 되지 않아 뚝딱 나왔다. 백탕은 꽤 먹을 만했고 남편이 주문한 매운맛 1단계는 눈물이 줄줄 나올 만큼 매웠다. 백탕을 주문해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객기를 부렸다면 괜히 음식을 다 버릴 뻔했다. 

"후루르르릅 짭짭."

"어우 배불러!"

남편과 나는 배를 두드리며 식당을 나왔다. 남편은 나의 표정을 살피며 물었다. 

"먹어보니까 어때?"

"급식 마라탕이랑 좀 다르긴 하더라. 먹어봐서 좋았어! 나도 먹어봤다고 애들한테 자랑해야지!"

어떤 토핑을 좋아하는지 얘기하다 보면 아이들과 더 친해질 수 있을 것이다. 매운맛을 한숟갈 먹어본 경험도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애들하고 수다를 떨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좋았다. 

이 맛에 교사를 하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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