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법 노하우
몇 년 전에 돈을 주고 첨삭을 받아본 적이 있다. 신춘문예를 준비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는지 몰라서 무작정 첨삭을 맡겼었다. 가격은 대충 2~3만 원이었나?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가격 대비 만족했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 되돌아보면 대충 맞춤법 교정기만 돌려서 준 엉터리 첨삭이었던 게 분명하다.
나는 특이하게도 책을 출간하면서 문장 교정법을 익혔다. 어영부영 넘긴 원고를 편집자님께서 아름답게 다듬어주시는 걸 보며 문장 쓰는 법을 배웠다. 아니나 다를까 편집자님의 실력은 몇 만 원짜리 첨삭 서비스보다 백배 천배 훌륭했다.
처음 내 글을 교정해 준 출판사는 창비였다. 나는 그야말로 럭키비키 했다. 글은 잘 못 쓰는데 어쩌다 운이 좋아 좋은 출판사에 얻어걸렸다. 첫 출판사가 창비라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하나도 모르는 나를 위해 편집자님들은 하나부터 열까지 친절하게 다 가르쳐주셨다. 처음에는 모든 출판사가 다 그렇게 해주는 줄 알았는데 창비만 그랬던 거였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다 출간의 기회를 잡을 수는 없기 때문에 내가 배운 지식의 일부를 나눠주려고 한다.
아래 사항은 기본 중의 기본이니 반드시 기억해두길 바란다.
1. 긴 문장 쪼개기
원문: 햄도사가 이런 고미호의 모습을 본다면 화를 내겠지만, 머릿속엔 딱 한 가지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 수정문: 이런 고미호의 모습을 본다면 햄도사는 분명 화를 낼 것이다. 하지만 고미호의 머릿속엔 딱 한 가지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아무리 좋은 문장도 길이가 길면 가독성이 떨어진다. 한 문장이 두 줄 이상이라면 일단 쪼개봐야 한다.
문장을 쪼개고 자연스럽게 잇는 연습을 하자!
2. 불필요한 접속사 삭제
원문: 피가 차갑게 식고 근육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 순간 열차에서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 수정문: 피가 차갑게 식고 근육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그 순간 열차에서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그런데, 그리고, 그래서, 하지만'과 같은 접속사를 삭제하기만 해도 글이 더 빨리 읽힌다. 글에 쓰인 접속사를 모두 지우고 꼭 필요한 접속사만 살려두자!
3. 중복된 단어 삭제
원문: 마침 화장실이 텅 비어있어 고미호는 화장실로 뛰어 들어가 문을 잠갔다.
-> 수정문: 마침 텅 빈 화장실로 뛰어가 문을 잠갔다.
한 문장에 동일한 단어가 반복되면 문장이 쓸데없이 늘어지게 된다. 중복된 단어가 보이면 과감하게 삭제해 버리자!
4. 불필요한 주어 삭제
원문: 고미호는 햄도사 옆에 찰싹 붙어서 햄도사의 옷자락을 붙잡고 질질 따라다녔다. 햄도사가 간식을 먹을 때도, 낮잠을 잘 때도, 심지어 방귀를 뀔 때도 그랬다.
-> 수정문: 원문: 고미호는 햄도사 옆에 찰싹 붙어서 옷자락을 붙잡고 질질 따라다녔다. 간식을 먹을 때도, 낮잠을 잘 때도, 심지어 방귀를 뀔 때도 그랬다.
모든 문장에 주어를 쓰는 것! 처음 글을 쓰는 사람의 특징이다. 연결된 문장을 쓸 때 주어가 꼭 필요한지 살피고 그렇지 않다면 시원하게 지워 버리자!
5. 쉬운 말로 다듬기
원문: 고미호는 재빨리 외벽에 몸을 밀착시켰다.
-> 수정문: 고미호는 재빨리 열차 벽에 몸을 딱 붙였다.
어려운 말을 쉽게 풀어쓰는 능력은 너무너무 중요하다. 특히 대중을 위한 글이나 어린아이를 위한 글을 쓸 때는 정말 쉽게 써야 한다. 한자어나 전문 용어는 쉬운 우리말로 풀어쓰자!
6. 외래어 바꾸기
원문: 그러니까 타이밍만 잘 맞추면 우리 열차로 다시 돌아올 수 있지.
-> 수정문: 그러니까 정확한 때를 잘 맞추면 우리 열차로 다시 돌아올 수 있지.
출간을 노리고 있다면 모두가 다 아는 외래어도 우리말로 바꿔 써야 한다. 모든 출판사에서 기본으로 지키는 규칙이기 때문이다.
위 문장들은 내년에 출간될 [구슬 도사 고미호 2]에서 가져온 것이다.
원문은 내가 쓴 글이고, 수정문은 당연히 편집자님께서 고쳐주신 글이다. (부끄러워야 하는데 아주 당당하다 ㅋㅋ) 아주 기본적인 원칙이지만 수 권의 책을 낸 나도 계속 익혀야 할 사항들이다.
혹시 글을 써야 할 일이 있다면 위 여섯 가지 원칙부터 되돌아보자.
어디 가서 글 못 쓴다는 얘기는 듣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