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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서울현충원 충혼당 315호 안에 숨겨진 내 이야기

UN 참전 용사 분과 귀한 대화를 나누던 호텔리어 시절


대학을 졸업하기 전, 내가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했던 곳은 서울에 위치한 어느 특 1급 호텔이었다. 


그곳에서 난 UN 참전용사 분들을 실제로 뵙는 특별한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그 이유는 내가 소속해 있던 호텔이 국가보훈부 (올 6월 6일부로 '국가보훈처'에서 '국가보훈부'로 승격)가 주관하는 ‘UN 참전용사 재방한 초청사업’의 공식 호텔로 당시 선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호텔 내에서는 매일 다양한 행사가 열렸다. 


그중에서도 ‘UN 참전용사 재 방한 초청사업’은 굉장히 중요한 행사였다. 


그랬기에 모든 직원들은 UN 참전용사 분들을 환영한다는 메시지가 적힌 보라색 배지를 행사 내내 유니폼에 착용했다. 


따로 배지까지 만들어 주면서 착용하라고 했던 지시를 받았던 행사는 호텔에서 근무하던 기간을 통틀어 그것이 유일했다.


난 객실부 안의 G.R.O라는 직무를 맡았던 직원이었다. 


G.R.O란 Guest Relations Officer의 약자로, VIP 라운지, 컨시어지 데스크, 비즈니스 센터를 번갈아 가며 근무하는 포지션을 의미했다.


컨시어지 데스크에서 근무할 때는 1층 로비에서 있곤 했는데, 이때 휠체어를 타고 계시던 한 용사 분과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그분께서는 한국이 당신을 잊지 않고 다시 모신 일을 매우 기뻐하시는 눈치였다. 


그러한 의미 있는 자리에 함께할 수 있다는 건 호텔 직원을 넘어 대한민국 국민 중 한 명으로서 매우 영광스러운 일이었다. 

▲ 2022년 6월 부산 여행 중에 방문한 UN 기념 공원에서. (UN 기념 공원이 있는 국가는 전 세계에서 한국이 유일하다.)




"THIS MONUMENT IS 

TO THE AMERICAN MEN AND WOMAN 

WHO GAVE THEIR LIVES IN DEFENSE OF THE FREEDOM  

OF THE REPUBLIC OF KOREA"


(이 기념비는 

대한민국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 

미국 남성과 여성을 

기리기 위함이다.)


"선희는 커서 훌륭한 음악가가 되시오."


2022년 6월의 마지막 날이었다. 


국립서울현충원 충혼당에 할아버지를 뵈러 홀로 갔을 때였다. 


그날 저녁에 서초 교향악단과 함께 하는 '호국음악회'가 열렸다.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희생과 위훈을 기리는 뜻으로 말이다.


음악회를 관람하는데 눈물이 줄줄 흘렀다. 


연주 자체도 감동적이었지만, 피아노 학원 연주회 때 할아버지가 내게 써 주신 편지가 문득 떠올랐기 때문이다. 


할아버지가 주신 흰 편지 봉투 안에는 "선희는 커서 훌륭한 음악가가 되시오."라는 글이 담겨 있었다. 


천상 군인이셨던 할아버지의 정 자세만큼이나 곧았던 그 글씨체... 


할아버지의 편지글이 연주회를 관람할 때 계속 떠올라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나는 알지 못했다.


Por Una Cabeza가 그렇게나 슬픈 곡이었을 줄은...


https://www.youtube.com/watch?v=PZTQVBrBMWU


한국전쟁이 할아버지에게 남기고 간 흔적들


할아버지는 함경도 출신이었다. 


공산주의 사상에 반하여 부모님께 인사드리고 고향을 떠나 혈혈단신으로 내려오신 분이었다.


그랬기에 당신의 핏줄이었던 첫 손녀인 나에 대한 애정이 몹시 깊으셨다.


할아버지의 무릎 아래에는 깊게 푹 꺼진 자국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적군의 총알이 할아버지의 몸을 관통한 흔적이었다. 


그걸 봤던 시기는 내가 아주 어릴 때였다. 


그럼에도 그 다리는 지금까지도 내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할아버지는 사람들의 보편적인 걸음걸이와는 미세하게 다른 걸음으로 걸으시기도 했다.


오른손 검지에는 첫째 마디가 없었다. 


그러니까 할아버진 열 개가 아닌, 아홉 개의 손톱만을 갖고 계신 분이었다.


이마에도 총탄이 스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참전 동료분들과 함께 잠을 자고 있을 때, 잠시 일어나셨는데 그때 동료분들은 모두 사망하시고 이마에 총탄이 살짝 스치고 홀로 살아남으신 거였다.


그렇게 6.25 전쟁을 참전하시는 동안 할아버지는 큰 총상을 세 번 맞으시며 죽을 뻔한 고비를 여러 차례 넘겨오셨다고 한다. 



▲ 국립서울현충원 충혼당



 Freedom is Not Free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국립서울현충원으로 봄이면 벚꽃놀이를, 가을이면 단풍놀이를 많이 하러 가곤 한다.


분명 그곳은 아름다운 자연 풍경을 간직한 장소가 맞다.


그러나 단순히 돗자리 펴고 도시락 먹는 피크닉 장소로'만' 남지는 않기를...  


그저 '또 하나의 인생 샷'을 찍을 수 있는 장소로 인식되지는 않았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 내게는 있다.


국립 현충원. 정숙(Please Keep Silent)





'숨은 벚꽃 핫플'이라는 명칭답게, 국립서울현충원 안의 벚꽃은 물론 아름답다.


그러나 '영원히 피고 또 피어서 지지 않는 꽃'이라는 의미를 가진 이 무궁화 역시 꼭 기억해 주시기를...



인생 네 컷에 담길 가을 단풍 사진도 좋지만,


피를 흘리시다가 이제는 영원한 꽃이 되어 


우리를 보호해 주시는 호국영령들의 뜻 역시 마음에 깊게 새겨주시기를.


▲ 슬픈 마음을 나타내는 듯, 폭우가 쏟아지던 날에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연주회의 마지막 곡은 <Liber Tango>였다. 


스페인어로 '자유'를 뜻하는 'Libertad'와 'Tango'를 합친 제목이다.


'우리 국군과 UN 군 젊은이들이 함께 피를 흘리며 싸웠던 자유수호 전쟁'이라는 의미가 담긴 6.25 전과 어울리는 음악이었다.


작년에 받은 국가유공자의 집 명패에는 다음과 같은 메시지가 함께 있었다.



[ '국가를 위한 희생과 헌신' 잊지 않겠습니다. ]


오늘의 번영된 대한민국은 지난 세기 격동의 역사 속에서 수많은 고난과 시련에도 굴하지 않고 당당히 일어섰던 유공자 분들의 희생과 헌신 위에 서 있습니다.


세월은 모든 것을 망각한다지만, 나라를 지키고 바로 세운 빛나는 공헌과 어떠한 희생도 감수했던 살신성인(殺身成仁)의 정신만큼은 결코 잊히지 않고 기억되어야 합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그 희생과 헌신을 기억하고, 국민적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함으로써 국가유공자와 유가족분들의 자긍심이 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이 명패에 담아 드립니다.


(중략)



6.25전을 영어로 말할 때, 'Forgotten War'이라고 묘사하곤 한다.


세계에서 잊힌 전쟁이자, 역사라는 뜻이다.


심지어 우리 국민 중에서도 6.25가 언제, 왜 일어나는지 모르는 불감증에 빠져 있다고 하는 기사를 읽었다.


그러나 기억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자유는 거저 얻은 것이 결코 아니라는 사실을. 


라미현 사진작가는 이러한 메시지를 담아 '프로젝트 솔져 KWV(Korean War Veterans)'를 진행하고 있다.


바로, 2017년부터 6·25 한국전쟁에 참전한 전 세계(22개국) 참전용사를 사진으로 남기는 작업이다.


http://weekly.chosun.com/news/articleView.html?idxno=17246



Freedom is Not Free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할아버지께 마음을 담아 전하는 편지


나의 몸에도 할아버지의 기개와 불굴의 의지가 담긴 DNA에 어딘가에 자리 잡고 있지 않을까?


그러니 난 이 몸을 움직이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고 싶다.


할아버지의 내리사랑을 가득 받았으니, 할아버지가 지켜주신 세상에서 내가 가진 능력과 사명을 앞으로 아낌없이 나누고 싶다. 


할아버지로부터 받은 사랑을 가득 전하는 주체가 되고 싶다.


할아버지가 목숨을 걸고 지켜내신 땅에서 용감무쌍하게 나의 길을 펼쳐나가겠다.


더불어 지금 이 글을 읽어주시는 당신께서 우리 호국영령들이 이 땅에 선물해 주고 가신 '자유'를 마음껏 누리며 살아가시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 국립서울현충원 충혼당에 계신 우리 할아버지께... ]



할아버지, 하늘에서 잘 지내고 계시나요?


그곳에서도 여전히 할아버지는 양손에 호두 두 개를 쥐고 굴리고 지내시는지요?


오늘은 6.25 전쟁 73주년을 맞는 날입니다.


저는 태국 치앙마이에서 할아버지를 기억하며 잘 지내고 있습니다.


이전에 보통이면 자는 시간인 아침 7시에 공원으로 가서 햇빛과 바람, 그리고 물을 만나 정답게 인사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할아버지와 산책을 나온 작은 여자아이를 보고 전 눈물이 또 맺혔습니다. 


저는 어디서든 할아버지와 손잡고 걸어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볼 때면 할아버지가 제게 주신 사랑이 떠올라 눈물이 나곤 합니다.


저는 할아버지께서 지켜주신 우리 대한민국 땅에서 자유를 누리며 세계 구석구석을 여행했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으며 그들과 어울리고 마음을 나누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후회는 늘 뒤늦게 찾아옵니다. 



고등학생 시절에 대학 영어 특기자 전형 대비를 위해 강남의 한 어학원에서 모의 면접은 수도 없이 보았으면서 


할아버지의 이야기는 왜 한 번도 관심을 갖고 들으려고 하지 않았을까요?


호텔에서 근무할 때 고객분들의 체크인을 마친 뒤 객실 카드를 건네 드리던 제 손으로


할아버지의 손을 한 번이라도 더 꼭 어루만져드리면서 감사하다고 말씀을 왜 제대로 전해드리지 못했을까요?



국립서울현충원 충혼당에 할아버지를 뵈러 갔을 때 할아버지가 어떤 음식을, 또 어떤 색깔을 좋아하셨는지 문득 떠올려 보았는데... 


생각나는 게 없었습니다. 


할아버지의 취향을 잘 모르는 제가 많이 부끄럽고도 죄송스러웠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고 장영희 교수님은 하늘로 가신 아버지인 고 장왕록 박사님께 부치는 글, <20년 늦은 편지>에서 이렇게 적으셨습니다.


 "영국 작가 새뮤얼 버틀러는'잊히지 않은 자는 죽은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지요.


 떠난 사람의 믿음 속에서, 남은 사람의 기억 속에서 삶과 죽음은 영원히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라고요.


그러니 할아버지, 저는 슬퍼하지 않겠습니다.


할아버지의 믿음과 저의 기억 속에서 우리는 서로 영원히 연결되어 있으니 말입니다.


 

장영희 교수님은 글에서 또 이렇게 이야기하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곳의 삶을 마무리하고 떠날 때 


그들은 우리에게 믿음을 주는 것입니다.


자기들이 못다 한 사랑을 해주리라는 믿음, 


진실되고 용기 있는 삶을 살아주리라는 믿음, 


서로가 서로를 믿고 받아주리라는 믿음,


우리도 그들의 뒤를 따를 때까지 이곳에서의 귀중한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으리라는 믿음 - 


그리고 그 믿음에 걸맞게 살아가는 것은 


아직 이곳에 남아 있는 우리들의 몫입니다.'




를 믿어주시고 가셨기에 


저는 할아버지가 수호하신 대한민국과 


자유라는 고귀한 가치가 헛되지 않도록 행동하겠습니다. 


 


할아버지께서 제 영혼 깊숙하게 새겨주신 군인의 기개와 불굴의 의지를 가지고


는 세계라는 무대에서 비상하겠습니다.



제가 이 세상에서 자유를 만끽하며 탐험할 기회를 주셔서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할아버지가 제게 아낌없이 주신 사랑을 


가족과 주위 사람들, 그리고 나아가 세계 곳곳에 저는 다시 퍼뜨리겠습니다.


할아버지가 못 다하고 가신 사랑을 제가 이 세상과 더 진하게 나누고 가겠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대한민국 서울특별시의 섬, 여의도에서 태어나


할아버지와 한강을 즐겨 거닐던 작은 아이에서,


거대한 세계를 품은 시민(Citizen of the world)으로 자라나겠습니다.



고 박완서 작가님은 이렇게 이야기하셨지요.


'신이 나를 솎아낼 때까지는 이승에서는 사랑받고 싶고, 


필요한 사람이고 싶고, 좋은 글도 쓰고 싶으니 


계속해서 정신의 탄력만은 유지하고 싶다'라고요.



저 역시 신이 저를 솎아내기 전까지는


제가 그동안 쌓아왔고, 


앞으로도 채워갈 다채로운 경험을 글로 나누며 살아가겠습니다. 



부디 그런 저를 하늘에서도 어여쁘게 지켜봐 주시며


보호하고 지지해 주십시오...!!



ㅡ 할아버지가 주신 사랑을 제 생의 큰 축복으로 여기는 첫 손녀, 선희 드림




▼ 할아버지와 함께 매주 여의도 한강 유람선을 타던 5살 아이에서,


이제는 광활한 세계를 누비며 5살 아이들과 손 유희를 하는 나 (네팔, 창구 나라얀 마을. 2019년)


충성스럽고 의로운 영혼이 잠든 국립서울현충원 충혼당 315호. 그곳에서 이제 편히 영면하소서. 






여기는 민족의 얼이 서린 곳
조국과 함께 영원히 가는 이들
해와 달이 이 언덕을 보호하리라.



https://brunch.co.kr/@111193/195


https://brunch.co.kr/@111193/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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