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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뀨 Sep 16. 2024

유한한 인생에 무한한 경험을!

유부녀의 스타벅스 캐나다 워홀 [4]

[4]


식은땀이 났다.


 '왜 없지?

분명 지원을 했는데...

이 매장이 맞는데...'


지원 목록 페이지가

1, 2, 3, 4, 5로 넘어가도

지원서는 나오지 않았다.


몸이 덜덜 떨렸다.


 '이대로 숙소로 돌아가게 되는 건가?'


그때!


 "혹시 이건가요?"

이사벨이 한 지원서를 가리키며 물었다.


7번째 페이지에 가서야

어젯밤 제출했던 지원서가 나왔다.


 '와.. 뭐야..?

불과 몇 시간 전에 지원했는데

지원서가 이렇게 쌓였다고?

안 찾아왔다면 그냥 묻혔겠는데?'


그렇게 서럽게 울며

매장을 찾아가네 마네

망설였는데

찾아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방에만 있지 않길 잘했어!'



이력서를 찾은 이사벨은

내용보단 온라인으로 지원했단 사실이

더 중요했는지

이력서는 읽어보지도 않고 물었다.


 "그래서 꿈뀨!

본인 좀 소개해줄래요?"


대한민국 방식으로

나를 소개하자면


만 26세.

경기권 4년제 대학교 '칼'졸업.

상품기획자 경력 4년 차.

결혼했음.

애 없음.



열심히 살았다.


학교에서든 회사에서든

대인관계는 항상 좋았다.


또래보다 돈을 빨리 번 만큼

저축도 열심히 했다.


연애도 놓치지 않았다.

5년을 사귄 남자친구와는

부모님 도움 하나 없이

결혼식도 치렀다.


내 삶은

안정적이었다.


그래, 안정적이었다...


그게 문제였다.

안정적인 게.


회사에서 즐겁게 일하다 퇴근하고

안방 침대에서 남편이랑 수다 떨다가 잠들고

다시 아침에 일어나서 회사 가고...


주말엔

이게 행복이지 하며

남편 손 잡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가고...


이러고 애 생기면

애 낳고

사랑으로 키우고

오순도순 잘 살겠지 싶었다.


근데..

쓰읍... 이렇게..

흘러가는 대로 살다 끝인 건가?


사실 안정적인 삶은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었다.


초3 땐,

부모의 이혼으로

엄마와 여동생과 함께 살게 됐다.


중2 땐,

집이 급격하게 기울면서

반지하, 옥탑방을 전전하며 살게 됐다.


고2 땐,

기초생활수급자가 됐다.

학원 갈 돈이 없어,

수능 준비는 옥탑방 집에서 혼자 했다.


대학교 2학년 땐,

엄마가 세상을 떠났다.


중학교 1학년 철부지 동생과 나만 남았다.

집 안의 가장이 됐다.


만 20살 가장에게

여유란 것은 없었다.


빨리 돈 벌어

'평범한' 삶을 살고 싶었다.


대학교를 휴학 없이 칼졸업했다.

칼졸업자는

동기 50명 중 나 하나뿐이었다.


대학교 졸업식을 치루기도 전에

입사를 했다.


돈을 벌기 시작했다.

기초생활수급자를 벗어났다.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옥탑방 월세를 벗어났다.

주공아파트 전세로 옮겼다.


연봉이 올랐다.

돈을 더 모으기 시작했다.

결혼식을 치렀다.


남편과 살림을 합쳤다.

주공아파트 전세를 벗어났다.


10년의 노력 끝에

삶은 그제야

안정되기 시작했다.


 '이제야 평범하게 사는 것 같네!


근데... 이게... 다인가?

이렇게 살다 끝나는 건가?'


엄마를

어린 나이에 잃어보니

'죽음'은 그다지 먼 뜻이 아니었다.


삶은 반드시 끝이 있고,

그 끝은 예기치 못하게 일찍 다가올 수 있음을

직접 눈으로 보았다.


오직 한 번뿐인 삶.

조금 험난했던 삶.

그래서 더 와닿는 삶의 가치...



인생은 반드시 끝이 있기에..

한 번뿐인 시간들 속에서

많이 알고 깊이 들여다보며

온갖 경험을 해보고 싶었다.


유한한 인생에

무한한 경험을 선물해 주는 것.


그래서 살아가는 동안

내 가능성을

내가 알아보고

내가 최대한 펼칠 수 있게 도와주는 것.


그게 내가 원하는

삶의 방향이었다.


그래서

가장 젊을 때

워홀을 온 것이었다.


지금까지 꿋꿋하게 살아온 나라면

어디서든 잘 살 자신이 있었다.


자신 있긴 개뿔!!!

지나가는 개도

지금 긴장을 넘어

덜덜 떠는 걸 다 느낄 정도였다!!!!!


이사벨의 질문들은 어렵지 않았다.

모두 충분히 예상했던 것들이었다.


그러나

모든 문장을 영어로 말하는 건

여간 떨리는 게 아니었다.


 '와 씨!!!

이거 이거 영어 안된다고

떨어지겠는데?!!!’


버벅대는 건 당연하거니와

발음이 꼬여서

엉뚱한 단어로 설명할 때도 있었다.


 '와~ 방금 발음 제대로 샜네?

완전 다른 단어로 말한 것 같은데?!

환장하겄네!'


언어가 안되니

뭐라도 설명해 보겠다는 듯이

몸짓이 격해졌다.


이것은 영어인가..?

바디랭귀지인가..?

구분이 되지 않았다.


다행히도

이사벨의 인내심은 꽤나 좋았다.


버벅대고 이상하게 말해도

말 한 번 끊지 않고 잘 들어주었다.


참 좋은 사람이다 싶었다.



 "지금 받은 비자 퍼밋이 뭐예요?

Study permit 인가요?

Work permit 인가요?"

이사벨이 물었다.


 "Work permit이요"


이사벨이 다시 물었다.

 "그럼 퍼밋 기간이 어느 정도죠? 1년?"


 "네, 1년이에요."


 "그렇군요..."

이사벨이 노트북으로 시선을 옮겼다.

딱히 내 이력서를 읽는 것 같진 않았다.


약간의 침묵이 흘렀다.

이사벨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았다.


 '혹시 1년밖에 일 못한다는 게 

마음에 걸리는 건가?

내 영어가 손님들과 대화하기엔

부족하단 생각하는 걸까?'


마음이 조마조마 해졌다.

입이 말랐다.


눈앞에 라떼가 있었지만

마시다 사레들릴 것 같아

마시지 않았다.


침이라도 꿀꺽 삼켜보며

이사벨이 입을 떼길 기다렸다.


이사벨이 다시 고개를 들고

내 눈을 마주쳤다.


고개를 든 이사벨은.......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리곤 내게 오른손을 쓱 내밀며 말했다.


 "좋은 날, 좋은 날씨에 잘 찾아왔네요!

꿈뀨랑 같이 일한다면

저야 너무 좋을 것 같아요!!

우리 팀에 온 걸 환영해요!!"


???????

??예???!!!!!

이렇게 바로요???!!


진짜요???? 실환가요???!!


진짜요?라고 되물으면

왠지 가짜라고 할 것 같아

바로 덥쑥 땡큐를 연신 외쳐댔다.


 "땡큐!!!!!

땡큐 쏘 마치!!!!!!!"


긴장해서 차게 식은 내 손과

이사벨의 손이 만났다.


이사벨은 내 손을 꼬옥 잡아주며

온기를 나눠줬다.


 "꿈뀨! 이 짜식!! 운 좋은 줄 알아!"

훗 날 이사벨이 말해주었다.


 "우리 매장에 지원자가

숱하게 찾아왔지만

다 돌려보냈어!!


내가 그 자리에서 인터뷰 한 사람은

너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야!"


그리고 나는 씨익 웃으면서 말했다.

 "아~ 당근 알죠! 이사벨!

이사벨한테 얼마나 고마운지

말로 표현 못해요!"



두려움을 이겨내고

매장에 찾아간 용기는

워홀 1년 간,

수많은 기회들을 안겨주는 계기가 됐다.


이 계기로

'기회'라는 것은 용기 이후에 정의됨을 배웠다.


놓친 기회란 없다.

다만 용기 내지 않았을 뿐.


그렇게 난 일을 구했다.

캐나다 도착 44시간 만이었다.


TO BE CONTINUED


기회가 있을 때 마다이사벨에겐 고맙다고 항상 얘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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