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꿈뀨 Sep 23. 2024

저 사람이 내 트레이너..? 망했네..

유부녀의 스타벅스 캐나다 워홀 [5]

[5]


"꿈뀨! 어서 와!!

잘 지냈엉?"


스타벅스 출근 첫날

이사벨이 반갑게 맞이해 줬다.


 "잘 지냈어요!

아으 너무 떨리네요"


설렘 반.

떨림 반.


 "걱정하지 마!

누구에게나 처음은 떨리는 법이지!"

잔뜩 힘이 들어간 어깨를

이사벨이 토닥여줬다.



 "Hi! My Friend!"

누군가 등 뒤에서

반갑게 외쳤다.


190cm 가까이 되는 큰 키,

투명한 푸른 눈,

큰 입에서 피어오르는 환한 웃음,

금빛 도는 갈색 머리.

크리스였다.


크리스는

'부점장'이었는데

초면부터 'my friend'로 불러주며

친근하게 맞이해 줬다.


 "How are you? My friend!!"


그는 언제나

단순 인사에서 끝내지 않고

안부를 꼭 물어봐 주었다.


이게 바로

말로만 듣던

캐나다인의 정인가..


 "약간 긴장돼.."


 "하하하하하!!

걱정할 거 아무것도 없어!

다 잘 될 거야!!


오늘 첫 트레이닝이지?

트레이너가 잘 이끌어 줄 거야!


스타벅스에서만 무려 16년 일한

짬이 그득한 사람이라고!


우리 매장의 에이스라고 할까?

하하하하하하!"


크리스가

호탕하게 웃으며

긴장을 풀라 했지만


매장의 에이스가

트레이닝해준다는 사실은

더 긴장하게 만들었다.


 "트레이너 이미 출근했어.

안으로 들어가 봐"

크리스가 스태프 공간으로

고갯짓 하며 말했다.


긴장하는 마음을 붙들고

안으로 들어갔다.


의자에 앉아

여유롭게 음료를 마시고 있는

한 사람이 보였다.


 "안녕하세요..?"

인사를 건네자

트레이너가

뒤를 돌아봤다.


 '아... 당신은..'


내가 아는 얼굴이었다.


처음 이력서를 내러 갔을 때,

눈길조차 주지 않고

온라인으로 내라고

까칠하게 말하던 그 사람.


그 사람이

트레이너라는 걸 알고

탄식을 삼켰다.


 '저 까칠한 사람이

트레이닝해준다니..

순탄치는 않겠군…'


이런 나를

기억 못 하는지

그가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오!!! 꿈뀨!! MY FRIEND!!!"


My friend..

크리스도 그렇고

이 사람도 다 초면에

'내 친구'라고 부르네..?


까칠한 초면과 달리

따뜻한 인사에

속으로 물음표가 가득 떴다. 


 "반가워!! 난 찰리라고 해!"


밝게 인사를 건네는 찰리를 보며

의외로 괜찮은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피어올랐다.


스타벅스의 트레이닝은

빡.셌.다. 


트레이닝 시간은

꼴랑 40시간.


40시간 안에

스타벅스에서 하는 일들을

다 배우기에는 벅찼다.


어려운 것은 없었다.

그저 외울 게 너무 많았을 뿐..


재고는 어디에 있는지,

커피는 어떤 비율로 우려야 하는지,

푸드 종류는 뭐가 있는지,

유통기한은 얼마인지,

하다못해 청소법도 순서가 있어서

죄다 외워야 했다.


외울 게 너무 많아서

퇴근 후에도 하루에 몇 시간씩 앉아서

그날 배운 건 복습하고 반복했다.


연습장에

무언가 받아 적어가며 외운 건

수능 이후로 처음이었다.


대학교 때도 이렇게 열심히

복습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오전엔 뽀송하게 출근했다가

오후엔 초췌해져 퇴근했다.


 "어때 꿈뀨! 트레이닝 잘 돼가?"

크리스가 불쑥 나타나더니 말했다.


항상 느끼지만

크리스의 푸른 눈 속에 있는

까만 동공을 보고 있으면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든다.


 "아니...

외울 게 너무 많고 영어도 잘 못해서

손님이랑 대화를 잘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


 "하하하! 맞아! 외울 건 많긴 해!

영어는 왜 걱정하지는 모르겠네.

네가 하는 말 우리 모두가 알아들어.

소통에 있어서 전혀 문제가 안된다고!"

크리스가 따뜻하게 말해줬다.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빨리 적응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어..

적응하는 데 얼마나 걸릴까?"


 "보통 3개월 걸려! 하하하!"

환하게 웃는 크리스와 대비해

내 얼굴은 어두워졌다.


오 쉣...

그니까 이 짓을

최소 3개월을 해야

익숙해진다는 거지?


 "꿈뀨!

이제부터 포스기

어떻게 쓰는지 배울 거야!"


주문받는 방법을 배운 날은

얼굴이 하얗게 질릴 정도로 긴장됐다.


손님과 직접 대화하며 주문받는 건

여간 긴장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찰리는 열심히

포스기의 기능들을 설명하며

주문 넣는 법을 가르쳐 줬다.

 "이 버튼은 사이즈를 체크하는 버튼이고~

이쪽은 음료 메뉴인데~"


히익-

눈앞이 하얘졌다.

포스기에 찍혀있는 메뉴들은

족히 50개가 넘었다.


이 메뉴들을 다 외워야 한다니..


손님이 주문한 음료를

포스기에서 찾아 누르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걸릴 것 같았다.


한국에서도

식당, 카페 알바를 해본 적 없기에

포스기는 인생 처음 다뤄보는 건데

인생 첫 포스기가 영어라니..


울고 싶었다.


이런 내 맘을 아는지

찰리는 열심히 설명하기 바빴다.


 "자 그럼 총 7.44달러라고

포스기에 쓰여있지?

그럼 손님한테

현금이냐 카드냐고 물어봐!

현금일 경우엔

손님한테 7.45 달러라고 안내하고~"


응..??

잠깐만.. 7.44달러인데

왜 현금으론 7.45달러를 받는다는 거지?



 "잠.. 잠깐만..

손님한테 왜 1센트를 더 받아?"

열심히 설명하는 찰리를 멈추고 물었다.



 "왜냐면 캐나다 동전은 1센트짜리가 없어서

5센트 단위로 반올림해야 해!

근데 카드로 결제할 경우에는

1센트 단위까지 결제할 수 있어!"


...?

이 무슨 소리지?

머리가 복잡해졌다.


캐나다에서 1센트짜리 페니 동전을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그게 무슨 소리야.

현금으로 1센트짜리가 없는데

왜 1센트 단위가 아직 남아있는 거야..?"

멘붕이 된 채

찰리에게 다시 물었다.


 "2013년부터 정부가

1센트 동전을 발행 중지해서

현금으로는 더 이상 못 써!

지금은 이해 안 돼도 점차 이해될 거야!


 자!! 이제 실습이야!

지금부터 나랑 같이 직접 주문받아보자!!!!"


40시간의 트레이닝은

가르치는 입장에서도 빠듯했는지

찰리는 급하게 실습으로 돌입했다.



아니...

지금 1센트가 있는데 1센트가 없다는 것도

방금 알았는데

벌써 주문받아 본다고?!

진도가 빨라도 너무 빨랐다.


캐나다는 여유 있다고 들었는데

한국보다 더 급한 것 같다.



 "다음 분 주문 도와드릴게요! 안녕하세요!"

찰리가 줄 서있는 손님에게 힘차게 외쳤다.


"안돼!!!"

찰리의 팔을 다급히 붙잡으며 버럭 외쳤다


"돼!!!"

찰리도 버럭 외치며 내 손을 뿌리쳤다.


벙쪘다.


아.....

집 가고 싶다..


 "꿈뀨! 이리 와볼래?

우리 단골손님들 소개해 줄게!"


몰아치는 진도에

맥을 못 추고 있는 나에게

찰리가 손짓했다.


'단골손님들을 소개해 준다고?

원래 스타벅스 트레이닝에는

단골손님과 인사하는 시간도

포함되는 건가?'


어리둥절하며

찰리 옆으로 걸어갔다.


찰리가 한 중년 여성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헤더!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어요?"


헤더라는 중년 여성은

찰리가 다가가자 활짝 웃으며 말했다.

 "찰리!! 반갑네!!

나야 잘 지내지!!"


찰리가 웃으며

헤더에게 나를 가리켰다.

 "여기 저희 매장 신입 꿈뀨예요!

지금 저랑 같이 트레이닝 중이에요!

 꿈뀨! 여긴 헤더야.

우리 매장의 오랜 고객이셔"


헤더가 손을 뻗어 악수를 청했다.


헤더와 악수를 하며

짧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헤더.

꿈뀨라고 해요, 잘 부탁드려요."



 "꿈뀨! 반가워요!

찰리가 트레이너예요? 복 받았네~

찰리는 제가 제일 좋아하는 바리스타거든요"

헤더가 찰리를 바라보는 눈빛은 따뜻했다.


 "아유!! 헤더! 쑥스럽게.. 참~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똑같지 뭐!

바쁘게 일하다가

찰리 너 보러 커피 마시러 오지 뭐"


단골손님과 직원이 친구처럼 지내는 건

한국에서 전혀 보지 못한 광경이었기에

신기했다.


찰리는 헤더와

짧게 몇 마디 더 나누다

인사를 건네곤


다른 손님이 앉아 있는

테이블로 걸어갔다.


 "꿈뀨, 이쪽은 에릭이야!

우리 매장의 오랜 고객.

 매일 아침 커피 마시러 오셔.

에릭, 이번에 입사한 꿈뀨예요!"


에릭은 교사로 근무하다 은퇴한 지

얼마 안 됐다고 했다.


은발, 푸근한 두 눈 빛이

그가 참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말해줬다.


 "꿈뀨!! 반가워요!

우리 가족이 된 걸 환영해요!!"


 '우리 가족...'

직원들을 우리 가족이라고 칭하는

그의 환영 인사에서

그가 단순 손님임을 넘어

여기 있는 직원들을

소중히 대한다는 게 느껴졌다.


에릭에게 웃으며 인사를 건네곤,

에릭과 찰리가 얘기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처음 찰리를 봤을 땐

엄격하고 까칠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손님에게

밝게 인사하며

오늘 하루 어떤지 물어보는 찰리는

첫인상과 매우 달랐다.


 '처음엔 까칠해 보였는데

생각해 보면

점장 이름과 스케줄까지 알려준

츤데레였지.

 내가 잘못 생각했네..

찰리 저 사람...

세상 다정한 사람이네..'


삐뚤어진 내 눈은

찰리의 따뜻한 내면을

그제야 보기 시작했다.


 "찰리! 그거 알아?

처음에 네가 내 트레이너로 왔을 때

퍼킹 쉣 이라고 생각했어"


더운 어느 여름날,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땀을 식히며

옆에 앉아있는 찰리에게 말했다.


 "하하핳ㅋㅋㅋ 왜?"

욕부터 박고 들어간

내 거친 표현이 웃겼는지

찰리가 사람 좋게 웃으며 되물었다.


 "기억나?

 나 처음에 이력서 떨구려고

매장에 들어왔는데

네가 진짜 나 바라보지도 않고

온라인 온라인 한 거?

 그래서 내가 진짜 속으로

뭐야.. 저 인간.. 싶었거든?"

그때 당시 찰리의

새초롬한 표정을 따라 하며 말했다.


 "하하하하카카카하하하하

내가 그랬어?"

찰리가 크게 웃자

주변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우릴 다 쳐다보았다.


찰리의 웃음소리는

언제나 크고 경쾌해서

그가 웃으면

주변 시선이 항상 그로 향했다.


그런 찰리의 호탕한 웃음이

난 항상 좋았다.


 "어!!! 기억 안 나?!!

그때 내가 풀이 다 죽어서

매장 나가려던 순간

네가 점장 이름이랑 스케줄까지 알려준 거야"


 "아!! 기억날 것 같아!

그게 너였어?!!"

찰리가 전혀 예상 못 했다는 듯이

깜짝 놀랐다.


 "어!!!!!

그래서 내가 

아 뭐야 생각보다 착하네 했지ㅋㅋ"


 "하하하하하하ㅋㅋㅋ 왜 이래!!!

나 원래 착한 사람이야!!!!! 하하하"


 "아니 그땐 진짜

재수 없었다니까!!ㅋㅋㅋ

근데 그렇게 재수 없는 사람이

내 트레이너래!!"


 "하하하하하하캌카카카카캌"


 "너를 보는 내 심장이 

와씨..하고

쿵 떨어지더라고"


 "하하하하하ㅋㅋㅋ 아 배 아파"

본인의 첫인상을 열정적으로

말하는 내 모습이 웃겼는지

찰리는 배를 잡고 웃기만 했다.


 "근데 또 

트레이닝 첫날,

날 보고 아주아주 밝게 인사해 주는 거야.

 그래서 그때 생각했지,

아..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일지 모른다고.."


아메리카노 한 번 쪽 빨면서

그때 나를 반겨주던

찰리의 웃음을 회상했다.


 "하하핳하핰ㅋㅋ

그래서 어때? 나랑 일해보니까?"


 "어휴. 찰리 없으면

우리 매장 안 굴러가지ㅋㅋㅋㅋㅋ"

진심이었다.

찰리는 우리 매장에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였다.


 "하하하하하하하하 그치?"


 "뭘 그치야ㅋㅋㅋㅋ

좀 겸손하게 살 순 없는 거니..?"


 "사실인 걸 어떡해!! 하하하하하핳"

뿌듯하다는 듯이

크게 웃는 찰리를 보고

어이가 없어서

덩달아 웃음이 터져 나왔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찰리"

웃느라 가빠진 숨을 겨우 돌리며

찰리를 불렀다.


 "ㅋㅋㅋ 왴ㅋㅋㅋ"


 "고마워,

그때 이사벨 이름이랑 출근 시간 알려줘서."


 "나야말로 고마워,

그때 다시 매장에 찾아와 줘서."


고작 5일 만에

40시간의 트레이닝이 끝났다.


트레이닝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근무하는 첫날.


긴장되는 마음으로

앞치마를 둘렀다.


 '잘할 수 있다.

잘할 수 있어!

집 가서 매번 복습 열심히 했으니까!'

속으로 다짐을 여러 번 새겼다.


 "꿈뀨, 어서 와!

오늘 첫 근무지?

첫 포지션으로는

음료 만들면 돼."



예??

첫날부터

음료부터 만들라고요?

아직 레시피가 손에 익지도 않았다.


동공 지진이 났다..



TO BE CONTINUED


↑머리가 별로 좋지 않아서,  외워도 외워도 자꾸 잊어먹어 고생을 많이 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