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의 전원 풍경이 유독 아름다워 보이고 나무 사이사이로 내려오는 봄 햇살이 유난히 포근하고 따듯하게 느껴지는 것은 기분 탓일까? 더 이상 못생기고 꼴사나운 미운 오리 새끼가 아니라 그 자신이 백조라는 것을 알게 된 아기 오리는 하얀 솜사탕 같은 구름 위에 둥둥 떠다니는 기분이었다. 일주일 전 어린아이들이 자신을 향해 외쳤던 찬사의 목소리들이 지금까지도 귀속에서 맴돌았다.
“새로 온 백조가 제일 아름다워! 어쩜 저리 기운차고 사랑스러울까!”
“맞아! 내가 본 백조 중에 제일 젊고 아름다워!”
태어나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괴롭힘과 무시를 당하며 자라온 그에게 이러한 칭찬과 인정은 말로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달콤한 행복감을 맛보게 해 주었다.
“못생기고 혐오스러웠던 나에게 이렇게 말해주다니, 날아갈 것처럼 기분이 좋구나!”
그렇게 백조는 못생겼다고 학대받는 미운 오리 새끼의 삶이 아니라 관심과 사랑을 받는 ‘백조’가 되어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보냈다. 따사로운 봄 날씨보다 백조의 행복한 마음이 훨씬 더 따뜻한 나날들이었다.
#2. 금메달리스트를 만나다
백조가 행복감에 젖어 있는 동안 어느덧 여름철 다운 풍경들이 주변에 스며들었다. 연둣빛이었던 목초지는 초록빛으로 물들었고, 귀리 밭은 1년 전 미운 오리 새끼 시절에 보았던 푸른 물결을 다시 만들어 내고 있었다. 백조는 여느 때와 같이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호수 위에서 우아한 자태를 뽐내며 헤엄치고 있었다.
태양이 하늘을 아름답게 물들이고 있을 저녁 무렵, 저 멀리서 세 마리의 커다란 백조가 헤엄치는 것이 보였다. 그중 가운데 목에 금메달을 걸고 있는 마님 백조가 보였다. 태양빛으로 반짝거리는 금메달을 본 백조는 묘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승리와 영예를 상징하는 표식을 직접 본 것은 처음이었다.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바닥까지 풍덩 몸을 담갔다가 다시 떠올랐다. 몹시 흥분되었다.
그들은 백조에게 다가왔다. 눈앞에 마님 백조가 보였다. 백조는 머리를 숙여 경의를 표하는 인사를 했다.
“꽥!”
마님 백조가 놀라며 말했다.
“백조야 아직도 미운 오리 새끼 습관을 못 버린 거니? 꽥은 오리들이 하는 인사이단다. 우리 백조들은 꾸우구우! 라고 하는 거야. 따라 해 봐. 꾸우구우!”
백조는 마님 백조가 시키는 대로 했다.
“꾸우구우!”
#3. 동물원의 존재를 듣다
“그래 잘하는구나! 그나저나 내가 온 것은 신입인 너에게 전달사항이 있어서 왔단다. 그것은 너 스스로 선택할 일이기도 하지”
스스로 선택할 일이 무엇인지 궁금해진 백조는 귀를 쫑긋 세우고 집중했다.
“우리 백조는 철새이기 때문에 여름 가을이 지나 추운 겨울이 오기 전에 다른 지역으로 날아갔다가 봄이 되면 다시 날아오는 삶을 살아야 해. 이때 다양한 위험에 노출되기 때문에 살아남으려면 함께 뭉쳐야 하지. 그래서 미리 백조 공동체 속에 들어와서 규범과 규율을 배우고 동시에 생존을 위한 기술들을 익혀야 한단다.”
마님 백조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다만 원한다면 다른 삶을 선택할 수도 있어.”
열심히 듣고 있던 백조는 귀가 솔깃해져 되물었다.
“그게 뭔데요?”
그런 백조가 귀엽다는 듯 마님 백조는 웃으며 말했다.
“그것은 동물원에 입소하는 것이란다. 그곳은 겨울이 와도 다른 지역에 날아가지 않아도 되는 곳이야. 왜냐하면 적절한 온도를 맞추어 주는 첨단 시설과 공간이 있기 때문이지. 그리고 우리의 건강을 위해 전문 영양사가 직접 준비한 식단으로 하루 세 끼를 꼬박꼬박 챙겨 준단다. 정말 편안하고 위험이라고는 없는 안전한 곳이지. 동물원에 오는 관람객들에게 우리의 자태를 뽐내기만 하면 하루 일과가 끝나는 삶이라고 할 수 있어. 다만 언제든지 원하는 만큼 날아다닐 수 있는 자유는 포기해야 한단다.”
#4. 갈림길에 서있는 백조
백조가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음 그런데 저는 자유롭게 사는 지금이 너무 좋은데요? 그곳에 들어가려고 하는 백조가 있긴 있어요? 자유가 최고라고 생각하는데...”
마님 백조는 대답하였다.
“응, 있단다. 이유는 올림픽 때문이지.”
“올림픽이요?”
백조는 되물었다.
“그래, 올림픽은 최고의 동물을 가리는 대회야. 금 은 동메달을 선발하고, 그중 1등 만이 지금 내가 목에 걸고 있는 금메달을 받게 되지. 이 영예의 훈장은 인간과 동물 모두에게 인정받았다는 것을 상징해.”
그러면서 마님 백조는 자신도 금메달리스라는 것을 은연중에 자랑했다.
백조는 관심이 간다는 듯 질문을 하였다.
“그럼, 동물원에는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건가요?”
마님 백조는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말했다.
“물론 아니지, 자리가 한정되어 있어서 1년에 2마리만 들어갈 수 있단다. 매년 늦여름에 입소 선발대회가 있고, 기준에 합격한 백조가 입소 가능하단다.”
백조는 기준이 궁금하다는 눈빛으로 마님 백조를 쳐다보았다. 마님 백조는 말했다.
“기준이 궁금하지? 평가 기준은 세 가지 란다. 수영 몸매 인성 부문이지. 동물원은 많은 관람객을 모으고 대해야 하기 때문에 수영을 잘하고 우아한 자태를 가지고 있으며 훌륭한 인성을 가지고 있는 백조를 뽑고 있단다.” 백조는 연이어 물었다.
“그럼 언제 선발하는 거죠?”
마님 백조가 답했다.
“정확히 3개월 뒤에 선발대회가 열린 단다.”
마님 백조가 마지막으로 한 마디 하였다.
“이제 너 스스로 결정하렴. 철새의 삶을 살 것인지 아니면 동물원의 삶을 살 것인지 잘 생각해 보고 3일 뒤 일요일까지 답변을 주렴.”
백조는 고개를 숙여 인사하였다.
“꾸우구우!”
마님 백조가 가고 난 후 그의 머릿속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5. 고민 그리고 결심
‘아, 나는 지금처럼 자유로운 삶이 너무 좋단 말이지...’
이렇게 생각하다가도 한편으로는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관람객들에게 나의 우아한 자태를 마음껏 뽐낼 수 있다는 것도 좋은 것 같고, 무엇보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보고 싶기도 한단 말이지..’
백조는 3일 동안 잠도 못 자고 고민이 가득했다. 그리고 일요일 아침 마님 백조를 찾아가 질문하였다.
“마님 백조님, 제가 올림픽 금메달에 도전하면 성공할 수 있을까요?”
마님 백조가 답했다.
“그건 아무도 모른단다. 모든 일은 자기 하기 나름이지”
백조가 한 번 더 물었다.
“저처럼 미운 오리 출신이 과연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제까짓 게 감히 금메달이라니...”
고개를 푹 숙이고 자신 없어하는 신입 백조를 본 마님 백조는 혼내는 어조로 말했다.
“너는 왜 해보지도 않고 그런 말을 하니? 해보기나 했어!”
백조는 당황스러우면서도 자기도 모르게 말해버렸다.
“해볼게요..., 도전해보겠다고요. 금메달!”
#6. 새로운 시작
백조는 계획을 세우고 곧장 훈련에 들어갔다. 뜨거운 열의를 가지고 평일 주말 밤낮을 가리지 않고 혹독한 훈련을 하였다. 지나가던 오리들이 한 마디씩 하였다.
“저러다 쓰러지는 거 아니야? 너무 열심히 하는데?”
“동물원 입소에 도전한다던데 미운 오리 출신인데 되겠어?”
옆에 있는 칠면조도 거들었다.
“음 저러다 말겠지 뭐, 그래도 열심히 하는 모습이 보기 좋긴 하구먼”
백조는 너무나 집중한 나머지 주변의 이야기들이 들리지 않았다. 끊임없는 수영 훈련으로 눈이 충혈되고 코피가 났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1개월 2개월이 지나고 3개월이 되는 순간까지 멈추지 않고 달렸다. 그리고 결국, 보란 듯이 해내고야 말았다.
“합격을 축하하네!”
동물원 합격 소식을 들은 마님 백조가 가장 먼저 달려와서 축하해 주었다.
“자네가 2등으로 합격했다고 들었어, 그동안 고생 많았어. 내 옆에 함께 온 검은 머리 백조가 자네 동기라네. 1등으로 합격한 친구야 인사하려무나”
백조는 낯을 가리는 듯 조심스럽게 인사했다.
“안녕, 만나서 반가워..”
검은 머리 백조는 환하게 웃으며 백조에게 인사했다.
“네가 소문으로 들었던 미운 오리 출신 백조구나. 반가워!”
#7. 점점 커져가는 갈망
동물원 입소식이 시작되었다. 이번에 새롭게 선발된 백조, 두루미, 황새, 펠리컨, 기러기가 모였다. 원장님의 환영 인사가 시작됐다.
“여러분은 까다롭기로 소문난 심사 조건을 합격한 물새들입니다. 아무나 들어올 수 없는 곳에 합격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모쪼록 앞으로 잘 부탁드리고 우리 동물원은 여러분 모두를 위한 복지를 실천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원장님은 환영 인사를 끝내는 듯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아 참, 중요한 공지사항을 빼먹었군요. 그건 바로 우리 동물원에서 가장 중요한 행사인 올림픽입니다. 동물원에 소속된 동물에게만 지원 자격이 주어집니다. 1년에 1번 개최가 되고 이번 올림픽은 6개월 뒤에 열릴 예정입니다. 종목은 수영 몸매 부문 두 개 부문입니다.”
두루미가 물었다.
“금메달을 따면 어떤 혜택이 있는 걸까요?”
원장님이 답변하였다.
“좋은 질문입니다. 세 가지 혜택이 있습니다. 첫째 죽을 때까지 먹이 걱정할 필요 없는 평생 식사권! 둘째 명문가 출신의 애인 또는 배우자를 찾아주는 커플 매칭 서비스! 셋째는 메달리스트만 이용 가능한 호텔 회원권입니다. 영예의 훈장인 금메달도 함께 수여합니다. 금메달은 관람객들에게 더 큰 관심과 사랑을 받도록 하게 합니다.”
듣고 있던 펠리컨도 질문하였다.
“그럼 은메달 동메달은 혜택이 없는 걸까요?”
원장님은 미소 지으며 답하였다.
“당연히 있죠. 은메달은 평생 식사권, 동메달에게는 호텔 회원권의 혜택이 있습니다.”
원장님의 안내가 끝나자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다들 금메달을 따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그리고 백조에게도 마음의 목소리가 들렸다.
‘금메달 받고 싶다’, ‘아, 금메달 따고 싶다’
#8. 히스토리와 히스테리
훈련장 열기가 뜨거웠다. 다양한 동물들이 금메달을 따기 위해 맹훈련 중이었다. 백조도 질 수 없기에 식사 시간 잠자는 시간 빼고 모든 시간을 훈련에 쏟아부었다. 다른 새들이 훈련을 마치고 모두 잠들었을 때에도 백조는 늦게까지 남아 훈련에 집중하였다. 하루 일주일 한 달이 흘러도 백조는 지칠 줄 몰랐다. 백조의 눈에는 순수한 열정이 빛나고 있었다.
이런 백조의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는 선배 백조가 있었다. 그는 백조보다 6년 빨리 입소한 백조이다. 그 역시 누구보다 뜨겁고 순수한 열정이 있었던 시절이 있었기에 백조를 보면서 자신의 과거 모습을 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순간 그의 눈빛이 매섭게 변하더니 백조에게 다가가 갑자기 따귀를 때렸다.
“찰싹!”
맞는 순간 눈앞에 번쩍하고 별이 보였다.
“너 미운 오리 새끼 출신이라는 얘기 들었다. 정신 차리라고 따끔하게 충고하는 거야. 사실 나도 너처럼 미운 오리 새끼 출신이야. 네가 겪은 괴롭힘과 조롱을 모두 받았었지. 그리고 금메달에 도전했었어. 그런데 여기 동물원은 우리가 자란 환경과 달라. 태어날 때부터 스페인이나 체코처럼 명문가 출신 동물들이 넘쳐나는 곳이야. 대대손손 금메달이 넘쳐 나고 모두 조기교육을 받은 새들이라서 네가 감히 이길 수 없는 새들이야. 그러니까 조용히 있는 게 좋을 거야.”
어안이 벙벙한 백조는 돼 물었다.
“그게.. 무... 슨 말씀이신가요?”
선배 백조가 말을 이었다.
“멍청아 말귀를 못 알아들어? 네 분수에 넘치게 도전하지 말라는 얘기야. 넌 그런 능력이 없고, 금메달을 딸 수 없다고! 내가 이렇게까지 말해줘야겠어? 답답하기는..”
선배 백조는 휙 뒤돌아서더니 멀리 가버렸다. 나중에서야 백조는 알게 되었다. 백조의 따귀를 때린 선배 백조는 올림픽에 계속 도전했지만 6년째 메달을 따지 못하였고 그로 인해 정신적으로 괴로워서 심한 히스테리가 있었다는 것을.
출신이 같은 후배 백조가 열심히 훈련하는 모습에 선배 백조가 동질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금메달을 따지 못한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져서 순간 심기가 불편했을 수 있었다는 것을.
#9. 타인의 소리를 허락하다
‘그래, 선배 백조 말이 맞아. 내 주제에 무슨 금메달이야. 이렇게 동물원에 입소한 것만으로도 과분한 거지 안 그래?’
백조는 미운 오리 새끼 시절 무시당하고 학대받았던 순간을 떠올렸다.
‘난 더 이상 누군가에게 무시당하고 학대받고 싶지 않아. 괜히 올림픽 도전했다가 메달을 못 따면? 그러면 또 무시당하고 학대받을 거야. 틀림없어.’
이렇게 생각해도 왠지 가슴이 답답하고 스스로 어깨가 처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꼭 올림픽에 도전해야 돼? 굳이 힘들게 올림픽에 도전하지 않아도 동물원에서 때가 되면 먹이 주지, 때가 되면 재워 주지, 고민하지 않아도 겨울엔 따뜻하게 여름엔 시원하게 해 주는데 내가 노력할 필요가 뭐 있어? 관람객들만 적당히 만족시켜 주면 되는 거잖아.’
이 정도 생각을 하고 나니 마음이 좀 편안해졌다.
‘맞아, 고생을 사서 할 필요가 뭐 있어? 메달을 딴다는 보장도 없는데 노력하는 건 바보나 하는 짓이야. 현실 감각을 갖는 게 중요한 거야. 사실 난 못생긴 미운 오리 출신이라 한계가 있는 건 사실 이잖아.’
생각이 어느 정도 정리된 오리는 편안한 생활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마음이 굳혀졌다.
‘그래 난 금메달 따위는 안 받아도 상관없어. 그래도 주변 눈치 보이는 건 불편하니까 적당히 도전하는 척! 만 해야지’
백조는 내면의 자신과의 대화를 마무리하였다. 이때부터 금메달을 향한 노력이 줄어들고 5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올림픽은 개최가 되었고 금메달의 주인공이 결정되었다. 그리고 영광스러운 시상식이 열렸다.
#10. 올해의 금메달리스트
대형 강당이 북적북적하였다. 모두들 기대 반 설렘 반의 마음을 가진 채 시상식 장소에 참여하였다. 백조 옆에 앉은 황새가 한 마디 하였다.
“올해는 누가 금메달을 수상할까?
백조가 대답했다.
“글쎄, 내가 보기에는 두루미 선배가 받지 않을까 싶어. 밤낮으로 쉬지 않고 노력하는 모습을 여러 번 봤거든.”
황새가 입술을 씰룩거리더니 답했다.
“내 눈에 올해는 왠지 펠리컨 선배가 메달을 딸 것 같아. 작년에 아쉽게 메달을 놓쳤기 때문에 올해에 도전 의지가 대단했었어”
이때 원장님이 마이크를 잡았다.
“아아, 이제 정숙해 주세요. 5분 뒤에 시상식을 시작하겠습니다.”
수군수군하던 소리가 잠잠해졌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오늘은 특별한 날입니다. 오랜 시간 땀과 눈물을 흘리며 노력한 결과가 발표되는 날이죠. 과연 누가 금메달을 받을지 궁금하시죠? 음....”
뜸을 들이는 원장님의 시상 발표에 모두들 가슴을 졸이고 있었다.
“자, 물새 부분 은메달 동메달 수상자를 먼저 발표하겠습니다. 은메달 두루미, 동메달 펠리컨입니다. 축하드립니다!”
모두 축하의 박수를 쳐주었다.
“자 이제 금메달 수상자를 발표하겠습니다!”
모두 숨을 죽였다.
“올해는 동물원 최초로 신입 물새 중에서 금메달이 나왔습니다. 바로 신입인 검은 머리 백조입니다! 축하드립니다!”
모두가 신입 물새 중에 금메달이 나와 놀랍다는 표정과 함께 축하와 박수를 보내주었다.
“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검은 머리 백조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온몸으로 감사를 표현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백조도 박수를 쳐주었다.
‘진심으로 축하를 해줘야 하는데,, 내 마음이 왜 이렇게 이상하지..’
어느 순간 백조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자신이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조차 모르는 채.
#11. 펠리컨이 전하는 진심
밤새 잠을 설친 백조는 다음날 아침 눈을 뜬 후에도 생각이 많았다.
‘아 금메달을 기대한 것도 아니고 노력한 것도 아닌데 왜 기분이 안 좋은 걸까? 기대를 안 했는데 말이지...’
이렇게 생각하며 백조는 스스로에게 계속 질문하였다.
‘아니면 내가 기대를 했던 걸까? 기분이 안 좋은 건 맞아. 도대체 왜 그런 거지?’
혼자 끙끙대며 힘들어하고 있는 백조 옆을 지나던 펠리컨 선배가 물었다.
“신입 백조야, 지금 속상하구나?”
백조가 대답했다.
“속상하다뇨? 아니에요. 저는 금메달을 기대한 것도 아니고 노력도 하지 않았어요.”
펠리컨은 눈썹을 위로 올린 채 잠시 침묵하더니 말을 이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속상하지..”
“......”
백조가 말을 잇지 못하였다.
“나도 그랬었어. 왜 기분이 안 좋고 속이 상한지 잘 생각해 보니 무언가 도전해서 성취하고 인정과 칭찬을 받고 싶은 욕구가 내 마음속 깊이 있었더라고. 그게 충족이 되지 않은 거지. 노력은 하지 않았지만 막상 같이 입소한 동기인 검은 머리 백조가 바로 옆에서 메달을 받으니까 밀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인정받지 못했다는 느낌이 들어서 축하보다는 배가 아팠을 거야.”
펠리컨의 말을 들으며 마음을 들키기라도 한 것처럼 백조의 얼굴이 화끈거렸다. 펠리컨이 말을 이어갔다.
“신입 백조야. 내가 경험해보니까 남하고 나를 비교하면 할수록 고통스럽더라고. 그러니 나를 괴롭히는 생각들은 그만하고 나를 지키고 책임질 수 있는 생각들을 하면 도움이 될 거야. 과거에 얽매여서 좋을게 뭐가 있겠니? 그리고 남들이 나에게 뭐라고 하던 그것이 무엇이든 허락하지 않으면 그만이야. 무슨 뜻인지 알겠니? 어쨌든 힘내 백조야. 내년에 다시 도전하면 되잖아!”
백조는 뜻은 정확히 모르겠지만 선배 펠리컨 말이 진심이라는 것은 느낄 수 있었다.
#12. 금메달리스트의 뒷모습
‘나를 지킬 수 있는 생각? 남의 말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그게 무슨 뜻일까...’
한 달이 넘게 고민하고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아 백조는 괴로워하고 있었다. 이때 저 멀리서 검은 머리 백조가 다가왔다.
“동기야 시간 괜찮으면 같이 수영 좀 할까?”
백조는 흔쾌히 대답했다.
“그럼 좋지, 저쪽으로 가서 할까?”
둘은 함께 수영하며 오후 시간을 보냈다. 검은 머리 백조가 물었다.
“너는 행복하니?”
백조가 대답했다.
“행복...? 갑자기 왜 그런 걸 묻고 그래?”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모르는 백조는 대답을 회피하고 질문으로 답했다. 검은 머리 백조가 말을 이었다.
“사실 나 요즘 너무 우울하거든. 오직 금메달만 바라보고 금메달만 생각하고 미친 듯이 달려왔는데 막상 금메달을 따고 나니까 너무 허무한 기분이 들어. 이게 내가 진짜 원했던 건가? 하는 생각도 들고..”
“.....”
백조는 말없이 듣고 있었다.
“사실은 말이야. 우리 할아버지가 금메달리스트였거든. 그래서 우리 아버지도 금메달을 따려고 갖은 노력을 하시는 걸 어렸을 때부터 보았어. 그런데 내가 어릴 때 아버지와 산책을 하다가 아버지가 사냥꾼의 총에 맞아 돌아가셨어.. 그리고 돌아가시는 순간에 나에게 어머니를 잘 부탁하고 대신해서 금메달을 꼭 따라는 유언을 남기셨거든..”
백조는 놀란 표정으로 검은 머리 백조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저런.., 그런 사연이 있었구나..”
검은 머리 백조는 계속 자신의 이야기를 하였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도 괴로워하시다가 암에 걸리셨고,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난다며 내가 금메달에 도전하는 것을 매우 싫어하셨지. 그런데 아버지 유언을 차마 떨쳐 버릴 수 없어서 어머니 몰래 눈치 보면서 평생 밤샘 운동을 해왔었지..”
백조는 벌어진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이렇게 아프고 슬픈 사연이 있는지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다. 사실 검은 머리 백조는 원래 뛰어나고 쉽게 금메달을 땄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이런, 내가 너에게 푸념을 하고 말았네 친구야. 오늘 내가 한 말은 잊어줘. 그냥 금메달을 따긴 땄는데 뭔가 갈 길을 잃은 것 같고 우울한 기분이 들어서 나도 모르게 얘기했나 봐.”
그러고 검은 머리 백조는 즐거웠다며 돌아갔다. 백조의 눈에는 검은 머리 백조의 뒷모습이 왠지 슬퍼 보였다.
#13. 스스로 돕는 자 : 깨달음
동물원 입소 동기인 검은 머리 백조와 대화를 하고 난 후 백조는 생각의 폭이 넓어지기 시작했다. 늘 밝고 에너지 넘치며 최연소 금메달리스트인 그에게도 어두운 면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백조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래 나만 힘든 어린 시절을 보낸 건 아니었구나. 누구나 사연은 있는 거구나.’
백조는 자신의 불행한 과거에 얽매여 살아오며 스스로를 제한했던 말과 행동들을 떠올렸다.
‘난 스스로를 미운 오리 출신이라고 제한했어. 이렇게 해서 나에게 좋은 게 뭐가 있지?’
백조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 나를 지킬 수 있는 건 결국 나인 거야. 누구도 대신해서 지켜줄 수 없다는 걸 미운 오리 시절부터 경험했잖아? 남들에게서 인정과 칭찬을 찾지 말고 내가 나에게 인정과 칭찬을 주어야겠어.’
백조의 마인드가 점점 더 정교하게 다듬어지고 있었다.
‘누군가 나에게 존중하지 않고 무시하고 인정하지 않는 말을 한다면 내가 허락하지 않으면 그만이야. 그 말들은 사실이 아니잖아? 이미 내가 나를 존중하고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한 거니까.’
마음을 다르게 먹고 나니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뭔지 모를 안정감과 행복감이 솟구쳐 올랐다. 단단한 생각으로 더욱 성숙해진 백조는 내년 올림픽 금메달을 향한 경주를 시작하였다.
주변의 웅성거리는 말들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매일매일의 자신의 성장과 발전에 집중하는 습관을 갖게 되었다. 또 과정 자체에서 기쁨과 행복을 느끼는 법을 깨닫게 되었다. 어느덧 그냥 백조가 아니라 성숙하고 우아한 분위기의 풍모를 갖춘 어른스러운 백조가 되어 있었다.
몹시 힘든 훈련의 연속임에도 불구하고 늘 입가에 미소가 있는 백조를 보고 있던 황새가 의아해하면서 물었다.
“이렇게 힘든 훈련을 하면서 어떻게 웃을 수 있지? 힘들지 않아?”
백조가 구슬땀을 닦으며 대꾸했다.
“당연히 힘들지! 그래도 어제의 나보다 오늘 더 성장한 나를 보면 기분이 좋아! 이렇게 어려운 훈련들을 하루하루 이겨내고 있는 내가 너무 자랑스럽고 사랑스러워서 웃음이 나오는걸.”
이처럼 행복하게 도전하고 있는 백조의 모습에서 황새는 큰 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자신이 받은 감동과 영감을 주변의 동물들에게 전파하며 입소문을 내었다. 백조가 너무 멋있다고.
#14. 백조의 완벽한 하루
또다시 동물원의 대형 강당이 북적북적하였다. 1년이 지나 올림픽 시상식이 시작된 것이다. 동물들의 표정에서 기대 반 설렘 반의 마음이 드러났다. 신입 펠리컨이 옆에 있는 신입 두루미에게 물었다.
“이번 올림픽 금메달 주인공은 누굴까?”
두루미가 대답했다.
“음.. 내가 존경하고 있는 우리 선배 두루미?”
펠리컨이 어이없어하면서 말했다.
“뭐야 팔이 안으로 굽는다더니! 네가 두루미니까 그렇지?!”
두루미는 농담이라며 웃어 버렸다. 그리고 원장님의 목소리가 강당 안에 울렸다.
“자 이제 정숙해 주세요. 시상식을 시작하겠습니다.”
강당 안이 조용해졌다.
“여러분. 아시다시피 오늘은 특별한 날이죠. 지난 1년 노력의 결과가 발표되는 날이죠. 과연 누가 금메달을 받을까요?”
역시 뜸을 들이며 발표를 시작하였다.
“금메달 수상자를 발표하겠습니다!”
동물들은 숨을 죽였다.
“영광스러운 금메달 수상자는 바로 두.루.미 입니다! 축하해 주세요!”
모두들 고개 숙여 인사하는 두루미에게 축하와 박수를 보냈다. 백조도 두루미에게 축하 인사를 표했다. 축하의 소리가 잦아들고 원장님이 말을 이었다.
“자! 올해는 지금까지 와 다른 특별한 올림픽입니다. 왜냐고요? 이번에 새롭게 신설된 상이 있기 때문이죠.”
모두들 처음 듣는 이야기라서 의아한 표정으로 이야기에 집중했다.
“놀라셨죠? 깜짝 놀라게 해 드리려고 비밀리에 진행했습니다. 우리 동물원에서는 동물원 내에서 다양한 동물들에게 귀감이 되고 선한 영향력을 끼친 동물들을 기리기 위해서 올해부터 ‘멘토상’을 새롭게 만들었습니다. 비록 금메달리스트와 동일한 혜택은 없지만 모두에게 귀감이 되었으므로 영광스러운 황금빛 월계관을 수여하고 더불어 동물원 역사관에 두고두고 기록이 남게 됩니다.”
원장님은 머뭇거리지 않고 수상자를 발표했다.
“자, 이번에 새롭게 생긴 영예의 ‘멘토상’ 초대 수상자를 발표합니다. 바로 백!조! 입니다! 축하해 주세요!”
멍하니 듣고 있던 백조가 깜짝 놀랐다.
“네? 제가요? 제가 초대 ‘멘토상’ 수상자라고요?!”
백조의 눈에서 갑자기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주변 동물들은 그것이 기쁨의 눈물인지 슬픔의 눈물인지 알 수가 없었다. 다만, 백조의 마음속에서는 그동안의 설움과 고통들이 하염없이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15. 온전하게 ‘나’로 살아가는 행복
금메달에 도전하면서 많은 성장과 성숙을 경험한 그는 넓고 깊은 행복감을 맛볼 수 있었다. 주변의 찬사를 받는 것은 결과일 뿐 행복의 본질이 무엇인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황새, 두루미, 펠리컨은 늘 백조 곁에서 함께 있고 싶어 하고 경의의 표시로 부리로 그를 쓰다듬었다.
하루는 어린아이 관람객이 백조 쪽으로 다가오더니 빵과 곡식을 던져 주었다. 그 가운데 가장 작은 여자아이 한 명이 외쳤다.
“저기 금메달을 걸고 있는 백조가 있어! 다른 백조들보다 더 아름다워!”
순간 그 옆에 있는 남자아이가 더 크게 외쳤다.
“와! 그 옆에 황금빛 월계관을 쓴 백조를 봐!”
“주변의 물새들이 길을 열어주고 있어! 신기하다!”
그들은 서로 신기해하며 그들의 부모님을 향해 달려갔다. 이윽고 다시 물속으로 빵과 케이크를 던져 주면서 입을 모아 말했다.
“나는 저기 황금빛 월계관을 쓴 백조가 더 멋진 것 같아!”
“맞아! 모두가 그를 좋아하고 있잖아!”
선배 백조, 황새, 두루미, 펠리컨 들도 부리로 그를 쓰다듬었다.
백조는 영광과 찬사에 대하여 어설픈 겸손 대신에 세련된 인사로 감사를 표했다. 높은 자존감과 자신감이 느껴지는 행동으로 일관했다. 그는 깃털을 한껏 부풀린 채 가느다란 목을 길게 빼고 진심으로 기뻐하며 말했다.
온전히 나를 사랑하지 못했을 때는 이렇게 행복한 날이 오리라곤 꿈도 꾸지 못했는데...
#작가 노트
1. 원작 미운 아기 오리에서 아쉬웠던 점
너무 착해서 밉다. 왕따를 당하면서도 어느 누구와도 맞서지 않는 심성을 가졌다.
자기 연민을 갖고 있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말을 하고 있다.
타인의 말에 휘둘린다. 그래서 고통받고 힘들어한다.
이야기가 끝나고 나니 답답한 마음이 밀려왔다. 태어나면서부터 학대와 괴롭힘을 당하는 환경에서 견뎌낸 것만으로도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러지 말았으면 하는 부분들이 눈에 밟혔다. 어쩌면 마음으로 응원했던 부분을 이뤄내지 못해서 아쉬웠는지 모른다. 또 어쩌면 나와 비슷한 면을 보면서 화가 났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