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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석 더 프리맨 Oct 04. 2023

망원동 사람들

[수필로그] 망원동사람들 3  훼어 아 유 후롬(where are U f

[망원동 사람들]-3

▲훼어 아 유 후롬(where are U from)


“홍대근처”, “합정동 쪽”


예전엔 누군가 망원동 사람들에게 집이 어디냐 물을라치면 대충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친절하게도) 사람들이 모를까봐 그랬다는데, 사실과 다르다.


망원동은 수해 때문에 전국적으로 굉장히 유명한 동네였다.

1990년대 초반 ‘홍대입구’가 뜬 다음에는 이 같은 현상이 유독 두드러졌다.


*‘우리’ 중에도 몇몇이 그랬다.

20~30대를 살며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괜히 ‘망원동’에 살고 있단 말이 부끄러웠던 것 같다.


 <각주>*우리=망원동에서 유소청년기를 보낸 제2차 베이비부머(1969~1973년 생)


상습 수해 지역의 이미지 때문인지 낙후된 변두리여서 그랬는지 몰라도.


아무튼 과거 망원동 사람들 일부에게 자신이 사는 지역을 밝히 것이란 누군가에 의해 갑자기 빤쓰까지 발가 벗기운 듯과 같은 것이라 생각하는 듯 했다.


물론 나는 달랐다. 그리하지 않았다.


실제로 인근 성산동으로 이사한 이후였으므로 “성산동 살아요”하거나 “홍대에서 쭉 내려오면 있어요”라고 했다.


근데 망원동과 거리를 두었던 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긴 하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망리단길이 ‘핫’하고 맛있는 식당, 근사한 디저트 집도 많은 동네라 인기가 많다.


 오히려 요즘엔 망원동 사는 것을 내세우기도, (요즘의 나처럼) 거기 살았다는 것에 어깨를 으쓱 펴기도 한다.


 그래서 이 같은 ‘망원동 사람들’ 시리즈를 적기도 하는 것 아니겠나.


사실 ‘현주소 지명 상실’은 서울의 다른 지역에서도 종종 나타나는 현상이다.


서울 신정동, 염창동 사람들은 ‘목동’이라 얼버무리고 (화곡동도 목동이라 말하는 경우도 봤다),


사당동은 ‘방배동’, 길음동과 삼선동 출신은 ‘대학로’라 하는 경우다.


당연히 망원동과 비슷한 이미지였던 봉천동, 난곡동은 ‘서울대 앞’이라고 했다.


심지어 왕십리 살면서 압구정이라 하는 사람도 만난 적 있는데

나중에 들키자 “아! 강 건너면 바로야”라며 실제 거리와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는다는 둥 상세한 서울 지리 설명까지 덧붙였다.


양두구육으로 내세운 것은 ‘홍대입구’였지만 누군가 택시를 함께 타고 가다 진짜 거기서 내려주면 골치였다.


 호기롭게 내렸지만 아무것도 없을 때라 투덜거리며 집까지 이십여 분 이상 걸어가야 했다.


‘자칭 홍대사람이 망원동으로 귀가하던’ 그 길을 밝혀주던 남경장 은은한 불빛이 추억에 아른거린다.


그러던 언젠가 망원동이 화제의 중심이 됐다.

 밀레니엄 시대 망원시장에는 늘 젊은 관광객들이 서식하고 우체국 사거리(우체국은 없어졌다)와 신탁은행 사거리(신탁은행도 없다)까지 카페와 술집으로 넘쳐났다.


시장 칼국숫집엔 (늘 하던대로) 장을 보러 온 동네 할머니와 20대 커플이 앉아 함께 국숫발을 들이켜는 풍경. 주객이 바뀌어 놀러온 이들이 점점 더 많아졌다.


수십 년 간 시장을 다녔던 우리 어머니는 마치 휴가철 캐리비안 베이에 끌려온(아니 따라온) 시어머니처럼 주변과 딱히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커플들과 함께 고로케 집 앞에 줄을 선 약국집 아줌마는 클럽에서 우연히 시누이를 만난 올케를 보는 듯 부자연스러운 표정이다.


이젠 더 이상 누구도 ‘홍대 살아요’ 하지 않는다.


사십 년 전에 비해 살던 이들이 많이 바뀐 탓이다.


 정말로 홍대 살던 이들이 망원동에 많이 들어왔다고 들었다. 주민도 상인도, 손님들까지도.


아, ‘상전벽해’란 말이 이 익숙한 동네에 완벽히 적용이 되는구나. 이젠 망원동 사람을 사칭하는 이가 생길 지도 모를 일이다.


<4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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