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애쓰면 오히려 놓치게 되는 것들에 대해
쿠엔틴 타란티노의 <펄프 픽션>과 같은 현대(2000년대에 가까운) 갱스터 장르는 생각보다 '성실한 범죄집단'을 다루며 갱마저 거대한 자본주의라는 개념 하에 소시민이 된 현실을 다룹니다.
이 영화에서 갱들은 정말 열심히, 성실하게 임무를 수행합니다 (마치 직장인처럼). 그러나 그들이 좇았던 것이 사실 소각되어도 무관한 아주 작은 것이었다는 점을 영화 후반부에 드러내며 반전의 플롯을 만듭니다.
그 관점에서 허무주의/냉소주의에 관한 몇 가지 영화와 최근 일을 하면서 깨달은 사실을 연결해보았습니다.
burn after reading(읽은 후 소각하라).
이 인물들은 '기밀 cd'를 둘러싸고 이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 하는데, 사실 이 cd는 읽은 후 소각해도 될 만한 회고록일 뿐이었다. 여기에는 다양한 인물들이 무언가를 열심히 하는데 결과물은 없습니다.
성형수술을 통해 겉모습을 개조해서 멋진 남자를 만나려는 환상에 매달려 있는 린다
퇴직 후 쓴 회고록이 성공할 것이라는 막연한 미래를 꿈꾸는 오스본 콕스
아내를 속이고 케이티, 린다와 불륜을 저지르는 바람둥이 해리
그들이 잡으려고 하는 것이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물들은 영화 끝까지 모르지만 영화를 다 본 관객은 알 수 있습니다. 각기 다른 방향으로 달려나가는데 전체적인 그림을 볼 땐 달성된 건 없는 것입니다.
맹목적으로 달릴 때는 내가 달리는 목표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할 시간을 갖지 않습니다. 그러나 누군가 이 모습을 멀리서 바라본다면 어떨까요? 1인칭 시점이 아니라 관찰자 시점으로 나를 바라보면 나의 사고, 그리고 감정 상태가 불타고 있다가도 살짝 식습니다. 그렇게 미지근한 온도로 지금의 나를 바라보면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입니다.
이 영화를 회고하며 내가 너무 애썼던 것들이 잘 된 경우와 잘 되지 않은 경우를 돌아봤습다. 잘 되지 않은 경우가 더 많았고 잘 된 경우에는 기뻤지만 사람과의 관계 등 잃은 것들이 있었습니다. 유일하게 단 하나, 아무것도 잃지 않고 잘 된 경우가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이유는 이러했습니다.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모두가 1) 비슷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으며 2) 그 가치관을 이루는 데 이 작업이 힘들더라도 도움이 된다는 걸 명확히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모두가 나와 비슷한 온도로 이 일에 대한 중요도나 가치관이 인게이지 되지 않으면 오히려 너무 애쓸때 일을 망쳤었습니다.
지금 앞만 보고 달리고 있는데 불행하다고 느낀다면, 하루 시간을 비우고 뜨거운 상태를 식혀야합니다.
그 이후 나를 관찰자 시점으로 봅시다.
나는 왜 이렇게까지 하고 있을까?
이유가 없다면 그만 해도 되는 거 아닐까?
놓지 못하는 그 무엇은 무엇일까? (단순히 완벽주의 등의 성향으로 치부해서는 안된다.)
그렇지 않으면 나중의 나를 돌아볼 때 허무해질 수 있다는 걸 느낀 영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