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덕희 Sep 27. 2022

전쟁

잡문

"세상에 호상이 어디있겠습니까만, 올해 향년 102세시고 최근 6년여를 요양병원에서 침대에 누워만 계셨기에 이를 생각하면 그래도 호상이지 싶고… ..."


"꽃들의 배웅을 받으며 어머님이 삶의 길에서 떠나셨습니다. 이승과 저승이 둘이 아님을 안다면, 슬픔은 꽃향기에 안겨 버릴 수 있을 텐데요. 여기서는 가늠하지 못할 길을 나서시는 어머님의 길가에서 배웅해 주셔 삼가 깊은 감사의 말씀을… ..."


회사 메일함에는 구성원 전체가 참조로 걸린 경조사 관련 메일이 하루에도 몇번씩 온다. 코로나의 여파인지 근래에는 부고메일을 많이 받는데, 마음이 먹먹해지는 글들을 읽으면 얼마간 침침한 마음으로 있게 된다. 그래. 사람이 죽는데 호상이 대체 어디 있겠는가. 사람이 죽는건 어떤 경우에서건 지치고 힘든 일이다. 남게 된 사람은 그리 넉넉지 않은 시간동안 감정을 추스르고, 황망한 마음으로 잘 보내는 '척' 해야 한다. 


시인 정현종은 이렇게 썼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 ... "

반대로 한 사람이 간다는 것 역시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겠다.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미래가 함께 가는 것일테니까. 그렇다면 수많은 생명들이 부지불식간에 쓰러져가는 전쟁의 참상은 어떠한가. 상상도 하고 싶지 않다. 


내가 전쟁에 대해 뚜렷한 인식을 갖게 된 것은 군대에서 첫 사격을 하던 순간이다. 이는 매우 강렬해 아직도 뇌리에 남아있다. 사격장에 들어서면 총알을 장전하고 개머리판을 어깨에 견착하며 자세를 잡는다. 의식적으로 호흡을 가다듬고 손가락을 놀린다. 곧바로 어깨에 툭 하는 반동과 함께 총성이 울린다. 사람의 상반신을 닮은 과녁은 목과 몸통 어디쯤에 총알이 박히며 뒤로 쓰러진다. 남아있는 매캐한 화약냄새.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시발 이걸 사람한테 쏜다고?’ 였다. 손가락 놀림 한 번으로 이루어지는 급진적인 죽음. 정확히 그 시점 이후로 영화에서 총으로 사람을 쏘는 장면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하물며 진짜 전쟁이라니. 진짜로 사람이 사람에게 총구를 겨누고 발사하다니. 총알과 대포와 미사일이 오가는 진짜 전쟁. 피난민의 물결과 세계에 팽배한 긴장. 나는 이것을 문화예술이 아닌 진짜 미디어보도로 접하게 되어 기분이 거지같았다. 


동시에 이기적인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우리나라와 가깝지 않아 다행이다. 내가 전선에 나가지 않아도 돼서 다행이다. 내 지인이 아픈 것이 아니라 다행이다. 우리에겐 부디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같은 생각들. 나는 내가 미워했던 '주식 걱정이 최우선인 사람들'과 다르지 않았다. 뭐라도 느낄까 싶어 전쟁과 관련된 글들을 찾았다. <무기여 잘있거라>를 읽었다. <거꾸로 읽는 세계사>를 통해 현대 전쟁사들을 읽었다. 얻은 거라곤 전쟁은 무참함과 무상함의 재확인, 그리고 개같은 역사가 유사한 모양새로 다시 반복되는 것도. 아무것도 나아지지도, 나빠지지도 않았다. 


그러면서도 전쟁을 규탄한다는 여러 사람들의 개인적인 글이, 사진이, sns활동이 무슨 의미인가 싶었다. "NO WAR" 두 단어로 이루어진 응원이 갖는 효용을 의심했다. 심지어 기만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나는 차라리 냉혈한도, 따뜻한 사람도 되지 못하는 모순적인 자세를 취하는 것이다. 누군가의 불행 앞에서 엉거주춤한 자세로 있을 땐 늘 속이 불편하다. 


이런 나 대신에라도 사람의 안위를 먼저 걱정하는 선한 마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흔들리는 차트를 걱정하기에 앞서, 폭발음을 뒤로하며 집을 떠나는 이들을 진심으로 걱정하고 도울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한다. 그러면 정말 우리 모두가 소설 속 헨리처럼 무기와 결별할 수 있을 텐데.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건 저 말도 안 되는 폭력이 멈추고 무고한 사람들이 안녕하기를 간절히 응원하는 것 뿐이다. 그리고 침략자들, 당신들의 밤이 무척 소란스럽기를 바란다. 

작가의 이전글 감수성의 개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