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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덕희 Sep 18. 2022

속초 여행기

여행

들뜬 표정으로 꽃단장을 하고 인제역에 내리는 면회객을 봤다. 인제에는 군부대가 많지.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러 가는 이의 미소는 맑다. 이 버스는 몇 개의 경유지를 거쳐 속초로 간다. 그래 , 나를 보러 와줬던 이들도 이랬겠구나- 하는 생강유자차맛 짧은 상념. 얼마간 눈을 붙였다. 정신을 차리니 버스 밖은 온통 산과 나무다. 구불구불한 산길은 산간을 넘어 이동하는게 얼마나 힘든일인지, 내 차멀미가 얼마나 심한지를 상기시킨다.

무사히 산비탈을 벗어나고 왼쪽 창에 지나가는 시골집과 밭과 나무들을 관찰할 때 친구놈의 ‘야!’ 하는 소리에 시선을 오른쪽으로 옮긴다. 바다. 동해다. 큰 섬이나 배, 각종 인공물 따위가 없는 널직한 수평선을 오랜만에 본다. 멀미가 금세 사라진다.

시인 고은이 말했다. ‘동해는 예술이고 서해는 인생이다.’
과연 그럴 것이 내가 어릴 적 자란 바다에선 갯벌 냄새가, 인생의 짠내가 났다. 반면 여기선 시원한 냄새가 난다. 경쾌한 바람이다.
파도가 철썩 일 때마다 모래가 한 줌 씩 올라온다. 파도에 쓸려온 모래는 해안에 사빈을 만든다. 파도에 가까울수록 모래알이 곱고 부드럽다. 바람은 모래를 더 멀리 옮겨 사구를 형성하고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해변의 테트라포드가 반쯤 묻혀있다. 어쩌자고 햇볕까지 좋다. 반짝이는 모래, 파란 파장의 색이 주는 청량감, 맑은 햇살의 풍광. 고은 선생이 말한 예술이 여기 있다.

파도가 만드는 물거품은 사람으로 하여금 발을 담그고 싶게 만드는 힘이 있다. 분명 복사뼈 밑으론 얼어붙겠지-하는 걱정도, 여분의 신발이나 수건이 없는 것도 상관없다. 달려가 파도에 닿았을 때 내 생각과는 달랐다. 겨울바다는 차가울지언정 춥진 않다.

‘바다색이 왜 층져 보이지?’
‘십 년을 봤는데 어떻게 여행을 한 번 같이 간 적이 없지?’
‘매일 뜨고 지는 해, 왜 연말에만 난릴까’
‘왜 이런 건 나이가 들고서야 좋은 걸 알게 될까. 바다는 항상 그대로 있었을 텐데’
‘아침 뭐 먹지?’

가끔 유익하고 대게 시답잖은 얘기를 했다. 특별하지도 대단하지도 않았다. 여행에는 이런 여행도 저런 여행도 있는 법이다. 다가올 해에는 한 뼘 더, 기왕이면 몇 뼘 더 성숙해지기를, 구태의연함과 작별하기를. 우중충하게 구름 낀 일출을 보며 조심스레 빌었다.


2019.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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