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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덕희 Sep 18. 2022

면도날 / 서머싯 몸

“인생을 최대한 쓸모 있게 사는 법, 그것보다 더 실용적인 게 있을까?” p.350


아직까진 머리를 망치로 맞아본 적이 없어서 그 느낌은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뒤통수를 딱- 소리나게 시원하게 후리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그래, 삶의 방식과 자신이 납득 할만한 답을 찾는 일은 무용한 일이 아닌 것이다. 바퀴를 굴리고 돈을 굴리는 것 못지 않게 삶을 잘 굴러가게 하는 것 역시 실용적인 것이다.


<면도날>은 작가이자 화자인 서머싯 몸의 시선으로 써내려가는 래리와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다. 전쟁에서 파일럿으로 활동하던 래리는 눈 앞에서 친구의 죽음을 목격하게 된 후 삶과 죽음을 관통하는 진리에 대한 생각을 품는다. 전쟁 후 고향으로 돌아온 래리는 누릴 수 있는 기반들을 팽개치고 삶과 죽음, 신과 종교, 선과 악에 대한 답을 탐색하기 위해 여정을 떠난다. 안정적인 환경, 보장된 직장과 부, 사랑, 익숙함들과 결별하며 낯선 곳으로 낮은 곳으로 진리를 찾기 위한 고행을 떠나는 래리의 모습은 진정 구도자의 그것답다.


래리의 말에서 인도의 종교철학을 처음 접해봤다. 브라마, 시바, 비누슈와 같은 이름은 종종 들어봤지만 각각에 얽힌 이야기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윤회 시스템과 종교에 대해 몸과 래리가 주고받는 대화로 이루어진 6장은 그 전체가 신비롭고 지적이었다. 고작 소설 속 인물의 말에 의지하는 얕은 수준임에도 사후 세계에 대한 신비로운 세계관은 흥미롭다.


“환생의 굴레에서 벗어나는거죠… … 일곱 가지의 무지의 베일을 벗게 되면 다시 처음 상태, 즉 무한의 상태로 돌아가죠.” p.443


우주에는 시작이나 끝이 없다는 사상. 생성되었다가 안정되고, 안정에서 쇠퇴로, 쇠퇴에서 해체로, 해체에서 다시 생성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끊임없이 되풀이된다는 사상. 순환의 고리와 무한한 존재로의 귀결은 새로운 종류의 통찰을 준다.


내게 죽음은 무(無) 그 자체일 뿐이었다. 육체활동이 멎고 물질세계에서 사라지는 것. 때문에 나의 인식체계로는 오롯하게 이해할 수 없는 낯선 범주의 이야기들에 조금 스산해졌다. 그러나 모르는 것에 대한 거부감일 뿐, 죽음과 종교에 대한 또 한가지의 관점을 알게 되어 기쁘다. 쾌락과 나태함을 물리치고 절대적인 것에 몰두하는 신실한 열망을 나는 느껴본 적이 없기에 간접적인 경험으로 간신히 엿볼 수 밖에 없다.


여하튼 래리는 속세로 돌아온다. 인류가 수천 년 동안 물어왔던 질문들에 자기만의 답을 가지고서. 빙빙 돌아 제자리로 돌아온 셈이지만 아마 많은 것들이 바뀌었을 것이리라. 마음에 드는 것은 작가가 래리와는 정반대의 삶을 사는 앨리엇이나 이사벨을 우습게만 그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 삶의 태도를 칭송하는 것이 다른 삶을 부정하는 것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더 매력적이다.


불현듯 쿤데라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영원히 회귀하는 삶이라면, 현재의 삶이 그저 스쳐 지가나는 삶일 뿐이라면 그 삶의 무게는 얼마나 가벼울 수 있는가를 이야기 하던 것이 생각난다. 결국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한 생각이 시사하는 것은 현재의 삶을 얼마나 충만하게 살아가고 있냐는 것이다. 선과 생동적인 삶에 대한 생각이 옅어진 지금 <면도날>을 읽게 되어 다행이다. 바야흐로 취업준비생이지만 넉넉한 마음으로 함께 구매한 <불멸>을 읽어볼테다. 몸의 말마따나 인생을 최대한 쓸모 있게 살아보려 하니까. 혹시 또 아는가 인적성평가 언어부분에 도움이 많이 될는지.


2021.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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