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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숏폼 촬영이 창피하다

처음 콘텐츠 사업가로 발을 딛었을 때다.


츰을 추고 콘텐츠를 만들어 돈을 벌고 싶다고

SNS컨설팅 업체와 상담했을 때

제일 먼저 받은 들은 말이

"틱톡을 해라" 였다.



틱톡.. 같은 소리 하네..

아놔 무용이 애들 장난인줄 아나?

관종짓 하는 플랫폼을 하라고?

화가 났다. 쪽팔렸다.


그래도 불편한거라도 성장할 수 있다면 어떻게든 받아들이고 변화해보자는 마음이 더 큰 나는

2020년 1월, 틱톡을 처음 깔아보았다.

(그런 플랫폼이 있단 것조차 처음 알았다.)


정신머리가 하나도 없었다.

아우 눈아파 머리아파 이게 뭐야....

(Z세대에겐 할미로 들릴 소리겠지만)

나이만 밀레니얼이지 사회의 변화에 도통 관심없는

순수예술인이었으니까..


아마 그 2년전의 내가

지금 틱톡에 이것저것 이상한 걸 올려놓은

영상을 봤다면

창피함을 넘어선 수치스러움에 온 몸이 오그라들고,

그걸 자존심으로 포장해 마구 화를 낼 것이다.

틱톡에 올려둔 그 하찮고 별볼일없는..

대놓고 관종짓하는 친구들의 발꼬락정도 따라가는

어색한 끼와 열정을 표현하는 꼬라지를 보고

경악을 금치 못하겠지.

"영상 다 지워!! 영원히 세상에서 묻어!!" 라고

소리지를 것이다.

https://vt.tiktok.com/ZSefFDm8k/


그러나 나는 더 창피하고 더 수치스러움을 경험할 예정이다.

이젠 반즘 포기상태다.

그렇게 용기를 냈다.

그래서 못 하고 못 춰도

대충 음악에 맞다,

동작이 아예 못 알아보게 삐거덕거리진 않는다 싶으면 그냥 업로드를 용감하게 눌러버리고 쳐다보지 않기로 했다.

(난 현대무용이란 완전 다른 장르의 춤을 췄기에

케이팝 안무커버하는 게

너무 어렵고, 이상하다..)


땡절스를 보라..

그저 고무장갑을 끼고 본인들이 좋아하는 춤을 집 핸드폰으로 촬영해 올렸을 뿐인데.. 싸이의 연락을 받았다.


그렇게도 세상은 모를 일이다.

순수예술이랍시고 순수성 강조하며 길고 멀고 험한 길을 골라가며 사람들이 이해하기 난해하고 어려운 말과

춤영상..

그런 진지한 것만 올리려고 생각했던 내가

이제는 좀 아찔하다.


그래 딱 돈 안되고 사회가 알아주기 힘든 내 모습을 그렇게 하고 싶었던 거지...

뭐가 잘못됐다 아니다를 떠나서 만약 관종짓이 순수예술이었다면 나는 관종짓을 하고, 진지한 글을 안 썻을 것이라는 거다.

그만큼 그냥.. 공감받지 못하는 무언가가

무조건 혁신적이고 멋져보이는 거다.


사회의 유행과 시류만 따라가는게 다 좋다고 하는 말도 아니다.


그냥 그 어떤 나도 괜찮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절대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그림자가 있다면 그 실체가 뭔지 그냥 아예 까발려버리면 차라리 속편하고,

늘상 자존심 세우며 화내고 긴장할 필요도 없고,

실상 내가 목숨 걸고 지키려고 한 그것이

별게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 얼마나 자유로운가?

내가 목숨처럼 떠나보내지 않으려 했던

그 창피함 수치심 열등감

오히려 붙잡고 있었던건 아닐까?

드러내면 표현하면 사라질 것들인데

사라질 건(=생각) 붙잡고

바꿀수 없는 건(=일어난 상황,사람들의 반응)

바꾸고 싶었던 거지.


그래서 다른 선택을 해보기로 한 것이다.

상황도, 사람들의 반응도,

"날 어떻게 볼까? 병신같다고 생각할까?"

라는 두려움에 행동하지 못했지만

생각하지 않고 그냥 행동하기로 했다.


그건 내가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는 영역이니까.

그러나 내가 바꿀 수 있는 영역이 있다.

내 생각과 감정.

내 열등감 수치심 창피함은 내가 바꿀 수 있다.

선택할 수 있다.

그래서 후자를 바꾸기로 했다.


틱톡에 영상을 올리는게 창피하지만

할만한 일이 되었다.

할 수 있는 일,

내게 주어진 일이 되었다.


4시간씩 걸려도 맘에 들지 않아 잠도 못 자고

그 한편 올리겠다고 밤을 지세웠던 과거와 달리

이젠 20분 정도 추고 "에이 재미떨어진다.

힘들면 두번 다시 안 하고 싶어져. 그냥 올리자!"

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절대 하지 않을거야! 라는 생각이

얼마나 무의미한지 말이다..


그래서 난 생각한다.

난 이제 정말 성공할 수 있겠다.

갖춰가고 있다.

그래서 더 망가져도 괜찮고,

더 오징어꼴뚜기 찌질이병신같아도 괜찮다.


더 스펙트럼을 넗힐수록

내가 품을 수 있는 역할이 많아질수록

세상에 쓸모있는 사람이 되고,

세상은 그만한 쓸모있는 사람에게

할 일을 준다.


난 내 일을 받기 위해서,

그 일에 응답하기 위해서,

콘텐츠를 만든다.

과거의 내가 보기에 지금의 내가 하는 게

바보짓 병신짓 같을 지라도

기꺼이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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