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 억

#18. 소박하지만 소담한 일상

by 도슨트 춘쌤

영화 <코코>를 보고 눈물을 흘렸다. 기억해달라고 하는 노랫말 가사에 공감한 것인지도 모른다. 공감은 타인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라 한다. 나는 ‘기억’이란 단어 때문인 듯하다. 세상을 살다 보면 꼭 기억해야 하는 것들이 있다. 가족이 대표적일 것이다. 가족 중 한 명이 죽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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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 그레코, <오르가스 백작의 장례식>, 1586-88.


그래서 사람들은 죽은 이들을 기억하고자, 그림으로 남겼다. 엘 그레코가 그린 <오르가스 백작의 장례식>처럼. 이 그림은 에스파냐 톨레도의 오르가스 백작의 장례식을 추모하며 만든 그림이다. 그런데 백작이 죽고 무려 250년이 지난 뒤에 만들었다고 한다. 그것은 백작이 생전 막대한 후원금을 교회에 지불했기 때문이다. 산토 토메 성당은 백작의 장례식을 잊지 않기 위해 이 그림을 그렸다. 엘 그레코는 매너리즘 시기의 화가로서 그리스, 베네치아, 이탈리아의 화풍을 뒤섞어 자신만의 자유분방한 스케치를 그렸던 화가이다. 그림 속 백작의 영혼이 하늘로 올라가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나는 이 그림을 볼 때마다, 우리 할머니들도 저렇게 하늘로 올라가길 기도 한다.


공교롭게도 나의 두 할머니는 모두 96세에 돌아가셨다. 나의 할머니들은 한 줌의 재가 되었다. 외할머니는 내가 임용고시가 떨어지던 날 쓰러지셨고 몇 년 후 돌아가셨다. 친할머니는 어느 순간 치매가 왔다. 그리고 점점 가족들을 잊어버리셨다. 결혼한 지 5년이 넘어가던 나에게 결혼을 했냐고 항상 물었고, 때로는 나를 기억하지 못했다. 점차적으로는 자신의 친아들이었던 나의 아버지마저 기억하지 못하셨다. 치매로 점차 자신의 기억을 하나, 둘씩 잊으셨다. 할머니들이 돌아가신 날 모든 가족을 만날 수 있었는데, 서로의 삶과 할머니의 추억을 더듬었다. 그렇게 우리는 할머니를 매개로 삶을 ‘기억’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잊힌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내가 사랑했던 모든 존재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은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 함께 했던 모든 순간이 깨진 유리 조각처럼 사라진다는 것은 상상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기억은 남은 자의 책무란 말이 떠 오른다.


기억을 뜻하는 Memory는 ‘메모하다’에서 파생하였으며, 기억하기 위한 모든 행위를 뜻한다. 그리스-로마 신화에서는 므네모시네로 의인화되었는데, 기록의 여신으로 불리기도 한다.

라파엘 전파였던 로세티는 그의 아내가 될 시달을 모델로 <므네모시네:회상 혹은 기억>을 그렸다. 그림 속 여신 므네모시네는 기억의 램프를 들고 있다. 그는 아내가 자신을 죽어서도 잊지 않기를 바라며 시집을 관 속에 같이 묻기도 했다. 로세티는 시와 그림으로 그의 아내를 기억하고자 했다면, 나는 이 글로 두 할머니를 기억하고자 한다. 나를 사랑했던 박우심, 박희매 할머니를 기억하며...

161p,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 므네모시네, 1875-81..jpg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 <므네모시네>, 1875-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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