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룡사에서 발견한 것들
옷은 땀으로 흥건했다.
곳곳에 쉰내가 내 몸을 감싸는 듯했다.
그래도 난 걸었다.
오로지
황룡사 9층 목탑지를 향해!
왜 나는 그렇게 황룡사 9층 목탑이 보고 싶었던 것일까?
간절함 때문이다.
신라의 간절함의 정수.
아웃사이더,
슬로 스타터,
한때 고구려의 속국이자,
가야에게 위협을 받던 소국 사로.
그 작디작았던 국가가
이제는 가야를 병탄하고
백제 성왕을 죽이며,
고구려를 위협한다.
이제,
삼국 통일의 목전 앞에 서 있다.
굳이 아소카왕의 이름을 빌려
장육상을 세운 이유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그 유명한 불교의 전륜성왕 아소카 왕도 못 만든 불상을
신라 진흥왕이 만든다?
그것은 부처가 함께는 '될 수밖에 없는 나라' 신라를 향한
간절함이다.
누군가 진흥왕의 이런 모습에 혀를 찼을 수도 있다.
"저 돈으로 무기를 더 만들지!"
하지만 진흥왕은
무기 살 돈으로 황룡사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는 속으로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이런 마음을 담지 않았을까?
조금만 더 힘내면 통일이 다가오고 있음이다.
통일은 무기로만 할 수 없는
간절함의 에너지를 더 가진 존재가 달성할 수 있음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반면,
100년 뒤, 선덕여왕은
같지만 다른 뜻으로
"조금만 더!, 조금만 더!"를 외쳤을 것이다.
백제와 고구려의 연합 앞에서
신라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고 있었다.
동서남북이 적으로 둘러싸인 상황에서
선덕여왕이 할 수 있는 것은
정신적인 통합뿐이었다.
황룡사 9층 목탑을 세우며,
조금만 더 힘내자!는 간절한 마음을 담았다.
선덕여왕이 황룡사 9층 목탑을 짓는다고 했을 때,
아마 진흥왕처럼 많은 사람들은 속으로 어떤 생각을 했을까?
"무능한 왕. 나라가 망해가는데 뭐 하는 짓이야?"
"저러니 비담이 반란을 일으키지!"
하지만
전쟁에 지친 신라 군인들은
황룡사 9층 목탑을 보며,
각 층에 담긴 의미를 되새겼을 것이다.
살기 위한 간절함을 담고
다시, 전쟁터로 향하며
더 나은 미래를 후손에게 물려주고픈 마음을 담고 말이다.
시간이 흘러,
고려 현종은 거란의 2차 침입으로
수도가 불탔다.
그런데 그 불탄 수도 재건으로 정신없는 순간에도
광종 때 불탄 황룡사 9층 목탑을 재건하였다.
현종은 왜 전쟁 복구로 정신없는 상황 속에서
황룡사 9층 목탑을 재건한 것일까?
그것은
간절함 때문이다.
간절함.
그것은 정성이 담긴 절실함이다.
황룡사는 그 존재 자체로 간절함이 담긴
절이자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가장 잘 나갈 때, 힘들 때
힘이 되는 존재.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간절함을 담긴 주문이 담긴 상징물.
진흥왕, 선덕여왕, 현종은
모두 황룡사에 간절함을 담아
지금의 상황을 개선하고 더 나은 미래를 꿈꾼 자들이다.
결국,
몽골의 침략으로 불탄 황룡사를
고려에서 복원하지 못한 것은
간절함을 소진했기 때문일 것이다.
난.
그래서 간절함을 소진하는 순간이 두렵다.
더 이상 일어나지 못할까 봐.
새로운 역사를 쓰지 못할 가봐.
황룡사를 다시 세우지 못한
고려는 그렇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나에게 있어
황룡사는 간절함이다.
간절한 마음으로 보기를 바랐다.
그리고 몇 달의 기다림 끝에
황룡사를 마주할 수 있었다.
비록,
나를 반기는 것은
뜨거운 태양과 흐르는 땀뿐이었지만 말이다.
그래도 나는 감격스러웠다.
그 넓은 대지 속 황량한 돌들이
나에게 말을 거는 듯했다.
"잘 왔다!"
"그래, 너도 간절한 그 무엇인가가 있나 보구나"
"아직 넌 더 힘이 남아 있어!, 포기하지 마!"
나에게 진흥왕, 선덕여왕, 현종이 말을 건네는 듯했다.
돌들을 밟아보며
그들과 잠깐의 대화를 나눴다.
간절함이 현실이 된 순간이다.
내가 이뤄야 할 목표들,
다가서야 할 것들,
힘을 내서 걸어나가야 하는 이유들을
다시 생각해 본다.
황룡사지는
누군가에겐, 황량한 터일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거대한 에너지 저장소였다.
그 에너지 저장소.
간절함을 다시 품어본다.
나무는 불타도
심초석은 살아남았다.
그 홀로 살아남은 심초석처럼,
내 간절함의 뿌리를 제거하지 말자.
황룡사가 나에게
알려준 이야기이다.